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농작물재해보험 "보상 걱정 하는 게 정상인가요?"
[기획] 농작물재해보험 "보상 걱정 하는 게 정상인가요?"
  •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
  • 승인 2020.09.23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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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보상 안 할 거면 ‘공적보험’ 전환해야
태풍·집중호우 피해 보상수준 낮아 불만 제기
이상기후 따른 피해 잦아 보험 보장률 높여야

지난해 농가 지급금 9089억, 3년만 8배 넘게 급증

내년 농업재해보험 예산 10% 감액…재해대책 역행

보장률 낮추고 농민에 과실 책임 지우도록 약관 개정

자연재해인데 보험금 받으면 보험료 할증

정책보험답게 농업인 위한 제도로 손질 필요

(한국농업신문=유은영 기자) 지난해에 이어 올해 수확기도 농작물재해보험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작년 9월초부터 10월초까지 연달아 들이닥친 태풍(링링, 타파, 미탁)으로 인해 농업분야가 큰 피해를 입었다. 올해도 바비, 마이삭, 하이선 등 세 개 태풍이 한창 익어가는 농작물에 큰 생채기를 남겼다.

가을태풍은 다른 시기보다 계절적 기후 특성의 영향을 받아 강우량이 많다. 더구나 기상청에 따르면 지구온난화 현상으로 가을태풍이 점차 잦아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농업계에선 수확기 태풍으로 인한 농작물 피해 예방대책과 함께 농작물재해보험 보장률의 현실화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올해 4월 냉해피해를 입은 과수농가들이 6월 3일 세종시 농림축산식품부 앞에서 ‘냉해피해 특별 대책 촉구 및 농작물재해보험 전면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한국농업신문 DB]
올해 4월 냉해피해를 입은 과수농가들이 6월 3일 세종시 농림축산식품부 앞에서 ‘냉해피해 특별 대책 촉구 및 농작물재해보험 전면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한국농업신문 DB]

"피해 본 만큼은 보상받게 도와주세요"

“올해 벼 보험 처음 들고 처음 보상받아요. 제대로 돈(보상)이 안 나온다고들 해서 그간 안 들었어요. 100%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피해 본 만큼은 보상받게 도와주세요.”

지난 18일 기자에게 걸려온 전화에서 경북 청송의 벼 재배농가는 간곡히 부탁했다. 4만여평 논을 벼 재해보험에 가입한 고두종 농가는 지난 8월 25일 태풍 바비에 이어 9월 3일과 7일 잇따라 닥친 태풍 마이삭, 하이선으로 인해 약 1만5000~2만평 정도가 벼 쓰러짐(도복) 피해를 입었다. 도복된 벼는 훑어서 타작을 해도 품질이 떨어지고 수율(도정해서 얻는 쌀의 양)도 저하된다. 수율이 떨어지면 쌀생산량이 적어지고 품질 저하로 좋은 등급을 못 받기 때문에 농작물 피해는 곧 농가소득 저하로 이어진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최근 ‘2019년 농가경제 실태와 시사점’을 통해 지난해 농업총수입과 농업소득이 크게 감소한 원인 중 하나가 재해보험금 등 피해보상금이 소득 감소분을 벌충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올해 장마와 집중호우와 같은 이상기후로 인한 피해가 계속 발생할 수 있다며 농작물재해보험 가입률이 저조하고 품목이 제한된 문제를 해소하는 것이 농업계 주요 과제라고 강조했다.

실제 피해액보다 보상 턱없이 낮아 

작년 수확기 세 번의 태풍과 올해 사상 최장의 장마와 세 번의 태풍이 찾아온 탓에 농작물재해보험의 보장률에 대한 불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주로 보장률이 실제 피해보다 현저히 낮다는 호소가 주를 이룬다.

농작물재해보험은 자연재해로 인해 농가가 경영위기에 처하지 않도록 정부가 지난 2001년부터 도입한 정책보험이다. 기존 62개 품목에 올해부터 호두·팥·시금치·보리·살구 5개 품목을 추가해 총 67개 품목 보험 가입이 가능하다.

