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잔치하는 농협, 통곡하는 민간RPC
[데스크칼럼] 잔치하는 농협, 통곡하는 민간RPC
  •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
  • 승인 2021.03.24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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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업신문=유은영 부국장) 같은 RPC(미곡종합처리장)인데 벼가 부족할 땐 농협과 민간(개인 사업자)의 상황이 하늘과 땅 차이로 벌어진다.

2020년 흉년으로 벼도 쌀도 부족한 올해 계속 상승하는 벼값에 쾌재를 부르는 건 비RPC농협(도정시설이 없는 농협)이다. 민간RPC들은 수확기 사둔 재고가 떨어지는 3월경부터 비RPC농협으로부터 원료곡을 산다. 농협은 수확기에 평균 6만8~9000원에 벼를 사들였고 현재 산지에서 거래되는 벼값(40kg)은 7만5~6000원이다. 시세차익만 포대당 7~8000원에 달한다.

벼를 도정해 쌀로 팔아 이윤을 남겨 경영을 해야 하는 민간RPC들은 지난 수확기 농가로부터 7만~7만1000원을 주고 벼를 샀다. 농가들은 대부분 수확기 RPC에 팔기 때문에 3월부터는 비RPC농협이 민간RPC들이 벼를 사는 주요 구매처가 된다. 민간RPC들은 이때를 대비해 농협이 벼를 산 값에 1~2000원 더 얹어주는 방법으로 미리 원료곡 계약을 해둔다.

그러나 이 계약이 잘 지켜지지 않아 문제가 불거진다. 특히 올해처럼 벼가 부족한 해는 민간RPC의 근심이 깊어진다. 비RPC농협이 원래 계약한 값에 팔지 않고 더 높은 값을 부르는 것이다. 부르는 가격에 벼를 사 쌀값에 붙여 팔면 간단하지만 시장상황이 녹록치 않다. 이번엔 농협RPC가 발목을 잡는다.

농민을 위해 존재하는 농협의 특성상 농가 출하희망물량의 전량 매입을 고수해온 농협이 양껏 사들여 쟁여놓은 벼를 6월부터는 팔아치워야 하기 때문이다. 신곡을 들일 창고를 비워놓아야 하는 농협RPC들은 같은 값에 물량을 더 끼워주는 식으로 덤핑에 들어간다. 그러니 민간RPC들은 3월에 7만5~6000원을 주고 비RPC농협에서 벼를 사와 6월쯤부터 농협RPC의 물량공세로 쌀값이 하락하는 상황에 내몰려 쌀 납품처에 쌀값을 깎아 납품하는 처지가 된다.

RPC는 수확기 홍수출하되는 산지 벼를 매입해 산지쌀값을 지지하고 첨단 도정시설을 통한 가공으로 고품질쌀 기반을 닦으라고 농림축산식품부가 1992년부터 도입한 양곡정책이다. 쌀 생산 농가를 지원하기 위해 생겨난 태생적 특성상 벼를 쌀값보다 다소 높게 사줘야 하는 부담을 지고 있다.

짚어야 할 것은 개인 사업자가 경영의 부담을 안고 농가와 쌀산업에 기여하는 것이 타당한지다. 물론 농협도 RPC 적자만 2500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농협은 개인이 경영을 책임지지 않을뿐더러, RPC이든 비RPC이든간에 수확기 전량 매입으로 농가 벼를 사주고 이윤이 남으면 농가에 환원하는 것으로 농가와 함께 살아갈 길을 찾았다. 적자에 허덕이는 건 민간과 다르지 않지만 공익성을 갖는 기관으로 인식되고 있다.

민간RPC는 쌀 장사에서 이윤을 남기지 못하면 다른 자영업처럼 폐업하거나 심하면 빚을 지고 ‘깡통’을 차는 업체도 적지 않다. 양곡정책으로 도입된만큼 민간RPC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공매에도 벼값, 쌀값이 강세인 이유가 농협이 시세차익을 누리기 위해 벼를 안 풀기 때문이라고 한다. 국민주식을 소비자들이 편하게 가져갈 수 있도록 농협이 창고의 문을 활짝 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