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소비 감소 현실 맞춰 'RPC 진입 기준' 강화해야 
쌀 소비 감소 현실 맞춰 'RPC 진입 기준' 강화해야 
  •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
  • 승인 2021.01.12 16: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규 진입 업체 협·단체 평판조회 하고

진입자격 운영실적 3년→5년 늘려야 

업계에 악영향 끼친 업체는 아예 퇴출 고려도

일부 업체 잘못 때문에 부정적 인식 확산

대출심사 강화, 거래처 신뢰 상실 등 선량한 RPC 피해

 

(한국농업신문=유은영 기자) “RPC 인가 이전에 업계의 평판을 들어봤으면 이런 일이 없죠.”

일부 RPC(미곡종합처리장) 부도로 인해 다른 선량한 RPC가 불이익을 받는 ‘부도 RPC 대책’이 업계를 달구고 있다.

한국RPC협회(회장 한정호)와 전국RPC연합회(회장 이성봉) 등 RPC 협·단체들은 정부가 신규 RPC 인가 조건을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 수확기 한 RPC 공장에 농가로부터 수매한 벼포대가 놓여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지난해 수확기 한 RPC 공장에 농가로부터 수매한 벼포대가 놓여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11일 산지 쌀 유통업계에 따르면 전국의 민간RPC들은 세밑인 지난달부터 벼 재고량 조사 등 농림축산식품부 특별감사를 받고 있다.

민간RPC 업체들은 벼 수매와 산물벼 인수 등 본업에 시간을 쏟는 대신 농식품부 감사 자료를 제출하느라 애를 먹고 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민간RPC에게 가해지는 압박은 농협보다 크다. 개인이 운영하는 민간에 비해 사업의 한 부서로 RPC를 운영하는 농협은 아무래도 재정 등 운영여력이 낫기 때문이다.

지난 수확기 농가 벼 대금을 못 줘 논란이 된 업체는 2세 운영자가 경영 경험이 부족했던 때문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고의성 부도로 볼 수 없지만, 정책지원자금을 받으려고 부도 업체를 인수해 RPC에 진입했다가 일부러 부도를 내는 일도 종종 일어나 업계의 골칫거리로 대두되고 있다.

일례로 부도난 S 업체를 인수해 지난해 상반기 RPC에 진입했던 ‘E 방앗간’도 최근 다시 매물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업체는 3년간 경영실적을 쌓고 RPC 경영평가를 통과해 지난해 7월 벼 매입자금 10억원을 배정받았다. 평균 20~30억원씩 배정받는 다른 RPC와 달리 최소 자금을 배정한 건 E 방앗간의 과거 행적에 대한 업계의 민원이 쇄도해 농식품부도 신중한 접근을 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6년 전 E 방앗간 사주가 운영했던 D 업체도 부도 업체를 인수한 것인데다 이마저 또 부도를 내고 S 업체를 인수해 이름을 바꿔 자녀 명의로 실질적 운영을 한다는 소문이 업계에 파다했다.

RPC 부도가 문제되는 이유는 운영능력이 없거나 고의성을 가진 업주가 전체 시장을 흐리기 때문이다. 우선 전체 RPC가 농가들로부터 ‘사기꾼’으로 매도되는 등 이미지 훼손에 대한 부담이 크다. 3년 전부터 농식품부 경영평가 항목이 강화된 것도 업체 한 곳의 부도로 인해 전체 RPC가 피해를 입은 대표적인 사례다. 정책자금 대출 심사시 농협에서도 담보 등을 까다롭게 요구하고 있다. 쌀 납품 거래처로부터 불필요한 의심을 받는 일도 있다.

업계에선 RPC 전체가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RPC 신규진입 심사를 강화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경남의 RPC 업주는 “부도 업체를 인수하고 3년간 경영실적만 맞추면 RPC에 재진입할 수 있다”며 “이 정도로는 운영능력 유무를 판단할 수 없다. 최소 5년 내지 8년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업주는 농식품부 지침을 맞추기 위해 벼값을 시세보다 비싸게 줘 많은 물량을 확보한 다음 헐값에 덤핑 처분하는 방법으로 매출 실적을 높여 전체 시장을 교란시키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외형은 커지지만 내실은 빈약해 조금만 상황이 나빠져도 경영이 위태로워진다. 따라서 진입 단계부터 부채가 자산의 30%를 넘으면 불승인하거나 한번 부도난 업체는 영구 퇴출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특히 쌀 소비량이 갈수록 감소하는 추세인데 RPC 수를 늘려 시장을 과열시키는 건 전형적인 탁상 정책으로 보인다.

2020년 경영평가를 통과한 RPC는 민간만 64곳. 농협을 합치면 196개다. RPC 제도가 도입된 1993년 민간RPC는 150개에서 출발해 27년 동안 꾸준히 폐업해 왔다. 광주 전남에서만 초기 진입 멤버 26곳 중 25곳이 폐업하고 마지막 남은 한 곳도 지난해 7월 문을 닫았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 정책에 따라 빚을 지며 산지쌀값 지탱에 온힘을 쏟아부어 왔는데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고 쌀 소비는 줄어 운영여건이 안 좋아졌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신규진입 업체에 대한 심사를 대폭 강화하거나 쌀 소비량 감소 추세에 맞춰 아예 신규업체를 늘리지 않는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

한 관계자는 “시.군 단위에서 신규 진입 업체를 평가하는 절차는 폐지됐지만 RPC 협.단체에 평판조회를 하면 건실한 업체를 가릴 수 있지 않겠느냐”며 “기존 있는 RPC만으로도 수확기 산지쌀값 지지 역할은 충분하다. 더 이상 늘리면 업계가 영세화를 면치 못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