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조합이 수퍼에 농산물 배송…대기업 부럽지 않아”
[인터뷰] “조합이 수퍼에 농산물 배송…대기업 부럽지 않아”
  •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
  • 승인 2021.01.25 15: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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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표 서울서부수퍼마켓협동조합 이사장
시범사업으로 강서시장 ‘집배송 센터’ 운영
수퍼 주문 물품 시장도매인에게 받아 배송
농가 소득 올려주고 소비자물가 낮추는 효과

시장도매인은 농가 케어, 조합은 수퍼 케어, 수퍼는 소비자 케어

"골목 수퍼에서 최상의 상품을 가장 값싸게 살 수 있는 시스템 만들 것"

(한국농업신문=유은영 기자) “이게 소금에 문제없다는 시험성적서예요. 계명대 실험실로 소금 1kg을 보내서 분석한 거예요.”

홍천표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서울서부수퍼마켓협동조합 이사장은 지난 세밑 그가 운영하는 수퍼 한켠에 코팅된 채 붙어 있는 서류들을 가리켰다.

2007년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 사건 이듬해에 그곳에서 생산된 소금이 오염됐을까 우려하는 소비자들의 불신을 씻기 위해서였다. 2011년 12월자 시험성적서도 그 옆에 나란히 붙었다. 그해 3월엔 일본 후쿠시마 원전폭발 사고가 일어났었다.

“동네 수퍼가 살아남을 길은 좋은 상품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거예요. 제가 직접 발품을 팔아 산지의 우수한 제품들을 대기업 제품의 3분의2 가격으로 팔고 있어요. 우리같이 조그만 수퍼에서 물건 사간다고 고마워하지도 않는 대기업들과 거래할 필요도 없고 횡포에서도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가져온 복지달걀, 김치, 젓갈 등은 동네에서 입소문이 나 점차 매출이 늘고 있다고. 앞으로 산지 직거래 제품들을 대폭 늘려 장바구니 물가도 낮추고 중소기업도 키워주는 역할을 할 계획이다. 그러기 위해선 절대적으로 앞서야 할 게 가락시장에 ‘시장도매인제’ 도입이라고 한다.

“나 같은 사람 몇 명만 있으면 농가는 안정적으로 판매할 수 있어요. 하지만 수퍼가 전적으로 산지 직거래에 나서는 건 불가능하죠. 동네 수퍼는 조금씩 갖다주는 도매물류시스템이 필요해요.”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홍천표 서울서부수퍼마켓협동조합 이사장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홍천표 서울서부수퍼마켓협동조합 이사장

 

-가락시장에 ‘시장도매인제’ 도입은 골목상권 화두인 것 같다.

직거래를 농가와 수퍼가 할 순 없어요. 수퍼 운영자가 물건 수급까지 할 여건이 안 되니까. 일부 생산제품을 갖고 오는 건 가능하지만 그 농가 생산제품 전량을 갖고 오는 건 불가능하거든. 수퍼에서 이걸 보편적으로 하는 건 어렵고, 도매시장에서 해야 해요. 경매제에선 불가능하지만 시장도매인제에선 가능해. 이게 확산되면 농산물 생산예측까지 가능해져요.

가락시장은 경매제만 하죠. 지방에서 물건 보내면 경매를 부치는데, 물건이 달릴 적에는 금값 주고 넘치면 고물값 쳐 주는 게 단점이에요. 또 누군가 사재기하고 수급조절 들어갈 수도 있고.

시장도매인은 농가와 직접 거래해. 농가가 ‘나는 100원만 받음 돼’ 그럼 100원 받아주면 되고…. 그런데 경매제에선 달릴 땐 100원짜리가 200~300원 가고 넘칠 땐 10원 30원 가는 거야. 농민은 값을 안정적으로 받을 수가 없어요. 나는 그거야. 두 제도를 경쟁 시켜라. 양(量)으로만 하면 발전이 안돼요. 명품을 비싸게 주고 사듯이 품질 좋은 물건을 제값 주고 사 주는 제도도 있어야 농업이 발전해요.

-‘조금씩 갖다주는 시스템’이 무엇인가.

월 매출 5000만원이 안 되면 생활비를 수퍼에서 벌 수 없어요. 농산물을 취급해야 그 정도 매출을 올리는데 그게 안 되면 한 사람은 나가서 돈을 벌어야 하고 남은 한 사람이 식사도 못하고 화장실도 제때 못 가면서 가게를 지켜야 해요.

언제 도매시장을 가요. 결국 도매시장이 수퍼에 물건을 갖다줘야 한다는 거지. 수퍼는 다양한 사람이 다양한 물건을 원하지 않나. 어떤 물건인지 볼 수 없는 채로 다량의 물건을 거래하는 경매제로는 못해요. 시장도매인은 다양한 품목을 소량씩 예정된 가격에 가져다줄 수 있어요. 그것도 직거래로 값싸게 가져다줘 수퍼는 공급가를 낮출 수 있고 경쟁력을 갖게 돼요.

-강서시장에서 ‘집배송 센터’를 운영한다고.

시장도매인의 역할을 나눈 거죠. 우리 협동조합 회원사가 3만개인데 그 많은 수퍼에 시장도매인이 배송까지 하려면 산지에는 언제 가겠어요. 집배송 센터에서 각 수퍼로부터 받은 주문을 오후 5시까지 마감해 7시에 시장도매인에게 전달해요. 그럼 도매인이 다음날 새벽 집배송 센터로 각 주문별로 소분(小分)한 걸 갖다주면 센터가 수퍼로 배송해줘요.

