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8주년특집Ⅱ-RPC 해법②] RPC 산물벼 도정시 92억 절감...왜 허용 안 하나
[창간8주년특집Ⅱ-RPC 해법②] RPC 산물벼 도정시 92억 절감...왜 허용 안 하나
  •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
  • 승인 2020.10.28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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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C 경영대책·공공米 예산 절감 ‘일거양득’
매해 정부양곡 관리에 4343억원 예산 투입
RPC 산물벼 도정 허용해 예산 낭비 줄여야
김승남 의원 “도정공장과 수의계약 체계…개선해야”

쌀 소비량 감소로 벼 재배면적 감축정책 추진

벼 도정해 쌀 납품하는 RPC 확보물량 줄어

쌀값은 사 놓으면 떨어져, 10년간 2년 빼곤 적자

(한국농업신문=유은영 기자) ‘RPC 산물벼 도정 허용’은 미곡종합처리장(RPC)들의 오래된 숙제이자 숙원사업이다. RPC는 매해 수확기 정부 대신 건조되지 않은 상태인 산물벼를 공공비축용으로 농가에서 매입하고 있다. 이를 건조해 창고에 보관하다가 이듬해 정부에 돌려주는데, 정부는 군.관.사회복지시설 등에 공급이 필요할 때마다 정부양곡도정공장에 벼의 도정을 맡긴다.

RPC에 있는 벼를 정부양곡 창고로 옮겨 보관하다 정부양곡도정공장으로 옮겨 도정할 때마다 막대한 물류비가 들어간다. 따라서 RPC업계는 도정시설을 갖춘 같은 방앗간인데 물류비를 들여 옮길 필요 없이 군.관 등 수요가 생길 때마다 RPC에 도정을 허용해 바로 공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건의해 왔다. RPC단체 연구용역 결과에 따르면, 이렇게 했을 때 아낄 수 있는 정부예산은 약 92억원이다.

하지만 농림축산식품부는 정부양곡도정공장의 설립취지가 나라미를 도정하는 데 있다며 물류비를 들여서라도 나라미는 무조건 정부양곡도정공장에서 찧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벌써 11년째 같은 주장과 답변이 오갔다. 이에 따라 RPC 산물벼 도정이 영원히 업계의 과제로 남을 것인지 올해도 산물벼 약 14만톤을 매입해야 하는 RPC들이 시름에 잠겼다.

시설현대화를 마친 민간RPC 공장의 첨단도정시설을 노동자가 조작하고 있다.
시설현대화를 마친 민간RPC 공장의 첨단도정설비를 노동자가 조작하고 있다.

 

공공비축제 시행…RPC, 산물벼 형태로 10만톤 수매

예전 추곡수매제를 시행할 때 정부는 매년 수확기 농가 벼를 높은 값에 사들였다가 이듬해 시장에 낮은 값에 방출했다. 1948년 정부수립과 함께 시작된 이 제도는 산지쌀값 지지를 위한 ‘이중가격제도’로 불린다. 박정희 정권시절인 1972년 폐지됐다가 1988년 법 개정을 통해 부활했다.

그러나 1993년 타결된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에 따라 우리나라 추곡수매자금이 감축대상 보조금으로 분류되면서 정부는 보조금 규모를 줄일 수밖에 없었고 당연히 수매물량도 줄게 됐으며 쌀값 지지기능도 쇠퇴했다. 급기야 2005년 추곡수매제가 폐지되고 공공비축제가 도입되면서 RPC가 정부를 대신해 공공비축미의 일정량을 산물벼 형태로 매입하게 됐다.

시설현대화로 고품질 도정능력 ‘막강’

정부는 국가 쌀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RPC 시설현대화를 적극 지원해 왔다. 첨단도정설비와 GAP 인증을 갖춘 RPC는 어떤 방앗간보다도 도정기술면이나 능력에서 월등하다.

우리나라 방앗간은 동네 정미소와 RPC, 정부양곡 도정공장 등 세 종류가 있다. 정미소는 농가 벼를 삯을 받고 도정해 줘 ‘임도정공장’으로도 불리고, 동네 방앗간이 시설과 자본금을 갖춰 농림축산식품부의 평가를 통과하면 RPC로 진입해 ‘벼 매입자금’ 지원을 받게 된다. 정부양곡 도정공장은 말 그대로 나라미를 도정하는 방앗간이다.

