농산물 유통 발전 가로막는 주범...농안법 혁신할 때
농산물 유통 발전 가로막는 주범...농안법 혁신할 때
  •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
  • 승인 2020.07.27 20: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도매시장 외 유통채널 거래 농산물 50% 육박
도매시장법인.중도매인 업역 법률로 보장...경쟁 저해
진입장벽 없애고 수수료 경쟁 펼치도록 개선해야
이혁우 교수 '2020 한국규제학회 심포지엄'서 발제

(한국농업신문=유은영 기자) 우리나라 농안법이 농산물 유통시장을 왜곡시켜 소비자에게 부담을 주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혁우 배재대 교수는 "농안법이 농산물 도매시장에 새로운 유통서비스 진입을 막는 규제로 작용해 경쟁을 통해 혁신을 이뤄낼 수 없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특히 이런 경쟁제한적인 규제는 시장을 왜곡시켜 소비자에 부담을 유발하는 동시에 장기적으로 생산자의 경쟁력도 저하시킨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통시장이 급변하고 있고 이미 시장에서 도매시장을 통하지 않고서도 농수산물의 유통이 활성화되고 있다"며 "오히려 이런 유통채널이 도매시장을 통한 다단계의 유통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측면에서 농안법 하의 도매시장 구조를 과감하게 혁신할 때가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혁우 배제대 교수가 2020 한국규제학회 심포지엄에서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공정위tv 캡처]
이혁우 배제대 교수가 2020 한국규제학회 심포지엄에서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공정위tv 캡처]

 

한국규제학회(회장 김성준)는 이달 10일 공정거래위원회와 함께 '경쟁제한적 규제개선의 과제와 방향: 농산물 유통분야를 중심으로'를 주제로 2020년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날 행사는 유튜브 <공정위tv>를 통해 실시간 공개됐다. 

민간과 공공, 거의 모든 영역에서 코로나19 이후의 사회운영 방식에 대해 지금까지의 방식이 적절할 것인지를 놓고 토론이 벌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규제학회는 전통적으로 사회문제를 나눠 맡아온 주체인 시장과 정부의 역할 범위 및 방식에 대해 논의해보고자 올해 심포지엄 주제를 '농산물 도매시장'으로 정했다. 

이 교수는 '농수산물 유통관련 제도의 경쟁제한성 검토'라는 주제발표에서 "농안법과 같이 정부가 설계한 구조에서는 시장거래의 중요한 특징인 경쟁이 제한된다"며 "경쟁이 있어야만 새로운 기술과 혁신이 이뤄지는데 그게 없으니 해당 시장 전체의 규모와 발전이 저해된다"고 지적했다. 

현행 농산물 도매시장에서 경쟁이 제한되는 이유는 정부가 농안법을 통해 도매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는 주체를 지정이나 허가제로 사전에 정한 후 이들의 거래방법에 대해서도 세세한 방법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이미 시장에 진입한 도매시장법인이나 중도매인은 법에 의해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받으므로 굳이 경쟁을 하는 것보다 자기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유사담합을 하기 마련이다. 

이 교수는 "농안법은 시장이 수요자와 공급자 간 자연발생적인 교환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점을 망각한 채 설계됐다"고 주장했다. 

농안법(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은 1976년 당시 우리나라 농수산물 시장의 특성에 맞춰 도입됐다. 

전국적으로 분산돼 있는 다수의 소규모 생산자는 스스로 전체 생산량을 조절할 수도 없을뿐더러 영세성으로 시장정보와 교섭력이 부족했다. 산지에서 소비지까지 생산물을 유통시킨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이들 출하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생겨난 것이 도매시장법인이다. 도매시장법인에게 법률로서 출하자가 판매를 부탁한 농수산물은 원칙적으로 구매할 것을 의무화했다. 대신 업역과 수수료 수입을 보장해 공급량의 변동성에 따른 수탁판매에 대한 부담을 줄여줬다. 이 모든 사항은 농안법에 법률로 명시했다.

그런데 이런 구조에서는 도매시장에서 최종소비지로 농산물이 유통되는 과정에서 비용이 발생해 소비지 시장의 가격이 비싸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소비자들이 되도록 도매시장에서 상품을 구매하려고 하기 마련인데 이런 경우 상대적으로 영세한 소매업자를 보호하기 위해 규제가 또 필요해진다. 

도매시장에 소매판매를 허용한다거나 중도매인 간 거래를 허용해 수수료 아닌 거래 차익을 얻을 수 있게 하면 소매유통망이 결정적인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도매시장법인에 대해 겸영금지, 소매판매금지, 개설시장 내에서만 판매가능, 중도매인에 대한 소매판매금지 및 중도매인 간 거래금지, 중도매인과 도매시장법인이 서로 경쟁하는 사업운영 시스템 불허 등을 규정한 이유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그간 농산물 유통시장 환경은 변화했다. 이런 변화를 무시하고 농안법에 정한대로 도매시장을 운영하는 것이 합리적인지가 갈등의 쟁점으로 떠오른지 오래다. 

이 교수는 "채소류 및 과실류, 축산농가 등을 중심으로 점차 규모화와 전문화가 이뤄지고 있다"며 "현행 농산물 유통은 대형유통업체와 유사도매시장, 직거래 등에서 거래되는 물량이 50%에 육박하고 있는 실정이다"고 현실에 맞춘 농안법 개정의 필요성을 시사했다. 

농안법 하에서 도매시장을 통해 도매시장법인과 중도매인 그리고 소비자로 이어지는 유통의 계열화가 점차 깨져온 점을 지목한 것이다. 

그는 "대형유통업체는 산물의 PB화(제조.판매 일원화)를 통한 영업 전략을 세워 추진하고 있고 정부조차 산지 직거래 등 유통채널의 다각화를 추진하고 있다"며 "앞으로 이런 비도매시장을 통한 농수축산물의 거래는 더욱 더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는 2012년 도매시장에 정가거래제(정가수의매매)를 도입하면서 그 비율을 20%까지로 높이겠다는 목표를 세워 추진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농안법의 경쟁제한성과 경직성을 개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교수는 농안법의 개선방향으로 ▲도매시장법인과 중도매인을 등록제로 변경 ▲정부의 수수료, 장려금 등에 대한 개입 자제 ▲도매시장법인간 담합행위 엄정대응 ▲도매시장법인과 중도매인 각각의 역할분담의 해소 등을 제시했다. 

먼저 도매시장법인 및 중도매인에 대한 등록제로 진입장벽을 해소해 누구든 들어올 수 있게 한 다음 수수료 경쟁이 이뤄지도록 정부 개입을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미 시장에서 도매시장을 통하지 않고서도 농수산물 유통이 활성화되고 있다"며 "이런 유통채널이 도매시장에서 발생되는 다단계의 유통비용을 절감시키고 있다. 이들과 경쟁하려면 농안법 하의 도매시장 구조는 과감히 혁신해야 할 때"라고 거듭 강조했다.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