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으로 빚 막는 개인RPC들 “문 닫고 싶다”
빚으로 빚 막는 개인RPC들 “문 닫고 싶다”
  •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
  • 승인 2022.01.12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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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억 빚 때문에 폐업 못해…농협 흡수통합 지원해야
쌀 장사 하는 사람들인데...벼 비싸게 사서 쌀값은 제값 못받아
생산자 보호하는 농업정책, 개인에 희생 요구는 부당
30년간 쌀 산업 기여 공로 인정해 명예롭게 퇴진할 길 열어줘야

업체당 30~100억원 벼 매입자금 지원하지만

대출이라 갚아야 할 돈...쌀 팔아 이윤 못 남기니 여력 안 돼

쌀 납품 경쟁하느라 매해 2~3억원씩 시설투자비 

쌀 판 돈 다 못 받고 30%는 외상으로 깔려 있어

오늘 빚 얻어 어제 빌린 돈 갚는 '하루살이 인생'

 

없어도 있는 척, 적자여도 흑자인 척.

경영평가 잘 받아 빚 얻어 빚 갚으려면 도리 없어 

개인 사업자가 농가.소비자 보호 정부정책 기여는 말 안돼

부도로 문 닫지 않게 폐업지원하거나 농협이 인수하게 해야

 

(한국농업신문=유은영 기자) 전국 방앗간 업주들이 농림축산식품부에 폐업 지원책을 요구하고 나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농식품부가 1년마다 하는 경영평가(쌀산업기여도평가) 결과로는 영업이익이 평균 4억 이상이기 때문에 이들의 폐업 요구가 낯선 이들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세밑 전북 김제의 한 방앗간에서 열린 정책간담회에 참석한 RPC(미곡종합처리장) 업주들은 우리나라 쌀 산업 구조 속에서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며 문을 닫을 수 있도록 정책적인 지원에 나서줄 것을 요청했다.

이날 간담회는 더불어민주당 전북도당 농어민위원회(위원장 김상민)와 한국RPC협회 전라지회(회장 박종대)가 주최했다.

미곡종합처리장(RPC)은 수확기 홍수출하되는 농가 벼를 사라고 농식품부로부터 벼 매입자금 지원을 받는 방앗간이다. 정부양곡(공공비축미)만을 도정하는 정부양곡도정공장과 사설 정미소에 비해 시설과 규모면에서 월등하다.

매해 수확기(10~12월) 농가에서 벼를 사 쌀로 도정해 소매유통업체에 판매하는 산지 쌀 유통의 구심체다.

이들은 빚 때문에 문을 닫고 싶어도 못 닫으니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RPC들, 특히 개인이 운영하는 민간RPC가 힘든 이유는 ▲벼값이 쌀값보다 비싼 ‘이중곡가제’ 때문에 이윤을 남길 수 없고 ▲벼 매입자금 지원이 사실은 대출 지원으로 빚을 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터지면 망한다” 올해 얻은 빚으로 작년 빚 갚는 '폭탄 돌리기' 

쌀 산업 주무부서인 농식품부는 RPC를 대상으로 매해 쌀산업기여도평가를 한다. 점수에 따라 A~E 등급으로 나눠 등급별로 금리에 차등을 둔 벼 매입자금 지원 액수를 정해준다. 대개 업체당 30억원에서 100억원까지 정해주는데 RPC 업주들은 은행에 담보나 신용보증을 세워 이 돈을 빌려써야 한다. 상식적으로 빌린 돈으로 벼를 사고 쌀로 도정해 팔아 이윤을 남기면 빚을 갚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쌀 산업구조가 RPC가 이윤을 남길 수 없도록 설계된 데서 업주들의 항의가 폭발하고 있다.

정부제도는 농업유지를 위한 농가보호에 중점을 두기 때문에 벼값을 비교적 높게 사줘야 한다. 반면 쌀은 소비자 측면에서 싸게 팔아야 해 쌀값을 받아 이윤을 남기지 못하는 것이다. 쌀 납품대금의 30% 정도가 외상으로 깔려 있는 점도 한몫 한다.

이런 구조 속에서 방앗간은 운영해야 하니 올해 얻은 대출로 전년에 진 빚을 갚는 ‘대출대환’으로 생계를 꾸릴 수밖에 없다. 이마저도 3년 전부터는 농식품부가 대출기한을 12개월에서 10개월로 단축해 대환을 어렵게 해 놨다. 이런 상황에서 한 해라도 경영평가 등급이 내려가기라도 하면 벼 매입자금 지원 액수가 줄어들어 다른 곳에서 빚을 또 얻어야 한다. RPC 업체들의 경영평가 평균 영업이익이 4억원을 웃도는 것은 바로 생계를 위한 ‘억지 흑자’인 것이다.

벼 구하기도 어렵고 거래처 눈치에 쌀 제값도 못 불러

RPC는 개인이 운영하는 민간RPC와 농협RPC가 있다. 농협RPC도 누적적자가 2500억여원이지만 민간RPC만큼 급박한 상황은 아니다. 경영의 책임이 운영자인 개인에게 있지 않고 적자를 메울 수 있는 하나로마트와 은행 등 다른 수익구조도 있기 때문이다.

민간RPC는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서 희생을 요구당하기도 하지만 농협으로부터 벼를 사야 하는 취약성도 갖고 있다. 수확기엔 농가로부터 벼를 사지만 돈이 모자라 서너달 쓸 물량만 사놨다가 다 팔면 농협으로부터 벼를 사야 한다. 결국 민간RPC는 농협의 주요고객이자 우리나라 벼 생산량의 대부분을 도정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농협도 적자를 내면 조합원들의 질타를 받으므로 여유를 부릴 수 없다. 민간RPC에 벼 원가에 창고 보관료며 관리비를 붙여 판매하고 벼 구할 곳이 적은 민간은 웬만하면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쌀값을 잘 받으면 괜찮지만 마트, 외식업체 등 거래처들과 거래 지속을 위해선 500원이라도 낮게 팔아야 한다. 특히 수확기 출하희망 농가벼를 전량 매입한 농협들이 창고를 비우기 위해 투매를 벌이면 쌀값 시세는 더 낮아지고 여기에 맞춰 경쟁하려면 적자를 감수해야 한다.

이에 따라 일각에선 소위 쌀 장사를 하는 개인 방앗간을 정부정책 안에 끌어들여 희생을 강요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RPC 업주들은 ▲폐업 지원 ▲농협 흡수통합지원 등 구체적인 지원책을 요구했다. 빚 때문에 영업중단은 바로 부도로 이어지니 정부가 지원하거나 인근 농협이 인수할 수 있도록 농협에 무이자 운영자금 등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제기했다.

한 RPC 업주는 “개인 방앗간 사장들 평균 연령이 60 후반 70대인데 이 나이에 부도나면 어디로 가겠나”며 “지자체에서 보증 지급하는 방법 등 퇴로를 열어줄 방법은 다양한다”고 강조했다.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