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축년 새해 농업인의 목소리Ⅰ] "논밭이 제 일터죠. 다른 직장과 다르지 않아요" 
[신축년 새해 농업인의 목소리Ⅰ] "논밭이 제 일터죠. 다른 직장과 다르지 않아요" 
  • 김흥중 기자 funkim92@newsfarm.co.kr
  • 승인 2021.01.06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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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석 (사)한국쌀전업농충주시연합회 회원
국내 농업기반 책임질 베테랑 쌀전업농 꿈꾼다
서강석 (사)한국쌀전업농충주시연합회 회원

(한국농업신문=김흥중 기자) 한해 농사가 다 끝났음을 알리듯 충북 충주시 주덕읍 일대 논밭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채 하얀색 눈으로 덮여 있었다. 그 안에 한참이나 기계 소리가 들리던 한 정미소에선 지난해 수확한 쌀알이 포대 가득 쌓이고 있었다.

쌀겨가 풀풀 날리는 이곳에서 쌀 포대를 나르고 있던 서강석(34) 씨는 농한기에도 짬짬이 소일거리를 하고 있다. “바쁜 철이 지나가서 지금은 좀 한가해요. 요즘은 올해 농사를 위해 고장 난 시설물이나 농기계를 점검하고, 정미소를 운영하고 있어서 들어오는 주문에 맞춰서 벼를 도정해요.”

가족과 함께 충주 일대에서 벼농사를 짓고 있는 서 씨는 농촌에서 보기 드문 이른바 ‘청년’이다. 8년 전 20대 중반의 나이로 농사에 뛰어든 그는 가족과 함께 약 5만평 규모의 벼농사를 짓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농사짓는 부모님을 보고 자란 서 씨는 일찍부터 농사를 짓고 싶어 했다. “고등학교 진학 때는 농업고등학교에, 대학교에 갈 때는 농업대학교에 가고 싶었어요. 그런데 부모님도 반대하셨고, 주위에서도 말리더라고요. 특히 어머니가 더 반대하셨는데, 농사일이 아무래도 힘들다 보니 양복쟁이가 되기를 바라셨던 거 같아요(웃음).”

서 씨는 비록 농고, 농대는 가지 못했지만, 부모님의 농사일이 바쁜 시기에는 항상 달려와 일을 거들었다. 공과대학을 졸업한 그는 전선회사에서 잠시 일 하다 지난 2014년 본격적으로 벼농사에 뛰어들었다. 동시에 (사)한국쌀전업농충주시연합회 회원으로서 명실상부한 쌀전업농이 됐다. 

서 씨는 농촌에서 자라왔고, 농사일이 낯설지 않았지만, 넓은 논밭이 직장이 되고 농사일을 전업으로 하게 되니 처음부터 쉽지만은 않았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특히 이제는 직장 상사가 된 부모님과 농사일을 두고 마찰도 종종 있었다고. 

“트랙터 돌아가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는 논에선 아버지께서 어떤 일을 시키셔도 전혀 들리지 않아요. 그러다 보면 트랙터 시동을 꺼야 하고, 결국 일은 조금씩 더뎌지죠. 곁눈으로 벼농사를 보고 배웠어도, 농사일에 ‘센스’가 부족했어요.”

열정은 넘쳤으나 센스가 없던 초보 농사꾼은 어느덧 올해로 8년차가 됐다. 회사원인 주변 친구들이 직장에서 과장에 진급했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는 서 씨는 이제 이앙기 같은 기계도 능숙하게 만지고,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일하는 정도가 됐다고 말했다. 

“이제 스스로 어느 정도 일 할 수 있지만, 아직도 중요한 기계들은 절대 안 맡기세요. 부모님이 힘이 부치시기 전까지는 절대 농사일을 안 놓으실 거 같아요.” 

곧 쌀전업농 10년차를 바라보는 서 씨는 벼농사를 짓는 일이 상당히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다른 농민들처럼 대부분 빚을 내서 땅을 사고 항상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삶의 질을 따져보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소소한 행복을 찾고 있다고 덧붙였다.

“벼를 재배해보니까 벼가 도복(쓰러짐)이 되기 직전까지 키우는 게 농사를 잘 짓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기본 매뉴얼에 맞춰서 비료를 주지만, 이는 품종마다 다르고 논마다 비료가 잘 들어가거나 덜 들어가는 자리가 있어요. 요즘은 상황에 맞게 비료를 줄 수 있을 정도로 감이 생겼어요.”

벼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서 씨는 ‘고품질 쌀’에 대해서도 요즘 생각이 많다고 말했다. 식미를 우선으로 둔 맛이 좋은 쌀과 영양적으로 우수한 쌀 사이에서 고민이 된다고. 

“맛있는 쌀도 중요하지만, 영양적인 면에서 우수한 쌀도 고품질 쌀이 될 수 있어요. 단백질 함량이 좀 더 높은 쌀이 맛은 떨어지겠지만, 건강에는 더 좋을 수 있죠. 그래서 소비자들도 자신의 건강 상태에 맞는 쌀을 찾아서 먹는 게 좋다고 봐요.”

올해는 지난해보다 농사일을 더 많이 할 계획이라는 서 씨는 농민으로서, 쌀전업농으로서 각오가 남달랐다.

“재작년부터 이앙기를 다뤘고, 작년에는 정미소 일도 배웠어요. 아직 배울 게 많지만, ‘어제보다 조금만 더 낫게’ 하나씩만 더 배워가려고요. 그래서 10년, 20년 뒤에는 베테랑 쌀전업농이 돼서 우리나라 농업의 기반을 튼튼히 지켜나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