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기후변화에 맞춰 벼농사 시기도 다양성을 갖춰야
[전문가칼럼] 기후변화에 맞춰 벼농사 시기도 다양성을 갖춰야
  • 한국농업신문 webmaster@n896.ndsoftnews.com
  • 승인 2021.10.25 10: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성환 국립식량과학원 논이용작물과 농업연구관
오성환 국립식량과학원 논이용작물과 농업연구관.
오성환 국립식량과학원 논이용작물과 농업연구관.

쌀이 점점 식탁에서 사라지고 있는 지금, 2020년 기준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57.7kg으로 통계가 시작된 1964년 이래로 가장 적다. 이는 식생활의 서구화와 쌀 대체식품 확대로 쌀 소비도 건강과 간편성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트렌드가 변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쌀은 우리 국민의 주식이며 우리나라 농업기반은 주로 벼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다른 작목에 비해 재배면적이나 생산량에 있어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쌀 소비는 지속적으로 줄고 있지만 벼 품종 및 재배기술의 발달, 양호한 기상으로 인한 연이은 풍작으로 인해 쌀 수급의 불균형이 초래되어 쌀이 너무 남아 골칫거리처럼 여겨지는 슬픈 현실이 되었다. 그러나 최근에 변수가 생겼는데 바로 기후변화이다. 

벼의 단위면적당 생산량은 2013년 이후에는 계속 500kg/10a 이상을 유지하다가 2020년에는 483kg/10a으로 떨어졌다. 작년에는 8월부터 9월 초까지 한반도에 상륙하거나 영향을 미친 태풍이 무려 4개(장미, 바비, 마이삭, 하이선)나 되어 피해가 더욱 심각하였다. 만약에 작년과 같은 상황이 몇 년간 지속된다면 쌀 수급에 문제가 생길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올해도 기상이 예사롭지 않다. 역대급 폭염에 집중호우, 태풍까지 전례가 없는 이상기후가 계속되고 있어서 풍년이 아닌 평년수준의 작황도 낙관하기 힘들다. 또한 이러한 이상기상이 단기적으로 급격하게 변화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변화된 환경, 그리고 앞으로 변화할 기후에 맞춰 벼농사도 다양성을 갖춰야 할 필요가 있다. 
기상청 자료에 의하면 지구온난화에 따라 100년 전에 비해 연평균 기온은 약 1.8℃ 상승하였다고 한다. 계절로 보면 겨울은 18일이 감소하고 여름은 19일이 증가하여 확연한 온난화 특성을 보인다. 여름이 길어짐에 따라 벼농사 재배기간 또한 이전보다 증가하였는데 지역별로 영남 160일 이상, 전남 150∼160, 충청 130∼145일로 영남지방이 가장 길다. 

벼 심는 시기는 조기, 보통기, 만기로 나눌 수 있는데 기후변화에 따라 벼를 일찍 심는 조기재배와 늦게 심는 만기재배에 유리한 환경이 되어 선택의 폭이 더 넓어졌다. 남부지역 기준으로 보통기 재배는 5월 하순∼6월 상순, 조기재배는 4월 하순∼5월 상순, 만기재배는 6월 하순에 벼를 심는다. 일반적으로 벼 심는 시기 비율로 볼 때 보통기>조기>만기재배의 순인데 최근 조기재배는 ‘13∼’15년에 9∼10.1% 수준이었던 것이 지난 ‘18∼’19년에는 13.6∼14.8%로 약 4.6% 정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추석이 이른 경우 일반 조기재배보다 약 한달 정도 일찍 심어 추석 전에 출하하는 극조기재배도 실시하고 있다. 

조기재배나 극조기재배는 추석전 햅쌀 출하로 소득을 증대시킬 뿐 아니라 이앙이 집중되는 6월, 수확이 집중되는 10월의 농작업 시기를 분산시키고, 8∼9월에 피해를 줄 수 있는 태풍 등에 대한 재해 회피가 가능하다. 그러나 조기재배는 너무 빨리 심을 경우 벼가 냉해를 받을 위험이 있고 벼의 이삭이 여무는 시기가 7∼8월의 고온시기에 해당하여 쌀 품질이나 수량이 저하될 우려가 크다. 따라서 냉해에 강하며 고온에서도 등숙특성이 양호한 품종선택이 매우 중요하다. 

만기재배는 봄감자나 동작물인 밀·마늘·양파 등을 수확하고 벼를 재배하는 방법으로 주로 2모작을 하는 작부체계에 활용된다. 2모작은 논의 경지이용률을 높이며 벼만 재배할 때 보다 소득작물 등을 한 번 더 재배하기 때문에 소득을 증대시킬 수 있다. 그러나 만기재배는 생육기간이 짧기 때문에 너무 늦게 이앙하거나 생육기간이 긴 품종을 선택시 이삭수의 확보가 어렵고 이삭이 너무 늦게 나와 여뭄이 불량해 질 수 있기 때문에 적정시기와 품종선택이 중요하다. 

국립식량과학원 남부작물부는 조기재배에 적합한 최고품질벼 ‘해담쌀’, 소득작물 후작용 ‘화왕’ 등 남부지역 조기재배나 만기재배에 적응하는 조생종·단기성 벼 품종을 육성하고 이를 활용한 고소득 작부체계 개발 및 재배법 확립에 노력하고 있다. 
조기재배는 재해회피, 햅쌀시장 진출로 농가소득 증대 및 안정적 판로확보와 밥쌀용 쌀의 판매시기를 다양화함으로써 쌀 공급시장에 좀 더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며, 만기재배는 논을 유지하며 벼 이외 타작물의 생산을 도모함으로써 소득증대 뿐만 아니라 식량자급률 향상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상이변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며 벼의 작기 다양화는 이러한 돌발적인 자연재해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완충수단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기후변화에 맞춰 벼농사도 다양하게 변화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