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코로나 이후①] 위기는 기회…건강 관심 증대로 ‘친환경농업’ 주목
[기획-코로나 이후①] 위기는 기회…건강 관심 증대로 ‘친환경농업’ 주목
  •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
  • 승인 2020.09.02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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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급식 납품 농가들 사상 최악 경영난
등교개학 연기로 판로 막혀 농산물 폐기
감염증 여파로 생태계·환경보호 순기능 부각
판로 다양화.정책지원으로 소비 기반 마련해야

“생태계 파괴로 바이러스질병 전파” 가설 부상

인류 생존 위해 ‘생태농업’ 적극적 전환 필요

급식위주 판로 탈피·가격인하.소비자불신 해소 과제

(한국농업신문=유은영 기자) 전세계적인 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전 산업이 영향을 받는 가운데 특히 먹거리를 책임지는 농업분야 변화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올해 상반기부터 시작된 코로나19의 여파로 농업분야가 가장 큰 타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친환경농업’은 한순간에 판로를 잃어 상반기 내내 사회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친환경농업의 단절 위기가 끝난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대부분 학교급식으로 납품되는 친환경농산물이 코로나19 감염을 우려한 등교수업 중단 조치로 판로를 잃고 폐기처분됐다. 5월 전국 초.중.고등학교의 등교수업 재개로 한숨 돌렸지만 한여름을 지나 가을로 접어드는 시기에도 코로나19가 좀처럼 잡히지 않고 있다.

바이러스와 전염병의 유행에서도 친환경농업을 이어갈 수 있는 방안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농협이 지난 3월 개학연기로 판로를 잃은 친환경농가를 돕기 위해 농협유통 양재점에서 연 친환경농산물 판촉행사. 이성희 농협중앙회장(오른쪽 첫 번째부터)과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이 행사장에서 농산물을 살펴보고 있다.
농협이 지난 3월 개학연기로 판로를 잃은 친환경농가를 돕기 위해 농협유통 양재점에서 연 친환경농산물 판촉행사. 이성희 농협중앙회장(오른쪽 첫 번째부터)과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이 행사장에서 농산물을 살펴보고 있다.

 

감염증 여파 하반기도 지속

상반기 전국을 뒤흔든 코로나19 여파가 3/3분기 말미에 접어든 지금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당국의 집중 단속으로 점차 확산세가 줄어드는 듯했지만 서울 성북구 사랑제일교회와 8월 15일 광화문 집회에서 나온 집단감염사례를 발판으로 감염속도에 불이 붙어 재확산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9월 1일 0시 기준 누적 확진자 수는 2만182명을 기록했다.

정부는 사회적거리두기 단계를 사실상 3단계에 가까운 2.5 단계로 상향조정하고 전국 모든 음식점과 카페의 매장 내 영업을 오후 9시까지로 제한했다. 이 조치는 8월 30일부터 9월 6일까지 실시된다.

농업에 가장 심각한 타격

감염증으로 인한 ‘비대면’ 영업과 사회적거리두기가 강조될수록 심각한 타격을 받는 건 농업분야다. 먼저 사람 간 접촉이 가장 많은 외식업계에 발길이 끊기고 외식업에 원료를 공급하는 농가에 파장이 미치게 된다.

올초 친환경농업에서 감염증 여파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등교수업 중단으로 급식 식자재를 납품할 수 없게 된 친환경 농가들은 전국 곳곳에서 농산물을 폐기했다. 한국친환경농업협회(회장 김영재)와 대한영양사회 등 친환경 먹거리 생산단체와 가공.급식 납품업체 관계자들은 초·중·고교 학생 대상 ‘친환경농식품 생활꾸러미’ 공급으로 판로를 열어 줄 것을 거듭 촉구했다. 5월 등교수업의 순차적인 재개와 4월부터 시작된 ‘친환경농산물 꾸러미’의 가정 내 전달이 본격 시행됨에 따라 한숨 돌리는 것 같았다. 원래대로라면 학교가 열리는 3월부터 납품이 시작돼야 했지만 아무런 기약 없이 등교가 미뤄진 석 달가량 밭을 갈아엎은 농가들의 피해는 이미 커진 상태였다.

비교적 저장기간이 긴 친환경쌀도 예외는 아니어서 전국 학교에 급식 식자재로 납품하는 농가는 발을 동동 굴렀다.

전국 500여 학교에 친환경쌀을 납품하는 전남 해남의 인수영농조합법인 김인수 대표는 “학교급식 식자재는 등교가 재개되면 곧바로 계약된 물량의 납품을 개시해야하기 때문에 다른 곳에 판매할 수도 없다”며 “아무런 대책 없이 등교일만 기다리고 있자니 애가 탔다”고 말했다.

