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팜리포트] 수급조절용으로 전락한 공공비축미① 본질 잃어가는 공공비축미, 정부 양곡 재고 물량과 구분 필요
[뉴스팜리포트] 수급조절용으로 전락한 공공비축미① 본질 잃어가는 공공비축미, 정부 양곡 재고 물량과 구분 필요
  • 이은혜 기자 grace-227@newsfarm.co.kr
  • 승인 2021.02.03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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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재고 부담 증가…안정적 공급체계 마련돼야

(한국농업신문= 이은혜 기자)공공비축미 제도는 양곡부족으로 인한 수급불안, 자연재해, 전쟁 등 식량위기에 대비해 일정물량의 식량을 비축하는 제도다. 현재 ‘양곡관리법 제2조 제3호’에 따르면 공공비축미곡은 정부가 민간으로부터 시장가격에 매입해 비축하는 양곡을 뜻하고, ‘양곡관리법 제10조 제1항’에 따라 공공비축미곡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양곡을 비축·운용하는 것은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권한이다.

우리나라 실정 맞는 제도 운용 재검토
이처럼 공공비축미는 전시 상황에 준하는 식량위기에 쓰여야 하지만, 현재는 정부의 수급조절용 대안으로 쓰이고 있어 농업계에서는 공공비축미가 본래 목적을 상실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공공비축제도가 도입 당시의 취지와 달리 운용돼 오고 있으며 국내외 쌀 산업 여건도 변화함에 따라서 운용 전반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2004년 쌀 농가의 소득안정, 안정적 식량 확보 등을 위해 양정개혁을 단행했다. 양정제도를 개편하면서 농가의 소득안정 기능은 쌀 직불제, 식량 비축 기능은 공공비축제도로 각각 전환했다. 정부는 공공비축미의 비축량을 세계식량기구인 FAO의 권고를 따른 것으로 연간 소비량의 17~18%, 국민이 2개월간 먹을 수 있는 분량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농업경제학회가 2019년 발행한 농업경제연구 학술지에 따르면, 연간 소비량 설정 기준은 1983년 발표된 FAO의 보고서에 그 근거를 두고 있는데, 이마저도 당시 추정 재고비율은 개별 국가 차원이 아닌 세계 전체를 두고 추정한 결과였다고 밝혔다. 오랜 기간이 지났고, 그 사이 농업 구조도 바뀐 만큼 우리나라 상황에 적합한 재고율을 산출하는 방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공공비축미 수매 현장에서 트럭에 톤백 벼를 실어 나르고 있다.
공공비축미 수매 현장에서 트럭에 톤백 벼를 실어 나르고 있다.

공공비축미 실질적 구분·회전비축방식 바람직
2016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원장 김홍상)이 발표한 ‘공공비축제도 운영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공공비축제 개선방안으로 양곡관리법과 2004년 양정개혁의 기본 방향에 부합하고 WTO 규정과 합치돼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공공비축제 원칙에 부합되지 않은 부분이 존재하고 가격보전이나 수급조절 기능으로 운용되고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실수요 물량과 분리해 매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는 의견을 내놓았다.

김태훈 농경연 연구위원은 “비상시에 대비해 공공비축미를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은 수급조절 등 다른 목적이 아닌 오로지 가지고 있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면서 “공공비축미를 어디까지 볼 것인지 그 개념 또한 다시금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에서 매입한 쌀 중 신곡에 대한 수요들을 현재는 공공비축미에서 담당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분리해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연구위원은 또 “물량에 대한 고민은 계속해서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공공비축물량은 순차적으로 비축미 연산 갱신이 가능하도록 회전비축방식이 바람직하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회전비축 방식을 활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엄밀하게 따지면 완전한 회전비축이 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농경연 관계자는 “선입선출의 원칙에 의해 시장에 영향을 끼치지 않고 풀려야하는데, 어느 해는 복지용, 어느 해는 군관수용으로 순서 없이 나가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선입선출이나 회전비축에 정확하게 부합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이에 회전비축을 위해서는 현재 순수 식량안보 목적의 공공비축과 군관수용, 민수용 등 정부 실수요 매입을 분리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또한, 쌀 생산이 일시적으로 과잉되었을 경우 수급조절을 위한 정부 개입은 공공비축제와 별도로 운용될 필요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임병희 (사)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 사무총장도 공공비축미를 실질적으로 구분해 관리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임병희 사무총장은 “공공비축미는 항상 확보돼야 하는 물량, 대기 중인 물량으로 남겨져 있어야 하는 만큼 정부 보유 양곡 재고물량에서 제외하는 것이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묵은 쌀 처분 문제 지적…보관 환경 개선돼야

한편, 쌀 재고량이 늘어나며 3년 이상 묵은 쌀의 처분 문제도 쌀 산업의 산적한 현안으로 꼽히고 있다. 이에 지난 2015년 9월, 농경연이 주최해 ‘늘어나는 쌀 재고,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해가 갈수록 생산 감소보다 쌀 소비 감소폭이 커서 매년 초과공급량이 발생하고, 의무수입물량까지 더해지며 쌀 재고부담이 커지는 가운데 참석한 업계 관계자들은

이 같은 현상은 쌀 가격, 정부 재정, 나아가 쌀 산업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이에 묵은 쌀을 일반가공용으로 쓸 때 수요확대를 위해서는 지속적인 공급체계가 마련돼야 한다는 필요성을 제기했는데, 수급조절 목적의 일시적 가공용 원료 공급이 아닌 안정적인 원료공급 체계를 조성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임병희 총장은 “햇반류와 미반류를 밥쌀용 소비로 산정하는 것도 고려해봐야 한다”며 “시장과잉 물량에 대해 격리원칙을 법제화하고 쌀 수급에 공공비축미가 투입되는 것이 아닌 국내 수급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여건을 미리 희석시키거나 다른 방안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임 총장은 3년 이상 묵은 쌀은 전부 소진돼 남아있는 쌀이 거의 없겠지만, 벼 상태로 관리되는 지금의 시스템 하에서 정부양곡창고의 노후화도 계속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보관 환경에 대한 개선책이 마련돼야 한다고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