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타넷으로 퇴근 2시간 일찍 시켜 드립니다”
[인터뷰] “이타넷으로 퇴근 2시간 일찍 시켜 드립니다”
  •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
  • 승인 2021.02.01 19:18
  • 댓글 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백남곤 ㈜이타넷 대표, 가락시장 중도매인이 IT기업 창업
손으로 작성하던 판매장부…포스&회계 통합 프로그램 개발
1만명 유통인에 ‘퇴근 후 여가시간’ 찾아준 ‘시스템 현대화’ 이뤄
회원가입 '붐' 강서 시장도매인의 '디지털 유통혁신' 선도

‘이타(利他)’와 IT가 함축된 의미 '이타넷'

현장서 손으로 기록하면 경리직원이 재입력

재고 맞춘 다음에야 낮 12시 퇴근..."바꾸고 싶었다" 

'터치' 한 번으로 현장과 사무실 업무가 동시에 끝

세상에 없던 물건, '농수산물 도소매 플랫폼'으로 진화시킬 것

백남곤 대표는 현장과 사무실 업무가 한번의 입력으로 동시에 끝나는 포스 및 회계 통합 프로그램 '이타넷'을 개발 보급해 도매시장 상인들의 퇴근 시간을 최소 2시간 앞당겨 주고 있다. 백 대표가 '집에 언제 가지?' 카피가 적힌 이타넷 유니폼을 들어보이고 있다. 

 

(한국농업신문=유은영 기자) “옷은 원래 여름에 한 벌, 겨울에 한 벌씩만 입는 줄 알았어요.”

지지리도 가난했던 소년, 전라도 남해바다 인근의 시골마을에서 고등학교를 간신히 마친 그를 기다리는 건 노가다판이었다. 대학생이 부러웠던 그는 닥치는 대로 일해 학비를 벌며 대학엘 갔고 남들처럼 직장을 잡아 취직했다. 그리고 1년 후 그는 가락시장으로 왔다. 부자가 되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식당 창고와 당구장 당구대에서 먹고 자고 할 때, 안양 육교에서 군고구마를 팔 때 늘 머릿속을 맴돌던 꿈이었다.

그렇게 가락시장 생선 도매상 점원이 된 그는 10년만에 수산물 중도매인 자격을 얻어 (유)세림씨푸드 대표가 된다. 백남곤 대표는 회사 설립 3년만에 판매왕 달성에 이어 2015년 가락시장 3400여 업체 중 단 한 개 업체가 받을 수 있는 최우수 중도매인상을 수상하는 등 줄곧 판매왕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어떤 경우에도 상도를 벗어나지 않는 철저한 상인정신과 고객중심 거래로 2016년 연매출 200억(수산 3개 사업자 총합)의 탄탄한 중견기업이 됐다.

이제 백 대표는 '남을 이롭게 하는 일(利他)'에 몰두하고 있다. 6년의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탄생한 아이티기업 ㈜이타넷은 도매시장 상인들의 퇴근 시간을 두 시간씩 앞당겨 주고 있다. 지난달 6일 백 대표와 만나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밤낮 없이 일하는 이 분들에게 편안한 안식처인 집이라는 단어에는 삶의 애환이 담겨 있어요. 도.소매 매출관리 프로그램 이타넷으로 밤새 일하며 낮 12시에 퇴근하는 상인들에게 삶의 여유와 꿀잠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이타넷 로고. 남을 이롭게 한다는 뜻의 '이타(利他)’와 IT가 함축돼 있으며, 알파벳 A에는 노트북을 사용하고 있는 노동자의 모습이 보인다.
이타넷 로고. 남을 이롭게 한다는 뜻의 '이타(利他)’와 IT가 함축돼 있으며, 알파벳 A에는 노트북을 사용하고 있는 노동자의 모습이 보인다.

 

-생선 도매상 점원 시절은 어땠나.

당시 몸무게 50kg로 배달일을 했다. 생선 리어카를 끌며 하루 80톤을 들었고 40km를 이동했다. 토요일 일요일 가리지 않고 매일 15시간씩 근무했다. 이 자리에서 꼭 성공하고 싶다는 일념하나로 열심히 일했다. 내 일을 하는 지금이 오히려 너무 편하다. 만일 신(神)이 있어 그때로 돌아가라고 한다면 더 큰 미래를 보장한다 하더라도 돌아가지 않겠다. 죽을 만큼 힘들었기 때문이다.