정부는 총보험료의 40~60%를 부담하고 지방자치단체 도 시.군이 15~40%를 부담해 농가의 자부담비율을 낮춰주고 있다. 실례로 고 농민이 가입한 보험면적은 4만여평으로 2000만원의 보험료를 내야 했지만 정부와 지자체 보조를 받아 고 농민이 실제 낸 금액은 70여만원이다. 여기에 또 지역농협이 나중에 추가로 10%를 보조해 줘 자부담금액은 60여만원으로 줄었다.

그럼에도 지난해 농작물재해보험 가입률은 38.9%(34만1000 농가)로 저조하다. 이 가운데 벼 재해보험도 2015년 26.6%에서 2016년 34.6%, 37.1%(2017년), 37.3%(2018년)로 매년 확대되긴 했지만 그 폭이 너무나 미미하다. 보험 운용사인 NH농협손해보험(대표 최창수)이 산정하는 보장금액과 농민이 체감하는 실제 피해금액의 간극이 보험 가입이 미진한 큰 원인으로 꼽힌다.

이번 제10호 태풍 ‘하이선’으로 토사 피해를 입은 강릉의 정호율 농가는 “논 1000평이 못 쓰게 됐지만 보험에선 30% 정도만 보장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보장률에 대한 불만이 나오는 것은 보험운용사가 손실을 우려해 사업 확대를 꺼려하기 때문으로 파악된다. 특히 농작물재해보험은 4개 민영보험사가 판매.운영중인 풍수해보험과 달리 NH농협손해보험 1개 민영보험사만 참여해 위험부담이 크다.

보장 확대 안 하면 고위험 농가만 남아 보험사 손실 커져 

기상청은 냉해와 태풍. 집중호우 등 이상기후에 따른 자연재해가 갈수록 많아진다고 전망했다. 자연재해로부터 농작물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사전대비책과 함께 농가경영을 지탱할 사후수단으로선 유일한 농작물재해보험의 개선이 시급한 이유다.

실제 지난해 가입농가 34만 1000개 중 봄철 이상저온, 태풍(4차례) 등 재해로 19만5000농가가 9089억원의 보험금을 수령했다. 이는 2001년 농작물재해보험 도입 이래 최대규모다.

농경연은 “이상기후에 따른 대규모 피해가 계속 이어질 수 있어 이에 대한 적절한 대비책 마련이 절실하다”며 “농작물재해보험을 비롯한 위험관리 제도 전반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농경연은 또 “농촌현장에서 보장률 미비 등의 이유로 가입을 꺼려하면 결국 고위험 농가만 보험에 가입하게 되고 그 결과 보험사의 손해율은 더 커질 수 있다. 품목별 가입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현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보상수준 낮춰놓고 농업재해보험 운용사 농협손보 당기순익 248% 급증

그렇다면 보험의 손질은 어떤 방향으로 해야 할까. 보험사로선 손실률을 얘기하지만 손실에 대한 관점에도 농가들과 온도차가 있다. 보험사가 가입자로부터 받은 보험료보다 내 주는 보험금이 더 컸을 때 보험사가 손실을 입었다고 본다. 그러나 농가들은 보험사의 주장에 선뜻 납득하지 못한다.

고 농가는 “내가 낸 보험료는 60여만원이지만 보험사는 전체 보험료 2000만원을 다 받은 것 아니냐”라며 “정부와 지자체가 보험료를 지원해 준다고 해서 농민이 내는 순수한 보험료만 가지고 이득과 실을 따지면 안 된다”고 못박았다.

전년에 보장받은 농가는 보험료를 할증하거나 보장비율을 낮추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전남의 한 농가는 “지난해 보험금을 타서 올해는 피해 면적이 전체 가입면적의 절반을 넘어야 보장해준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사전 예방이 불가능한 자연재해 피해 복구를 위해 보험에 든 농가에 오히려 책임을 전가시킨 셈이다.

