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상황 개인RPC…‘산물벼 도정’ 허용해 회생시켜야
한계상황 개인RPC…‘산물벼 도정’ 허용해 회생시켜야
  •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
  • 승인 2022.01.19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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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매입량 1.5배→1.2배로, 매입기간도 수확기→연중으로
올해도 10억 적자 안고 출발…규제 줄이고 지원 늘려야

"나락 사라고 융자해 줬으면 얼마나 샀는지만 보면 될 것 아닌가!"

'쌀산업기여도평가' 항목에 RPC 원료 줄이는 타작물도...개선해야

RPC 도입 30년..."평가 할만큼 했으니 몇 년 그냥 놔둬 봐라"

 

공공비축미 안 말린 벼 10만톤 RPC가 대신 수매 

정부양곡이라고 다른 방앗간으로 옮겨 예산낭비

안 옮기고 RPC 도정 즉시 하면 연간 92억원 절감

쌀 장사론 수익 안 나 다른 수익원 마련해줘야 

 

(한국농업신문=유은영 기자) “RPC 해서 돈 번 사람 없어. 해마다 2~3억씩 공장에 발라(시설 투자해), 파렛트며 포장재는 또 해마다 올라. 10년 20년 지나니 다 까먹었어. 이제 몸뚱이 하나도 지탱 못해.”

지난 30년간 충남에서 RPC(미곡종합처리장)를 운영해온 A업주의 푸념이다.

마트 안에 진열된 쌀포대들.
마트 안에 진열된 쌀포대들.

RPC는 벼를 도정하는 방앗간을 정부 제도 안으로 끌어들인 것으로 수확기(10~12월) 산지 쌀값을 지지하라고 벼 매입자금 융자 지원을 받는 점이 다른 방앗간과 구별된다. 2005년 추곡수매제 폐지 이후 정부를 대신해 벼 수매와 보관을 해왔으며 개인이 운영하는 민간RPC와 농협이 운영하는 농협RPC가 있다.

농협이나 민간이나 RPC는 이중곡가제로 인해 적자가 누적돼 왔다. 특히 쌀 팔아 사업장을 운영해야 하는 민간RPC는 벼값과 쌀값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18일 쌀 도매유통업계에 따르면 수확기가 갓 지난 올해 출발도 심상찮다. 지난해 수확기 초입에 6만4000원(40kg 조곡) 주고 산 벼가 수확기 말인 세밑에는 5000원이 하락했다. 당시 RPC들 사이에선 “지금 방아 찧어서 쌀 내는 RPC들은 손해 볼 걸 알고 내는 것”이라는 말이 돌았다. 농가들에게 벼값을 줘야 하니 한 가마니에 얼마 깨진다는 걸 알고 도정해 판다는 것이다.

A씨는 “벌써 10억 적자를 안고 출발하는 것”이라고 민간RPC들의 상황을 전했다.

벼는 비싸게 사고 인건비며 포장재, 각종 부대비용과 도정시설 가동비는 올라 지출은 늘었는데 쌀은 제값을 못 받고 파니 적자를 메울 수 없는 게 대부분의 민간RPC 상황이다.

벼 매입자금을 융자받아 쓴 게 족쇄가 돼 빚잔치를 해야 하므로 쉽사리 문을 닫을 수도 없다. 이에 따라 민간RPC들은 생존을 위해 ▲벼 매입기간을 수확기에서 연중매입으로 늘려주거나 의무매입비율을 현행 150%에서 120%로 낮춰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일단 저장창고를 가진 대농들은 연중 출하로 출하 패턴을 바꾼지 오래고 의무매입량도 벼 매입자금 지원 액수의 1.5배를 유지하는 것은 자금 여력이 없는 민간 사업장의 형편과 맞지 않다는 것이다 .

이와 함께 10개월로 단축된 대출기한을 기존 12개월로 복구하는 작업도 함께 진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전년에 융자받은 벼 매입자금을 올해 다 갚지 못해 연장해야 하는데 현행대로라면 10개월은 정책자금으로 대환이 되지만 나머지 2개월치는 다른 금융기관에서 빚을 얻어 갚은 다음에 융자를 신청해야 해 여간 번거롭지 않다. 두 달이지만 벼 매입자금이 수 십 억원대인 점을 감안하면 다른 금융기관에서 고금리로 빌린 이자 부담도 RPC를 더 힘들게 하고 있다.

RPC가 사들인 공공비축 산물벼 도정 허용해야

특히 농협과 민간을 통틀어 RPC 업계의 오랜 숙원인 ‘산물벼 도정’ 허용이 절실하다.

정부가 비상사태를 대비해 해마다 비축하는 정부양곡 공공비축미 중 건조하지 않은 상태로 매입하는 양이 약 10만톤 정도인데 이를 RPC가 대신 사뒀다가 이듬해 시장 상황을 봐서 정부가 가져가거나 RPC에 파는데 이를 산물벼 인수도라고 한다.

2020년부터 공익직불제와 함께 도입된 자동시장격리제가 농가와 농협의 요구로 임의 규정에서 고정화될 움직임을 보이면서 원료확보에 빨간불이 붙은 민간RPC들은 산물벼 인수도를 보장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전에는 정부가 하던 일을 대신 하는 대가로 산물벼를 인수하게끔 해 줬으나 최근 수년 동안은 공급물량이 많다는 이유로 정부가 가져가는 추세다. 한해 예상수요량의 3% 이상 초과생산되면 남는 물량을 시장에서 격리하는 자동시장격리제는 농가가 출하를 희망하면 모두 사 줘야 하는 농협에는 유리하지만 농협에서 벼를 사와야 하는 민간RPC로선 벼값이 올라가므로 불리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민간에 산물벼 인수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어차피 RPC가 사들여 창고에 보관하고 있는 공공비축미를 정부가 가져갈 게 아니라 군.관 급식용이나 복지용 등 수요가 있을 때마다 RPC에서 바로 도정하게 하는 정책 지원이 절실하다. 수요처에 즉시 공급이 가능할 뿐 아니라 RPC 첨단시설을 통한 고품위 도정은 물론 정부가 옮길 때 투입하는 물류비며 상.하차비용을 한국RPC협회(회장 한정호) 추산 92억원을 아낄 수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해마다 받는 경영평가(쌀산업기여도평가)도 개선이 필요하다. 항목이 45개로 복잡하고 타작물 재배며 계약재배 등은 쌀장사인 RPC의 역할과 상충되는 면이 많다.

한 RPC 업주는 “나락 사라고 융자 지원을 해 줬으면 나락을 얼마만큼 샀나 그것만 보면 되지 뭐가 이렇게 복잡한지 모르겠다”며 “기여도평가 할 만큼 했으니 3년이고 5년이고 한번 놔둬봐라. 규제를 안 하면 오히려 쌀 유통 생태계가 좋아질 수 있다”고 한탄했다.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