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축년 새해 농업인의 목소리 Ⅱ] “젊음을 무기로 소처럼 우직한 농사꾼 되겠다”
[신축년 새해 농업인의 목소리 Ⅱ] “젊음을 무기로 소처럼 우직한 농사꾼 되겠다”
  • 이은혜 기자 grace-227@newsfarm.co.kr
  • 승인 2021.01.07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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볏짚 생성·조사료 풍부해 시너지 효과
한우와 쌀 겸업농가 충남 보령시 임대근 농민

(한국농업신문= 이은혜 기자)2021년 신축년, ‘흰 소’의 해가 밝았다. 예로부터 소는 오랫동안 농경사회의 가장 기본적이고 큰 노동의 원천이 돼왔다. 농사를 근본으로 여겼던 우리 옛 조상들은 묵묵히 일하는 근면성실한 소의 힘을 빌려서 농사를 지어왔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국민의 주식인 쌀을 생산하는 벼농사와도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소득과 환경 등 다양한 이유로 한우와 벼농사 겸업을 선호하는 농가들이 많아지고 있는 가운데, 충남 보령의 한 농민을 만나 농사 이야기를 들어봤다.

-자기소개 부탁한다.
보령시 주산면에서 벼농사 짓고 한우 키우는 35살 임대근이라고 합니다. 

-농사 얼마나 짓고 있는지.
벼농사는 아버지와 함께 짓고 있는데 8000평 정도 된다. 한우는 법인을 만들어 소속돼 있고 다 같이 운영하고 있다. 조사료단지도 간척지 쪽에 함께 있다. 내가 운영하는 농장의 한우는 60두 정도 되고, 원래는 얼마 전까지 낙농을 같이 했는데 그만둘 예정이다. 아랫동네에 있는 한우 축사는 2018년에 새로 지었고, 낙농 하면서 한우로 변경하기 위해 4년 정도 준비했다. 또, 가족들이 깻잎 500평 정도 같이 하고 있다.

-낙농을 그만두게 된 이유는.
낙농치고는 규모가 작았다. 더 늘릴 수가 없는 상황이었고, 축사를 새로 지으려면 적어도 15억 정도는 있어야 하니 재정이 감당이 안 됐다. 착유는 끝났고 이제 소를 보낼 일만 남았다.

-농사짓게 된 계기는.
원래 농사에 관심이 전혀 없었다. 옛날부터 혼자 속으로 ‘절대 소 젖 안 짜야지’라고 생각했다. 집 바로 위쪽 축사가 2009년인가 2010년에 눈이 너무 많이 무너져서 다시 지은 건데. 원래 그 자리가 밭이었다. 어렸을 때 그 밭에 옥수수를 심었어서 학교 갔다 오면 옥수수 베다가 갖다 놓고, 경운기에 옮겨놓으면 잘라서 소 먹이는 게 일이었다. 매일 같이 볏짚을 옮기고 나르고 싣고. 학창시절을 그렇게 보냈으니 죽어도 안 한다 그랬다. 그래서 대학교 졸업하고 일반 회사에 취업했는데, 아버지가 혼자 하기 힘들다고 하셔서 결국 내가 오게 됐다. 특히나 낙농이라 착유를 30마리 이상으로 하고 있던 때였는데, 부모님 두 분이 하기도 벅찬 상황이었다. 그 모습을 두고 볼 수 없어서 농사짓기 시작한 지 5~6년 정도 됐다. 농사라는 게 해가 거듭될수록 들어가는 생산비는 더 늘고 남는 돈은 줄어드니까 힘들기도 한데, 그래도 한편으론 내가 열심히 하고 고생하면 내 가족은 힘든 일 안 시켜도 되니까 그건 좋더라. 

-벼농사와 한우를 같이 하는 이유는.
한우 키우려면 벼농사가 필요하다. 한 마디로 쿵짝이 잘 맞는다고 할 수 있다. 볏짚을 구하기 가장 쉬운 방법이니까. 또한, 퇴비를 넣어주면 이삭거름은 다른 사람 넣는 양의 반만 넣으면 된다. 비료를 덜 넣으니까 전체적인 비료값도 절감되는 효과가 있다. 한우의 마블링을 만드는 데 건초를 안 쓰고 볏짚을 쓰는 경우도 많다. 건초에 들어 있는 영양소를 제한하기 위해 영양분이 없는 볏짚으로 반추 역할만 하게 하는 것이다. 하계에는 쌀을 하고, 동계에는 조사료를 하고. 이모작을 하게 되면 소 먹일 조사료가 풍부해지고 볏짚도 생성해 경제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

-겸업 농사의 장점이 있다면.
수도작을 해보니 바쁜 시즌이 정해져 있다. 내 기억으로 옛날에는 약 치러 다니고 계속 바빴던 것 같은데, 요즘은 워낙 기계화가 거의 다 돼 있지 않은가. 그리고 내가 굳이 기계를 가지고 있지 않아도 빌려서 농사를 지을 수 있다 보니 소를 키울 수 있는 상황이 됐다. 벼농사를 짓지만 일이 그렇게 많지 않고, 일 년 내내 힘이 드는 작목이 아니라 한우도 선택했는데 같이 했더니 시너지 효과가 나더라. 사실 소득 면에서도 축산을 같이 하니 도움이 많이 된다. 다만, 소값은 변동이 있다 보니 생산비를 줄이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고민 중이다. 그리고 결국은 자신이 열심히 농사를 짓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