2016년 RPC 업계가 연구용역한 결과에 따르면 4년이 지난 현재 시세로 RPC에 산물벼 도정을 허용하면 정부양곡도정공장으로 옮길 때 드는 포장비, 이송비, 운반비를 정곡 10만톤당 92억원을 아낄 수 있다. 이를 실제 RPC가 매입하는 산물벼 용량 8만톤 정도로 다시 계산하면 예산절감액은 72억원이 나온다.

비용 외에도 정부양곡도정공장은 주기적인 검사 시스템이 없는 제도적 한계로 낙후된 시설로 인한 쌀 품위 문제가 항상 대두돼 왔다. 이는 올해 농해수위 국정감사에서도 지적된 바 있다.

김승남 국회의원(고흥‧보성‧장흥‧강진)은 10월 7일 농림축산식품부 국정감사에서 “매년 수천 억원이 투입되는 공공비축미 관리가 정부양곡도정공장과 저장창고 중심의 수의계약 형태로 이뤄져 품질이 떨어진 쌀을 소비자에게 공급할 수밖에 없다”고 질타했다.

김 의원이 농식품부로부터 입수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정부양곡 저장창고 중 69%(3234개)가 30년 이상 된 노후시설이며 저온저장고를 갖춘 곳은 전체의 12%에 불과하다. 또 정부양곡도정공장은 A~E 등급 기준 가운데 36%가 B등급 이하이며 우수농산물관리시설(GAP) 인증도 의무사항이 아니다. 때문에 곰팡이, 쥐똥 등 이물질이 정부미에 혼입돼 사회문제화 된 지 오래다.

김 의원은 특히 산물벼는 건조시설과 저온창고를 갖춘 RPC가 수매하고 다음해에 정부양곡도정공장으로 이관시켜 도정토록 하는 현재 정부양곡 관리 시스템을 복잡한 유통단계로 예산을 낭비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지목했다. 그는 “산물벼를 건조·보관한 RPC가 직접 도정하면 10만톤 기준으로 92억원을 절감할 수 있다”며 현재 4343억원을 투입하는 정부양곡 관리체계의 개선을 촉구했다.

RPC 공장에 톤백벼를 실은 트럭이 들어오고 있다.
RPC 공장에 톤백벼를 실은 트럭이 들어오고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70여년간 정부미 도정방식 안 바뀐 이유

김 의원이 지적한 산물벼 RPC 도정에 따른 예산절감 효과는 이미 10여년 전부터 RPC가 대정부 건의문을 통해 거듭 밝혀왔다. 하지만 농림축산식품부는 그때마다 정부양곡도정공장의 업역 보호와 설립취지 등을 들어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정부양곡도정공장은 일제강점기 인천, 목포 등 항만에 있던 크고 좋은 정미소를 일제가 우리나라 쌀 수탈 통로로 쓰기 위해 ‘영단 방앗간’으로 지정한 게 시초다. 이후부터 해방을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70여년 동안 변함없이 정부양곡을 찧는 도정공장으로 자리를 지켜왔다. 정부는 이들 도정공장과 3~5년 주기로 독점적 수의계약을 체결하며 별일이 없는 한 재계약을 반복해 왔다. 소비지 유통업체에 쌀 납품 경쟁을 벌이는 RPC로부터 ‘특혜’ 지적을 받는 대목이다.

제도는 환경변화에 따라 새로 생겨나고 변경돼 왔다. 그러나 유독 양곡산업만은 시대변화를 수용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RPC 설립 이후 시설과 기술면에서 경쟁력을 갖춘 방앗간들을 외면하고 기존의 낡은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RPC 관계자는 “요즘 공정한 기회보장을 정권 키워드로 부각시키는 세상인데 낙후된 특정 방앗간의 업역을 정부가 나서서 보호해준다는 건 대놓고 ‘특혜’를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며 “이중곡가 부담을 지며 정부의 쌀값 안정 정책을 성실히 이행한 RPC는 허탈할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또 이 관계자는 “RPC는 그간 최하 10여년 동안은 쌀값의 지속적인 하락으로 농가에서 사들인 벼를 쌀로 팔 때마다 매번 손실을 봤다“며 ”산물벼 도정 허용으로 RPC 물량확보와 적자보전에 숨통을 틔워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