-매우 가난했다고.

등록금이 없어 대학에 못 갔던 그때서야 가난하다는 걸 알았다. 원래 그렇게 사는 건 줄 알았다. 동네 형한테서 물려받은 옷 한 벌로 사계절을 나고 고무신을 신고 비포장 도로를 걸어 학교 다니고 초가집에서 감자, 고구마를 밥 대신 먹는 게 일상이었다. 대학은 생각도 못하고 가구 배달, 제약공장, 납땜질, 노가다, 식당 알바, 온갖 일을 다 했다. 기술 학원 다니며 알바하던 당구장에서 대학생들을 봤는데 너무 부럽더라. 안양에 있는 대림대학교를 갔고 식당 창고에서 먹고자며 학비와 생활비를 벌었다.

-취직도 했었는데 왜 가락시장으로 왔나.

1997년 첫 월급 60만원을 받았는데 도저히 앞이 안 보였다. 안양 육교에서 군고구마 팔 적에 내게 장사 수완이 있다는 걸 느꼈었다. 부자가 되고 싶다는 게 꿈이었고. 장사를 배워보자, 어디 가서 배울까,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게 가락시장이더라. 무작정 올라와 생선 도매상 점원으로 취직했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건 군고구마 장사, 항상 믿어준 아내이며 전 사장님에게도 늘 감사한 마음이다. 

-사업이 빠르게 성장했다.

상황이 안 좋을 때 창업해서 한 달만에 확장시켰다. 그렇다고 남의 손님 뺏은 건 절대 아니다. 새 고객을 잡아 그 고객을 성장시키며 이 자리에 왔다. 시장 상인들도 내가 배달할 때부터 봐 와서 인정해 주신다. 남의 손님이 오면 먼저 문제가 뭐냐고 물어보고 본래 거래처에 얘기해 풀라고 돌려보낸다. 남의 손님 뺏지 않는 게 상도의라 생각하며 나만의 철칙이다. 투명한 거래와 신뢰를 바탕으로 고객과 함께 매출을 신장시켜 왔다. 주 거래처는 서울시청, 농협하나로, 동네 중소형 마트, 식자재 상인 등으로 한번 거래하신 분들은 이탈하지 않고 계속 거래하신다.

-생선 도매상이 아이티(IT)라니, 뜬금없는데.

남을 이롭게 한다는 뜻의 ‘이타(利他)’와 IT가 함축된 의미에서 이타넷이 탄생했다. 나와 함께 호흡하고 있는 유통인의 애환을 풀어보고자 시작했다. 

가락시장만 해도 3400명의 도매상과 수 천명의 직원들이 판매와 매출관리를 일일이 수기로 한다. 이를 경리직원이 재입력하고 재고를 맞춘 다음에야 낮 12시 지친 몸으로 퇴근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이타넷’은 휴대용 포스 및 회계 통합 프로그램이다. 태블릿PC와 사무실PC 간에 자료가 실시간 연동되며 휴대용 프린터로 무선 출력이 가능하다. 남을 이롭게 한다는 ‘이타(利他)’이자 IT 이고, 로고에 노트북을 치는 노동자의 모습이 보인다.

-이타넷의 장점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첫 번째로, 판매와 동시에 매출 입력이 끝난다. 손으로 쓰지 않기 때문에 오류가 나지 않아 고객과 신뢰가 쌓이고 매출과 동시에 재고에 실시간 반영돼 초과 판매 오류가 방지된다. 그외 발주기능, 문자, 팩스기능 등 다양한 기능이 탑재되어 있으며 월매출 자동합산 및 계산서 일괄 발행 등 편리한 점이 매우 많다

특히 영업통계의 신뢰도는 이타넷만의 통계방법을 이용해 가격의 등락폭이 많은 이 업계에 독보적이라 할 수 있다.

