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곳간을 비워야 햇곡이 들어간다
[전문가칼럼] 곳간을 비워야 햇곡이 들어간다
  • 이은혜 기자 grace-227@newsfarm.co.kr
  • 승인 2020.11.04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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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민 경북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교수

농업인들에게 올해 가을은 거둠의 기쁨보다는 걱정이 앞서는 계절인 것 같다. 쌀 수확기를 맞았지만, 쌀값이 떨어지기는커녕 오히려 뛰는 이상 현상을 보인다. 국가 전체 곡물 자급률은 22.5% 수준인데 쌀만은 수요보다 공급량이 많은 것이 쌀값 하락의 주된 원인이다. 양곡 회계연도인 올해 10월 말의 예상 쌀 재고량은 144만 톤이나 된다고 한다. 이는 세계식량기구(FAO)가 권장하는 적정재고량(80만 톤)의 약 2배에 해당하는 양이다.

재고미가 이렇게 눈덩이처럼 늘어나게 된 데는 쌀 소비량의 감소, 대북 쌀 지원 중단, 쌀시장개방유예조치로 수입되는 쌀의 증가 등이 주된 원인이다. 정부양곡창고는 재고미 누적으로 더 햇곡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고 한다. 금년도의 쌀 생산량 363만1000t으로 수급 균형 범위 이내 수준으로 전망됨에 재고 쌀에 대한 적절한 해법을 찾지 않으면 공급 과잉으로 인한 쌀 소득은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고 재고 쌀 관리에 드는 예산도 많이 늘어나게 될 것이다. 쌀 공급 과잉으로 정부가 지난해 지출한 양곡 관리비가 4000억 원(2019)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벼 수확을 코앞에 두고 서둘러 내놓은 정부의 쌀 수급 안정 대책은 올해 쌀 예상생산량과 쌀 변동직불제가 폐지되고 공익직불제가 도입됨에 매년 10월 15일까지 수급안정대책을 수립도록 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쌀 수급안정장치’를 제도화한 첫해다. 
농정당국에서는 수확기 쌀 시장과 농촌 민심을 사전에 안정시키는 특별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이번 조치만으로는 과연 우리의 쌀 수급이 안정화될 수 있을는지 의문이다. 우선, 쌀 생산 농가 입장에서는 쌀값이 내릴 대로 내린 수확 철에 이런 대책을 내놓는 것에 대한 불만이 크다. 재고미를 해외로 내보내지도 않고 사료용으로도 이용하지 않는 상태에서 단순히 수매물량을 늘이거나 시장격리조치만으로 쌀값이 안정화되기 어려울 것이다. 구곡(舊穀)이 가공용으로 소비되는 양만큼 신곡 소비는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물물교환이나 차관형태로 재고 쌀을 해외로 내보내는 방안을 좀 더 적극적으로 검토해 보아야겠다. 국제법상 문제가 된다면 국가적 차원에서 대응해야 하고, 쌀을 가공해서 해외지원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하겠다. 먹은 쌀의 사료화도 더 미루어 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해마다 수백만 톤의 사료 곡을 수입하고 있으면서 5년이나 묵은쌀을 사료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관세화에 의한 쌀시장 개방도 서둘러야 한다. 

최근 기상이변 현상이 지구촌 곳곳에서 발생하면서 국제 곡물 가격은 급등하고 있다. 특히 밀의 국제가격은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쌀을 제외하면 곡물 자급률이 5%에 불과한 우리나라는 주식인 쌀만이라도 안정적인 공급체계를 유지해 나가야 한다. 이런 점에서 정부에서도 쌀 수급문제를 좀 더 장기적인 안목에서 내다 볼 필요가 있다. 쌀소비 감소추세를 국민식생활 패턴의 변화로 당연시할 것이 아니라 지금 수준의 쌀 소비량이 유지될 방안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 식량 자급률 목표제의 법제화도 더 국회에 머물러 있어서도 안 되겠다.

곳간을 비우지 않으면 햇곡이 들어갈 자리가 없는데도 대북 지원은 북한의 태도 변화가 있어야 하고, 해외지원은 국제법이 문제가 되며, 사료화는 국민정서상 어렵다고 하는 사이에 재고미는 쌓여만 가고 있으니 이를 지켜보는 농업인의 걱정은 클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