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PC 지원대책 법률로 보장해야
RPC 지원대책 법률로 보장해야
  •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
  • 승인 2021.02.18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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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품질쌀 보급·산지쌀값 지탱…쌀 산업 발전 기여 커
공공비축제 하에서 쌀값 하락 누적적자 안고 정부 정책 순응
지원은 벼 매입자금 융자뿐, 혜택 뒤따라야

벼 매입자금 배정 예산 연간 1조 2308억원

'저리 대출' 혜택...수수료 등 감안하면 혜택 크지 않아

수확기 1.5배 의무매입, 매해 까다로운 심사 받아야

 

'이중곡가제' 추곡수매제 때 정부가 안던 손실

공공비축제 전환 뒤 대신 안으며 정부 정책 순응

기여 큰 반면 혜택은 없다시피...특혜시비 휘말리기도

법률로 RPC 지위 보장해 일반 방앗간과 차별 명확히 해야 

 

(한국농업신문=유은영 기자) 고품질쌀 보급 기반 마련과 산지쌀값 지지 기능을 하는 미곡종합처리장(RPC)이 해마다 까다로운 심사와 엄격한 규제를 받는 반면에 역할에 걸맞는 지원은 이뤄지지 않아 개선이 요구된다.

미곡종합처리장(RPC)에서 수확기 공공비축산물벼를 매입하고 있다.[자료사진]
미곡종합처리장(RPC)에서 수확기 공공비축산물벼를 매입하고 있다.[자료사진]

16일 산지 쌀 유통업계에 따르면 RPC에 제공되는 정부 지원은 벼 매입자금 지원이 유일하다.

수확기 정부를 대신해 물벼 상태로 매입한 공공비축벼를 이듬해 정부 결정에 따라 인수할 수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특혜성 시비에 휘말리곤 한다. 이런 잡음이 나오는 것은 RPC에 대한 지원 근거가 제도적으로 마련돼 있지 않은 때문이다.

정부는 올해 1월 지난해 수확기(10~12월) RPC가 매입한 공공비축벼 8만톤 가량을 RPC에 판매하는 ‘산물벼 인수도’를 실시했다. RPC가 사서 RPC 창고에 보관 중이기 때문에 인수를 희망하는 업체는 벼값만 정부에 지불하면 되는 것이다. 특혜성 시비는 산물벼 인수도에 참여하지 못하는 다른 방앗간들에게서 불거진다. 이들 방앗간은 RPC가 아닌 일반 도정업체들도 산물벼를 인수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RPC들은 덩치가 커진 공장 운영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실정이고, RPC 창고에 있는 벼를 굳이 다른 데로 옮길 필요가 있겠느냐는 실효성 논란도 제기된다.

한 관계자는 “통계청 산지쌀값이 RPC 출고가를 기준으로 나온다. 산지 쌀 도매유통업체인 RPC를 통해 쌀 산업이 제도권으로 들어와 쌀값 통계가 잡히기 시작했다”며 “RPC가 정책적으로 기여한 만큼 지위를 보장하는 제도 마련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대로면 RPC는 임도정업체에 치이고 정부양곡도정공장에 치이는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더구나 RPC에 주는 벼 매입자금도 무상 제공이 아닌 ‘저리(低利) 대출’ 지원이라는 데서 이런 요구가 더욱 높아지고 있는 분위기다. 정부는 매해 1조2308억원 가량의 정부예산을 세워 RPC 벼 매입자금 지원에 배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돈을 빌리려면 농협에 담보를 제공하고 신용보증기금을 활용해야 한다. 금융기관이 거절하면 빌릴 수 없을뿐더러 이것저것 붙는 수수료를 감안하면 요즘 시중금리와 별 차이가 없어 사실 저금리 혜택도 크지 않다.

오히려 이렇게 빌린 벼 매입자금이 족쇄가 되어 빌린 돈의 150%를 수확기에 의무적으로 사야 한다. 수확기 양껏 사놓은 벼를 이듬해 도정해 쌀로 파는데, 쌀값이 낮아지면 벼값을 건질 수 없고, 실제 최근 10년 동안 2017~2019년을 제외하고 쌀값 하락으로 손실을 봤다. 20년을 기준으로 하면 16년은 벼값보다 쌀값이 떨어져 적자가 누적됐다.

◆ 쌀 판매 잘 돼도 30%는 외상...빚으로 빚 갚는 딜레마 

물론 RPC에서 일반 도정업체로 돌아가면 벼 매입자금을 빌리지 않아도 된다. RPC가 얻는 빚은 평균 10억에서 50억원 정도. 쌀이 잘 팔린다고 해도 30% 정도는 외상으로 깔고 있기 때문에 빚을 갚기 위해 다시 빚을 얻을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또 빚을 계속 얻기 위해 RPC 자격을 유지하려고 시설과 규모를 지속해 확대해야 하는 부담도 있다.

쌀 품질은 보관 온도와 도정 기술에서 결정되므로 RPC 시설의 첨단화는 필수다. 정부는 시설현대화 보조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업체도 최소 30억원 정도는 자기 부담을 들여야 한다. 쌀을 좋은 값에 팔아 시설 투자비를 찾으면 되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좋은 시설에서 나온 고품질쌀이라도 납품업체에서 제값을 쳐주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시설 투자비도 벼 매입자금과 함께 빚으로 남게 되는 게 다반사다.

RPC 업체 관계자는 “RPC 쌀은 당연히 좋아야 한다는 게 거래처들의 생각이다. 품질은 기본이기 때문에 거기에 값을 쳐 줄 필요를 못 느끼는 것”이라며 “결국 거래처를 뺏기지 않으려면 가격 경쟁을 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농식품부는 매해 ‘쌀 산업 기여도 평가’를 통해 평가에 참여한 도정업체들 중 RPC 유지 및 신규 진입 업체를 결정한다. 평가항목이 40여가지가 넘고 중복되는 항목이 많아 개선을 요구한지도 3년이 됐지만 규제가 더 까다로와졌다는 게 다수의 반응이다.

RPC는 2004년 정부가 이중곡가제로 농가소득을 보전했던 추곡수매제를 폐지하고 공공비축제로 전환한 뒤 도입됐다. 수확기 홍수출하되는 산지 벼를 매입해 쌀값을 지지해주는 역할을 한다.

주요 농민단체도 지난해 11월 양곡수급안정위원회에서 “벼를 사 주는 RPC가 있어야 농가도 살 수 있다”고 인정한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설립목적에 부합해 농업 보전과 쌀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며 “다만 정부정책에 순응하며 막대한 적자를 떠안는 데 비해 RPC로서 혜택은 전무한 실정이다. 그간의 공로를 인정해 지원대책을 마련하고 법률로써 보장해 줬으면 한다”며 섭섭한 감정을 드러냈다.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