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락시장 개설 35년...5개 도매시장법인 교체된 적 없어
가락시장 개설 35년...5개 도매시장법인 교체된 적 없어
  •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
  • 승인 2020.08.21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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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안법, 도매시장법인들 보호 수단 전락
진입 규제 완화해 시장도매인제 등과 경쟁구조 만들어야

(한국농업신문=유은영 기자) 현행 농안법(농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이 유통환경 변화에 대응하지 못할뿐더러 기존 유통주체들의 독점적 지위를 보호하는 수단으로 전락해 근본적인 개혁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윤두 건국대 교수는 최근 열린 한국규제학회 심포지엄에서 “국내 한해 농산물 생산량의 54.3%가 경유하는 대표적인 농산물 유통채널인 공영도매시장 내에서 유통주체 간 거래가 자율이 아닌 농안법에 따른 다양한 규제 하에서 이뤄지고 있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그는 유통주체 간 경쟁을 저해하는 요인들 중 하나로 농안법에서 정한 ‘지정제도’를 꼽았다.

김윤두 건국대 교수가 2020 한국규제학회 심포지움에서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공정위tv]
김윤두 건국대 교수가 2020 한국규제학회 심포지움에서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공정위tv]

도매시장에서 농산물 거래는 유통주체인 도매시장법인과 중도매인이 중심이 되어 이뤄진다. 그 중에서도 도매시장법인은 농산물 수집과 분산, 기준가격을 결정하는 막중한 역할을 한다.

농안법은 도매시장법인을 최소 5년에서 10년 주기로 지정토록 하는 지정제로 운영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법인의 절반가량이 지정된 지 20년을 넘었으며 심지어 가락시장의 5개 도매시장법인은 시장이 개설된 이후 단 한 차례도 교체된 적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2018년 기준 전국 32개 공영도매시장에 총 48개 도매시장법인이 운영되고 있다. 이들의 지정기간을 살펴보면 지정된 지 15년이 넘은 도매시장법인이 47곳으로 거의 전체에 해당한다. 또 25년이 지난 도매시장법인도 절반인 23곳이며, 대표적인 농산물 도매시장인 가락시장 내 한국청과, 동화청과, 서울청과, 중앙청과 등 5개 도매시장법인은 시장 개설 이후 단 한 차례도 교체된 적이 없다.

지정기간별 도매시장법인
지정기간별 도매시장법인

도매시장법인의 지정제 운영은 경쟁력이 미흡하거나 출하자들 권익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도매시장법인의 지정을 취소해 도매시장법인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데 목적이 있다.

김 교수는 “농안법의 다양한 기준들 중 실효성이 미흡한 요인들이 다수 있는 실정”이라며 “제도의 실효성이 미미해 이를 폐지하자는 의견도 있다”고 전했다.

특히 “도매시장 운영기간이 약 35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도매시장법인 지정제는 도매시장법인으로의 진입장벽을 높여 그들의 독점적 경영권을 유지시켜 주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모순이지만 법인이 이처럼 5~10년의 지정주기를 무시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상 농안법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농안법 제23조는 ‘도매시장법인을 도매시장 개설자가 부류별로 지정하되, 중앙도매시장에 두는 도매시장법인의 경우에는 농림축산식품부장관 또는 해양수산부장관과 협의해 지정하고 이 경우 5년 이상 10년 이하의 범위에서 지정 유효기간을 설정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지정 유효기간을 설정할 수 있다는 말은 설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결국 가락시장 5개 도매시장법인의 영구한 시장독점 권한을 법령이 보호하고 있었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이런 지정제의 허점을 보완하려면 재지정 기준을 보강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제언했다. 다만 시장개설자가 개선 의지가 있어도 농식품부 승인이 필요한 일이여서 이 또한 보완해야 한다.

하지만 농안법을 손질해 공영도매시장에 경쟁체제를 도입하기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법령 안에서 보호를 받는 기존 유통주체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농안법은 1977년 1월 최초 제정된 이후로 2020년까지 총 56회 전면 또는 일부개정됐지만 근본적인 개혁은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가락시장에 ‘시장도매인제’ 도입이 16년 동안 좌절되고 있는 것만 봐도 기득권의 극심한 저항이 읽혀진다.

김 교수는 “2019년 무.배추가격 폭락으로 산지유통인과 생산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며 도매시장의 미비한 개혁을 원인으로 꼽았다. 이어 “기존 규제를 완화해 수의거래 중심의 시장도매인과 같은 신규 유통주체의 도입을 병행하는 등 탄력적인 운영기반을 갖춰야 도매시장의 경쟁력이 강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