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누구를 위하여' 제도는 만들어지나
[데스크칼럼] '누구를 위하여' 제도는 만들어지나
  •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
  • 승인 2020.08.26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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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업신문=유은영 부국장) 농산유통 분야에서 도대체 이해되지 않는 제도가 있다. 산지 쌀 시장과 농산물 도매시장에 적용되는 제도다.

먼저 ‘양곡관리사’는 산지 쌀 유통의 구심체인 미곡종합처리장(RPC)에 두도록 지난해 처음 자격시험이 마련됐다. 쌀 품질관리가 핵심 업무로 RPC뿐 아니라 정부양곡 창고 등에서도 의무고용을 전제로 도입된 제도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이 제도를 도입하면서 쌀 품질관리의 전문화와 일자리 창출 등 파급효과를 설명했다.

그런데 업계에선 양곡관리사의 필요성엔 전혀 동감하지 않는다. 현재 RPC들은 할아버지 때부터 삼대가 대를 이은 곳이 대부분이다. 할아버지로부터 손자에 이르기까지 100년에 걸친 경험에서 얻은 쌀 관리의 지혜가 몇 개월 공부하고 딴 자격증을 뛰어넘는 것은 당연지사다.

두 번째 실효성에서도 의문이 인다. RPC에 고용되어 월급을 받게 될 양곡관리사가 과연 쌀 품질 관리·감독 업무를 정확히 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업무를 충실히 하면 할수록 사업장의 대표와 다른 기존 직원들의 미움을 받게 되리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야구감독, 축구감독이 존경받는 이유가 자격증 때문이 아니라 오랜 연륜 때문이듯 양곡업에서 삶의 터전을 닦아온 RPC 업주에게 양곡관리사는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농산물 도매시장에선 도매시장법인과 중도매인의 관계가 모호하다. 농안법상 둘의 관계는 대등하다고 돼 있지만 실상은 중도매인이 도매시장법인에 소속돼야만 생계를 꾸릴 수 있는 구조다.

법인은 농산물의 수집, 중도매인은 이를 분산시키는 역할로 법률로는 나눠져 있다. 하지만 중도매인은 도매시장법인에 보증금을 내야만 경매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법인의 지배를 받는다고 봐야 한다. 도매시장법인과 중도매인은 농산물 거래제도인 ‘경매제’로 인해 생긴 유통주체다. 여기서 또 경매사와 도매시장법인의 관계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경매사는 법적으로 도매시장법인에 고용된 직원이다. 대표적인 농산물 도매시장인 가락시장에서 전국 산지에서 올라온 농산물의 가격은 경매에 의해 결정된다. 경매제는 정보에 어두웠던 시절 출하자(농민)를 유통인의 ‘가격칼질’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도입됐으며 비교적 공정한 가격결정제도로 통해 왔다.

하지만 이런 ‘공정성’이 영세농민까지 아우른다고 장담할 순 없다. 도매시장법인에 고용된 경매사가 자신의 고용주인 법인과 그리 친밀하지 않은 영세농민이 보낸 농산물 가격에도 신경을 쓰리라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예로부터 제도와 법은 현장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져 왔다. 그 법과 제도가 해당 산업의 발전이라는 도입 취지에 역행한다면 바로잡아야 한다. 중도매인이 여러 법인의 경매에 참여할 수 있도록 경매대금 통합정산조직을 하루빨리 설립해야 한다. 양곡관리사는 폐지하고, 경매사는 공영제가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