-농번기 일과는 어떤가.
5월이 가장 바쁘다. 보통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축사로 향한다. 소 밥 주고 축사 정리하고 다시 논에 나가서 하루종일 트랙터로 돌다가 오후 5시 반쯤 돌아와 다시 축사 가서 소 밥 주고. 낙농할 때는 여기에 소 젖 짜는 것까지 포함이라 새벽부터 밤까지 쉴 틈이 없었다. 이모작을 하니 보름 사이에 베고 논 갈고 퇴비 뿌리고 파종할 준비를 마친다. 보통 5월이 바쁘다고 했는데, 확실히 농사는 일기와 잘 맞아야 한다. 5월인데 비 오기 시작하면 애가 탄다. 올해는 그게 잘 맞지 않아 수확이 힘들었다.

-올해 쌀 수확량은 어땠는지.
200평 기준 원래 평균 14개 정도 나왔었는데 올해는 10~11개(40kg) 나왔다. 주변에 수도작 농사짓고 방앗간 운영하는 친구가 있는데, 올해는 쌀이 지난해의 3분의 1밖에 안 나왔다고 쌀이 너무 없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평균적으로 25% 정도 감소한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부에서 쌀 생산량 발표를 하긴 했지만, 현장과 다르니 농민들은 믿을 수가 없다. 농업통계 자체에 신뢰가 가지 않는다. 특히 올해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옥수수 농사도 다 망했다. 일조량이 없어서 초기에 성장을 못 했고, 원래 4m까지 크는 키에 한참 못 미쳤다. 볏짚만 좋았다. 벼 벨 때 비가 안 와서, 매년 볏짚 못 묶었다는 논도 이번엔 묶었다. 주위에서는 7년에 한 번 있을 만한 일이라고 하더라. 

-나만의 농사 비결이 있다면?

나에겐 젊음이 무기다. 사실 농사라는 게 쉬는 날이 딱히 있는 게 아니고, 일이 생기면 바로 나가야 하는 거라. 강한 체력이 필요하다. 나 같은 경우도 지난 봄에 파종하다 실려 간 적도 있고, 트랙터를 한 방향으로만 몰다 보니 첫해에는 목 돌아가는 줄 알았다. 지금이야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지만, 이렇게 젊은 사람도 못 버틸 때가 있는데 어르신들은 얼마나 힘들겠는가. 그야말로 체력이 국력이다.

-자녀에게도 농사를 추천하고 싶은지.
지금 내 농장도 아들 이름을 따서 이름을 지었는데, 아들한테 자주 얘기한다. 나중에 아빠랑 소 키우자고. 하고 싶은 건 하라고 하겠지만 나도 사회생활 해보니 농사가 나쁘지 않은 것 같다. 회사 다닐 땐 삶의 질 그런 건 꿈도 못 꿨는데 그래도 농사지어보니 삶의 질도 많이 높아지고, 새벽에 나가야 하니 저녁에 술을 줄이게 돼서 건강해졌다(웃음). 가족에 대한 책임감도 개인적으로는 훨씬 높아졌다. 농업이 충분히 경쟁력 있다고 생각한다. 

-젊은 농업인으로서 느끼는 점이 있다면.
젊은 사람들이 워낙 없어서 힘들기도 하지만, 오래 농사지으신 분들과도 생각이 다르니까 그런 것에서 오는 어려움도 있다. 시대, 환경, 방식 등이 빠르게 바뀐 상황에서 과거와 현재의 괴리감을 좁히기가 쉽지 않다. 농촌에서 사는 것도, 농사를 짓는 것도 여러 사람과의 협업을 통해 이뤄지는 일이라 소통이 많이 필요한 것 같다.

-신년을 맞이해 정부에 바라는 점.
청년창업농 카페 들어가 보면 여러 가지 이야기가 오간다. 농지가 부족하다는 얘기는 늘 나오는 얘기고, 하지만 그중에서도 시도 자체를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 후계농, 청년창업농 이런 기준이 정해져 있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들이 현장에 있다. 연고가 없거나, 아는 사람이 없는 그야말로 정말 농사 하나만 바라보고 농촌으로 오는 사람이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정부 정책이 현실에서부터 시작되길 바란다.

-신축년 목표가 있다면.
번식우 50마리, 비육 80마리로 세웠다. 좋은 소를 많이 키우는 게 목표다. 한우는 좋은 정액을 구하는 게 최고의 개량 방법이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진 않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차근차근 배워서 소처럼 열심히 농사짓는 게 목표다. 농사라는 게 별로 그렇게 계산적이지 않은 것 같다. 내가 배우고 추구하는 방법대로 꾸준히 농사의 길을 걸어 나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