특히 농협손해보험사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20억원에서 68억원으로 248.1%(48억원)나 급증했다. 손실은커녕 나라 예산이 수반되는 정책보험을 가지고 회사의 이윤을 창출했다는 지적도 가능하다.

평가인마다 피해조사 기준 제각각

농가들은 대체로 피해산정 방식과 보상기준을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밖에 과수 특약사항, 보상수준 조정, 미보상 감수량, 보험료 할증제, 무사고 환급제, 손해평가 조사, 중복지원 불가 등이 꼽혔다.

과수 특약사항은 사과 배 감귤 떫은감 단감 등 과수 5개 품목을 태풍, 강풍, 우박 등에 의한 특약사항으로 지정한 것이다. 과수류는 태풍, 강풍 등에 의한 낙과와 우박으로 인한 상품성 저하가 가장 큰 손실임에도 이를 특약사항으로 지정한 것은 제도 도입 취지를 비켜간다는 지적이다.

또 올해부터는 과수 보장범위를 기존 80%에서 50%로 하향 조정했다. 사과 배 단감 떫은감 등 과수 4개 품목의 열매솎기(적과) 전 발생한 피해 보상수준을 50%로 낮췄다. 농가가 과도한 열매솎기를 통해 인위적으로 보상수준을 높이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라는 설명이다. 다만 3년 연속 보험금 수령이력이 없는 농가는 70%까지 보호한다. 그러나 과도한 열매솎기는 낙과에 영향을 미쳐 농가가 보험금을 더 받으려고 일부러 할 리 없다는 게 농가들의 주장이다.

게다가 농민 과실 부분을 신설, 한번이라도 보험금을 받은 농가는 최대 20%까지 보상금을 깎도록 했다. 농가 피해가 100%라고 할 때 보상율과 자기과실율을 적용하면 30~50%밖에 보상을 받지 못하게 된다.

미보상 감수량은 자연재해 외에 병해충 방제, 제초작업, 시비관리 등 농가 부주의로 인한 농작물 수확량 감소를 피해율에 반영해 보상해주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영농활동 부주의로 인한 생산량 감소와 자연재해로 인한 생산량 감소를 구분하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농작물 피해율 산정을 위한 피해 조사 기준도 객관성이 부족하다는 게 현장 의견이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는 “현지 평가인과 손해평가인이 피해율 조사를 하지만 평가인마다 기준이 다르다”며 “보험금 수령시 3년 동안 보험료를 할증하는 것은 농가경영부담을 낮추고자 하는 정책보험 목적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농연은 농작물재해보험 확대를 위해 현재 1개 민영보험사만 참여하고 있는 상품 운용을 다수 보험사로 늘려야 한다고 제언했다.

재정압박 피하려 농업인에 책임 전가

사정이 이런데도 내년도 농업재해보험 예산은 올해보다 10% 이상 감액된 4388억원으로 배정됐다. 농작물재해보험 운영비 지원예산까지 합하면 내년 농업정책보험 예산 감액폭은 686억원에 달한다. 이에 따라 농식품부가 사전적인 농업재해 대책과 관련, 실효성보다 구색 맞추기에 치중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장 맞춤형 제도 개편보다 농업 주관부처로서 재해보험을 구색맞추기로 끼워넣고 있다는 지적이다.

농가 지급 보험금만 봐도 2016년 1114억원에서 2019년 9089억원으로 8배 이상 급증했다. 재정압박을 피하려 농식품부가 농민들의 보험금 부당수령 방지 차원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이번에 입증책임과 과실부분을 농민에게 전가하는 제도 변경을 추진한 거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경북도의회 농수산위원회 신효광 의원(청송, 미래통합당)은 “농가부담 경감과 보장 범위 확대를 위해 농작물 재해보험료의 국비와 도비 지원 확대, 농작물 전 품목에 대한 보험 적용, 공적보험으로의 전환, 불합리한 보험 약관 개선을 통해 농업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