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미는 저질쌀? RPC 도정이 말끔히 해결
나랏미는 저질쌀? RPC 도정이 말끔히 해결
  •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
  • 승인 2020.08.27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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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가공식품업체들 원료곡 도정품위 만족도 낮아
정부양곡 도정공장 노후시설서 이물질 자주 발견
시설현대화로 첨단시설·도정기술 갖춘 RPC와 대비

(한국농업신문=유은영 기자) 쌀가공식품의 품질 향상을 위해 원료곡인 정부양곡을 미곡종합처리장(RPC)에서 도정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25일 산지 쌀 유통의 구심체인 RPC 및 가공식품업계에 따르면 현재 정부양곡 도정공장에서 도정되는 정부양곡을 원료로 가공식품을 만드는 회사들이 원료곡인 쌀 품질에 대한 만족도가 높지 않은 상황이다.

시설현대화 공사를 마친 한 민간RPC 공장 내 마련된 '쌀 품위 평가실'. 그날 도정된 쌀의 모양, 색깔 등 품위를 체크해 보관하고 밥을 지어 미질을 평가한다.
시설현대화 공사를 마친 한 민간RPC 공장 내 마련된 '쌀 품위 평가실'. 당일 거래처에 납품할 쌀을 도정한 후 모양, 색깔 등 품위를 체크하고 밥을 지어 미질을 평가한다.

공공비축미는 정부가 걷어 들인지 2년쯤 지나면 가공용으로 저렴하게 판매되는데 쌀가공식품회사들은 주로 이때 구입한 원료로 가공식품을 제조한다. 가공용으로 정부에서 시중으로 나가는 공공비축미는 정부양곡이니 당연히 정부양곡 도정공장(도정공장)에서 도정해 쌀로 판매된다. 그런데 도정공장은 대부분 시설낙후로 인해 쌀에서 쥐 사체 등 이물질이 자주 나오는 등 품위에 대한 민원이 끊이지 않는 문제점이 있다. 예로부터 널리 퍼진 '나랏미(정부미)’는 저질쌀이라는 인식도 여기에서 비롯됐다.

도정공장에서 도정된 쌀의 품질이 떨어지는 원인은 사실 느슨한 규제 때문이다. 도정하는 벼가 정부양곡이 아닐 뿐 같은 방앗간인 RPC가 1년에 한번씩 엄격한 경영평가를 받는 반면, 도정공장은 3~5년 주기로 한 번씩 시설점검을 받고 큰 문제가 없는 한 정부와의 계약이 유지된다. 이렇다보니 도정공장은 딱히 시설투자에 관심을 갖지 않기 마련이다.

RPC는 농가로부터 벼를 매입해 대형마트나 급식업체에 쌀로 납품하기 때문에 최고품질로 도정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정부보조를 제외하더라도 기본 30억원은 자부담이 드는 시설현대화사업에 너도나도 뛰어드는 이유다.

쌀가공식품업체들 사이에선 자신들이 원료곡으로 받는 정부양곡의 ‘도정 선택권’이 등장하고 있다. 시중 쌀보다 저렴하긴 하지만 소비자 요구에 맞추려면 일단 원료의 도정 품위가 좋아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공용 쌀의 도정을 도정공장에 국한할 게 아니라 RPC까지 범위를 확대해 쌀가공식품업체들이 스스로 선택해 도정할 수 있도록 제도개선이 요구된다. 현재 쌀가공식품 원료용으로 1년에 30만톤 정도가 도정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RPC에서 가공용쌀을 도정할 때 가공업체가 얻을 수 있는 이점은 원하는 품위를 RPC에 요구할 수 있다는 점과 하자 발생시 RPC에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것 두 가지다. RPC 관계자는 “업체에서 요구하는 대로 도정해 갖다 달라는 날 갖다 주면 업체는 편리하게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만들 수 있다”며 “쌀가공식품의 품질향상과 원료용 쌀 공급의 효율성을 높이는 일”이라고 말했다.

다만 정부양곡을 벼 상태로 업체가 받는 것은 법으로 금지돼 있기 때문에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 가공용쌀을 현미 상태로 업체들이 공급받아 본인들이 원하는 RPC에 도정을 맡기는 방안도 제기되고 있다.

RPC업계는 최근 10년동안 2018~2019년을 제외하고 농가나 농협으로부터 산 벼값이 쌀값보다 비싼 이중곡가 구조의 고착으로 인해 경영난이 심화된지 오래다. 경영난 타개를 위해 ‘공공비축 산물벼의 RPC 도정’ 허용을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지만 이 역시 10년 넘게 수용되지 않고 있다. RPC가 산물벼 도정을 하게 되면 정부양곡 도정공장으로 벼를 옮기는 데 드는 물류비며 이송비를 연간 50억원가량 절약할 수 있다.

RPC 관계자는 “쌀가공식품을 RPC에서 도정할 수 있도록 해 주면 RPC 경영난 타개에 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쌀가공식품업체도 RPC간 경쟁구도 속에서 훨씬 품질 좋은 쌀을 원료로 받을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최근 정부미 품위 향상을 위해 시설기준이 미흡한 정부양곡 도정공장에 대해선 계약연장을 불허하는 방향으로 시설 개보수를 유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