그보다도 앞선 가장 큰 장점은 현장 판매 직원들의 퇴근시간을 최소 2시간 이상 앞당긴다는 점이다. 수산 쪽은 밤 7시에 출근해서 다음날 오후 1~2시까지 일하는 분도 있다. 채소 쪽도 밤 8시에 출근해 다음날 11~12시까지 일하는 게 다반사고 재고 맞추려면 2~3시까지도 한다. 그래서 이타넷의 유니폼엔 '집에 언제 가지?'라는 카피가 붙어 있다. 

지난해 추석 즈음에 청과 쪽에서 급하게 연락이 왔다. 자기들은 재고도 안 맞고 직원들도 지쳐서 난리라고 하더라. 요즘엔 저녁 8~9시에 가보면 불이 꺼져있다. 집에 들어가 잠잘 시간도 부족한 사람들에게 여가 시간을 준 것, 그게 가장 큰 변화다.

-개발 동기는.

어려운 상황들을 이겨내고 옆을 돌아보니 아이들이 성장해 있더라. 나는 밤새 일만 하느라 아이들을 보지 못했다. 내가 나올 때는 자고 있고 들어오면 없으니. 아내에게도 미안했고 내 삶도 허망하게 느껴졌다. 나를 믿고 따라오는 많은 직원들, 그들의 삶도 그러지 않겠나. 나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 삶의 여유를 줘보도록 뭔가 개선을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시스템을 바꿔보자, 현장에서 종이전표가 아닌 IT를 접목해 매출을 잡고, 그렇게 함으로써 사무실 업무가 한번에 끝나게끔 바꿔보자.

이타넷의 출발이 그렇게 시작됐다. 6년 동안 투자비만 10억이 넘고 시행착오도 6~7번 겪었다. 세상에 없는 물건을 꺼내야 하니 사건사고가 많아 포기할 상황이 100번은 넘게 찾아왔다.

-고생한 만큼 보람이 크겠다.

2020년 8월경 영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낮 12시까지 늘 있었던 현장 직원들이 이제 빠르면 8시에 퇴근한다. 사무실도 차 마시며 여유있게 일한다. 초기의 생각이 실제 일어나는 걸 확인하는 중이다.

나처럼 새벽이슬 맞으며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두 시간은 줬다고 장담한다. 이타넷은 손가락으로 찍어 입력하니 몸이 불편해 글씨 쓸 수 없는 사람에게도 도움을 주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젊었을 때 꿈꾸던 취미생활을 찾게 됐다는 감동적인 말들을 한다.

강서시장은 붐이 일었다. 가입자 수가 계속 늘고 있고 올해 지나면 사용자가 꽤 될 것 같다. 시장도매인들이 받아들이는 속도가 빠른 것 같다. 앞으로는 이타넷을 통한 공유 플랫폼을 만들려고 한다. 단순한 회계 프로그램이 아닌 농수산물 도.소매 플랫폼으로 진화시킬 생각이다. 이 목표를 위해 처음 리어카를 끌었던 마음과 각오로 일하고 있다. 

도.소매 유통 플랫폼에 소비자의 니즈를 담아내 많은 사람이 행복해 지는 IT기업으로 성장시키고 싶다. 

-앞으로의 계획.

이타넷이 아이티 기업으로 크게 성장한다 해도 대기업이 하는 것처럼 지금의 유통구조를 흔들고 싶지 않다. 중간 도.소매 상인들도 분명히 자기 역할이 있다. 이들의 역할을 극대화하는 일을 하겠다. 사업이 성공하면 이 분들에게 돌려줄 부분도 고민해 보겠다. 도.소매 상인들에게 어떤 걸 돌려줄지 구체적으로 내놓을 순 없지만 분명히 생길 것 같다.

지금 도매시장은 유통구조의 변화를 위해 격동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계절이 바뀌었는데, 봄이 온 걸 알면서도 겨울 옷을 고집하는 세력이 있다. 하지만 가락시장 시설 현대화와 함께 유통구조도 다변화할 것이다. 그러나 상인에게는 유통구조의 개선과 함께 가장 시급한 것이 시스템의 현대화다. 20년 전 시스템을 현대화하기 위해 이타넷은 밤새워 일할 것이다. 

유은영 you@newsfar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