내가 개인적으로 시범사업겸 시작했어요. 노계호 지사장(서울농수산식품공사 강서지사장)에게 집배송 센터를 크게 넓혀 달라고 만날 부탁해요. 그럼 식당, 급식업체까지 연결할 수 있으니까. 초기라 회원사는 몇 십 군데지만 가락시장에 시장도매인제가 도입되고 불이 일어나면 금방 전국으로 확대돼요. 주문은 온라인 쇼핑몰 ‘강서몰’(www.gangseomall.co.kr)로 받아요.

-개인이 하기가 쉽지 않을텐데.

동네수퍼가 SSM(기업형 수퍼마켓), 대형마트와 경쟁에서 어떡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에서 출발했어요. 협동조합 임원으로서 이 사람들 살려야 할텐데, 어떻게 해 줘야 하나. 사실 시행착오로 까먹은 돈만도 몇 억이죠. 앞으로는 편의점에서도 농산물을 취급하게 돼요. 골목상권이 살려면 편의점보다 저렴하고 신선하게 판매하는 길밖에 없어요. 내 장사를 하려는 게 아니라 내 조직을 살리기 위해 수퍼와 농가들이 어울리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거지. 어떻게 그들을 이겨, 홀딱 벗고 도전하는 거예요.

홍천표 이사장이 자신의 마트 매장 안에 공개한 '소금 시험성적서'를 가리키고 있다. 2007년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 사건과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폭발 사고 이후 생산한 소금의 성분을 계명대에 보내 분석한 것이다.
홍천표 이사장이 자신의 마트 매장 안에 공개한 '소금 시험성적서'를 가리키고 있다. 2007년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 사건과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폭발 사고 이후 생산한 소금의 성분을 계명대에 보내 분석한 것이다.

 

-앞으로 조합의 역할이 커지겠다.

시장도매인은 생산자와의 소통에 집중하고 우리 조합은 시장도매인, 수퍼들과 소통을 잘하면 돼요. 시장도매인은 양질의 물건을 수집하는 것에만 집중하라 이거지. 판매는 조합이 할 테니까. 시장도매인은 농가를 케어해주고, 조합은 수퍼를 케어해주고, 수퍼는 소비자를 케어해주고…. 소비자는 골목 수퍼에서 최상의 상품을 보다 값싸게 살 수 있게 되고, 이것이 확산되면 국가 전체적으로 장바구니 물가가 낮아지고 국민 삶의 질이 올라가게 돼요.

궁극적으로 조합이 수퍼 교육과 마케팅 지원까지 하게 되는 것. 그것이 내 꿈이에요.

-구체적으로 수퍼를 어떻게 케어해 주게 되나.

시장도매인이 산지(농가)와 소통할 수 있어 가능한 얘기에요. 예를 들어 농가가 ‘우리집 감자가 언제 얼마만큼 나올 거야’ 얘기해 주면 도매인이 우리한테 전달해주고, 우리(조합)는 수퍼들에게 ‘이거 이렇게 나오니까 세일 해’ 하고 POP(광고 피켓)까지 싹다 만들어 주는 거야. 또 고기가 새로 들어오면 ‘좋은 소 들어왔습니다’ 하고 소비자한테 문자 날려.

이런 시스템이 전국적으로 자리잡으면, 전국 1만개 수퍼가 똘똘 뭉치게 돼. 새벽배송도 가능해지는 거야. 굳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출근시간에 누가 요리해서 밥해 먹어요. 수퍼는 8시에서 11시까지 여니까 자기가 주문해 놓은 거 와서 집어가면 되고 급하면 배달해주고, 직원 없으면 배민(배달의민족) 시키든지. 이렇게 하면 골목상권도 충분히 살아나요.

-농가와 중소기업, 소비자 모두가 이롭겠다.

“같이 삽시다.” 경영철학이에요. 옆집이 야채가게라 청과를 취급 안 해요. 대신 축산물을 특화시켜 단골이 많아요. 집배송 센터도 성공사례를 만들기 위한 작업이에요. 내가 먼저 길을 닦고 시스템을 만들어 놓으면 뒤따라오는 사람들이 수월하지 않겠어요. O2O(온.오프라인 연계) 수퍼 만들어 밸류체인 갖추면 대기업 부럽지 않아요.

보통 수퍼 하는 사람들은 대기업이 만든 거 가져다가 어떡하면 싸게 팔까를 생각해요. 나는 소비자한테 따끔하게 얘기해요. 이 제품은 대기업에서 나온 거라 50% 소비자가 더 부담하는 거라고. 중소상인, 농민들도 잘 살아야하지 않겠어요.

우리 매장은 대기업 제품의 비율이 적어요. 시스템이 확산되면 중소기업 제품이 많이 팔리고 원료를 대는 농가들도 안정적으로 팔게 돼요. 대기업 구매담당자 눈치 볼 필요도 없어지고. 남의 것 뜯어먹고 사는 게 잘 사는 거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옛날 경주 최 부자는 ‘사방 100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고 자식들을 가르쳤죠. 내가 먹고 살만하면 주위의 어려운 남도 돌아봐야지. 같이 잘 살자는 마음을 가져야 해요. 좋은 바이러스가 많이 많이 퍼졌으면 좋겠어요.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