지자체도 친환경농산물 수매 불투명

등교수업은 잠깐, 코로나19의 계속된 확산세로 초.중.고교뿐 아니라 대학교에서도 온라인을 통한 ‘원격수업’이 자리잡아가고 있는 모양새다. 5월부터 등교개학이 단계별로 추진됐지만 확진자 발생으로 등교를 취소하거나 등교인원을 제한하는 등 여러 제한 조치들이 실시되며 예년과 같은 학교급식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학교급식 중단으로 경기도에서만 올해 들어 지난 7월까지 15억원어치의 식자재가 폐기됐다. 8월부터 일선 학교에 공급될 물량이었던 감자 430여톤도 창고에서 썩어가고 있다. 양평군에서만 학교급식용 감자 계약재배에 70개 농가가 참여하고 있다. 친환경 농가들은 거의 학교급식에 판로를 의존하고 있다. 학교수업이 정상화되지 않으면 올 하반기에도 60억원어치의 친환경 식자재 3000여톤이 폐기될 전망이다.

전국 학교의 온라인 수업이 고착화되면 지자체의 급식용 농산물 수매여부도 불투명해진다. 따라서 내년부터 계약재배를 포기하는 친환경 농가들이 나올 수 있다. 농가들이 급식용 농산물의 계약재배를 포기하면 우리나라 친환경농업의 기반이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다.

이에 따라 현실을 적극 반영한 중앙정부 주도의 친환경농업 육성 정책의 대전환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생태계 보호 목소리 커져

반면 코로나19 여파로 친환경농업이 주목받는 측면도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5월 발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린 2~4월 간 국내 소비자들의 친환경농산물 구매량이 21.2% 이상 증가했다. 소비자들이 감염증을 우려해 건강과 면역력에 집중하면서 친환경농산물 구매가 는 것이다.

감염증 여파에 따른 건강과 면역력에 대한 관심은 코로나19의 원인이 기후변화에 있다는 시각과도 맞닿아 있다. 기후변화에 따른 산불, 가뭄으로 생태계가 파괴되고 야생동물이 인간 거주지역으로 이동해 바이러스를 퍼트렸지 않았겠느냐는 가설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 감소를 우려해 친환경농업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제기된 지 오래다. 생태계 파괴로 식량 생산면적은 감소하는 대신 인구는 계속 늘기 때문에 환경을 보호하는 친환경농업 육성으로 기후변화의 지연과 생태계 보호를 도모하자는 논리다.

윤주이 단국대 환경자원경제학과 교수(전 한국유기농업학회장)는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에볼라 등 20~30년만에 나타나던 바이러스 질병이 최근에는 5~6년 주기로 발생하고 있다”며 “앞으로 변이가 심하게 나타날 것에 대비해 농업을 바라보는 시각도 자연을 살릴 것이냐 개발할 것이냐, 이런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형로 친환경농산물자조금 위원장도 “코로나19로 건강과 면역력, 지구 생태계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며 “인류의 건강과 지구 생태계를 위해 꼭 필요한 친환경농업에 대한 가치가 부각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남은 과제는?

이토록 중요한 친환경농업의 기반을 확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친환경농가의 존속을 위해 친환경농산물의 지속적인 소비기반 마련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현재 학교급식 위주인 판로의 다변화가 선행돼야 한다. 가정.외식에서도 친환경농산물의 소비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일반농산물보다 상대적으로 비싼 친환경농산물의 가격과 자재사용 중심의 인증제에서 비롯된 소비자 불신이 소비기반 확대를 가로막고 있다. 친환경농산물 확대를 위해선 가격인하와 소비자 신뢰 확보가 필요하다.

따라서 유통비용 절감을 위한 산지 유통조직 육성 및 친환경 물류 활성화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강혜정 전남대 농업경제학과 교수는 “2017년 살충제 계란 파동 등 식품안전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친환경농산물 신뢰도가 급감했다”며 “친환경식품의 고품질화와 인증제에 대한 신뢰 확보가 실질적인 구매로 연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올해 제5차 친환경농업육성 5개년 계획을 세워야 한다. 유기농자재 중심의 인증에 따른 고비용 구조를 탈피해 과정 중심의 인증체계로 개선을 실현하고 환경을 살리는 농업의 기반 확대에 초점을 둘 것이 요구된다.

윤주이 교수는 “코로나19로 인해 국민들이 환경의 중요성을 깨닫고 농업의 공익적 가치에 대해서도 인식하고 있다”며 “앞으로 한국 농업은 국토와 환경을 보존하며 일자리 창출도 할 수 있는 생태농업, 생태농정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