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팜리포트] CPTPP 대해부①-식량‧과수산업 피해분석
[뉴스팜리포트] CPTPP 대해부①-식량‧과수산업 피해분석
  • 김흥중 기자 funkim92@newsfarm.co.kr
  • 승인 2022.01.20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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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면 개방 수준 CPTPP, 쌀 수입 확대도 불가피
호주, 베트남 등에서 쌀 시장 개방 요구 가능성
강화된 SPS 대처 못 할 땐 신선과일 수입 늘수도

정부가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대해 오는 3~4월 가입 신청을 목표로 관련 절차를 속도감 있게 추진하고 있다. 또 지역 순회 현장간담회, 업종별 협의회 등으로 각계각층 이해관계자의 여론 수렴과 사회적 논의도 거치고 있다.

반면, 농업계에서는 CPTPP 가입은 ‘농업 분야의 마지막 개방’이 될 것이라는 목소리와 함께 CPTPP로 인해 농산물 시장의 전면 개방이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특히 개방 수준이 높아 쌀 품목의 시장 개방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농산물 관세철폐율 96.1%

(한국농업신문= 김흥중 기자) 아시아·태평양 지역 11개 국가가 참여해 메가 FTA로 불리는 CPTPP는 높은 수준의 시장 개방으로 수출 기회 확대 등 산업 전반의 이익을 가져올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다만, 농업 분야의 시장 개방률이 96.1%에 달해 개방에 따른 국내 농업의 피해 역시 우려되는 상황이다. 과거 FTA 농산물 평균 관세철폐율이 73% 수준이었던 것과 견줘봐도 CPTPP는 높은 수준의 개방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CPTPP 가입을 공식화하고 가입 신청 준비에 돌입한 가운데 농업계의 가입 반대 목소리도 거세지고 있다. 이에 한국농축산연합회 등 범농업계 단체들은 지난 12일 청와대 앞에서 CPTPP 가입을 결사반대하는 기자회견도 열었다.

이에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CPTPP 가입은 시장 개방 수준이 굉장히 높고 농업 분야에도 피해가 발생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정부가 구체적인 개방 수준을 예단해 미리 말씀드리기 어렵다. 여러 사항을 고려해 내부적으로 농업계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쌀 시장 개방 우려 가중

CPTPP 가입이 이뤄지면 주요 농산물에 대한 시장 개방도 불가피한 가운데 농업계에서는 이른바 ‘초민감품목’으로 여겨지는 쌀 품목에 대한 개방 조건에 특히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에 그간 국제 협상에서 양허제외 품목으로 유일하게 지켜져 온 쌀마저 개방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수입 쌀은 이미 의무수입물량(TRQ)으로 2005년부터 국내로 유입되고 있다. 초기 5000여톤에 불과했지만, 2014년 40만8700톤까지 증량됐고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다. 2020년부터는 미국, 중국, 호주, 태국 4개국에 베트남이 추가된 5개국 국별쿼터를 배정해 들여오고 있다.

우리나라의 CPTPP 가입을 위해서는 쌀 시장 일부 개방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일본의 사례처럼 기존 가입국에 대한 관세 철폐보다는 TRQ 제공 등 양허 조건이 허용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농업계 한 전문가는 “CPTPP에는 기본적으로 다 개방해서 시장접근 수준을 높이자는 의도가 깔려 있지만, 가입국마다 농업 부분에서 민감성을 반영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CPTPP 가입국 중 호주나 베트남에서 충분히 우리나라의 쌀 개방을 원할 수 있다. 다만, 정부는 쌀만큼은 최대한 개방하지 않기 위해서 나설 것이고, 일본의 협상 결과처럼 기존 가입국에서 TRQ 증량을 제시하는 수준의 요구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캐나다, 일본,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은 관세를 모두 철폐하지 않고 부분 감축을 하거나 계절관세로 양허한 경우가 있었고, TRQ를 제공하고 관세를 철폐하지 않기도 했다.

특히 일본은 CPTPP 가입국과 협상을 지속하면서 자국의 농축산물을 보호하기 위해 민감 품목에 대해 양허제외, 부분감축, TRQ 제공 등을 설정했다. 이 과정에서 주요 품목인 쌀은 호주에 최대 8400톤의 무관세 쿼터(CSQ)를 제공하기로 하면서 협상을 마무리했다. 일본의 협상 결과는 예외 없는 개방을 원칙으로 하는 CPTPP에서 어느 정도 자국의 민감한 농산물을 보호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쌀 추가 개방, 관세율 하락 우려…농업계 CPTPP ‘반대’
SPS 등 CPTPP 규범 대응할 인력·제도 보강해야

다만, 농업계에서는 우리나라와 일본의 협상 위치가 다른 만큼 쌀 품목의 더 큰 시장 개방이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임병희 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 사무총장은 “CPTPP 가입을 주도한 일본마저도 쌀 시장을 개방했는데, 후발주자로서 신규 가입하는 상황에 놓인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더 큰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면서 “CPTPP에 가입하면 베트남 등 쌀을 전략적으로 수출하는 가입국에 의해 쌀 시장 개방이 더 확대되고, 쌀 관세율 513%마저 흔들릴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더 이상의 농업개방은 막아야 한다. 농업 강국이 많이 가입된 CPTPP에 우리나라도 함께 한다면 가격경쟁력이나 생산력 측면에서 우위를 점하기 어려운 국내 농업은 버틸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해 12월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226차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홍남기 부총리는 정부가 CPTPP 가입을 위한 여론 수렴과 사회적 논의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해 12월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226차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홍남기 부총리는 정부가 CPTPP 가입을 위한 여론 수렴과 사회적 논의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협상 과정에서 약점으로 꼽히는 쌀 품목은 CPTPP 가입국에서 자국에 유리한 협상 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존 가입국에서 쌀을 전략적으로 내세우면서 정작 다른 품목의 시장 개방 확대를 요구할 수 있다. 호주의 쇠고기, 칠레의 과일을 예로 들 수 있으며, 추후 협상 과정에서는 이 부분을 유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CPTPP 국가별 쌀 수입량은 대부분 베트남에서 나오고 있다.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의 수입량을 살펴보면 전체 수입량 52만5856톤에서 CPTPP 국가에서 수입된 물량은 12만2540톤이고, 이는 모두 베트남에서 건너온 물량이다.

과일 수입 확대도 무시 못해

우리나라의 CPTPP 가입은 쌀 등 식량작물 외에도 국내 과수 산업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과수 시장 개방은 축산물과 마찬가지로 동식물 위생·검역 조치(SPS) 부분에서 큰 우려를 낳고 있다.

SPS는 무역 관련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농식품 분야 무역규제로, 정부가 질병, 병해충, 독소, 다른 오염물질 등으로부터 자국민, 동물, 식물을 보호하기 위해 수행하는 조치다. 예컨대 SPS를 적용하면 조류독감이 발생한 국가로부터 가금류 수입을 금지할 수 있다.

이 가운데 CPTPP의 SPS 규정은 WTO 및 다른 FTA와 달리 수입 허용 관련 이행절차와 투명성을 강화해 수입국의 의무사항을 증가시켰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2018년 내놓은 ‘CPTPP 발효와 농업통상 분야 시사점’ 연구 보고서에서는 우리 정부가 CPTPP 가입을 결정하게 된다면, 기존 WTO 규정 및 기체결된 FTA 규범보다 강화된 CPTPP 규범(SPS 등)을 그대로 수용해야 하므로, 농식품 분야에서 실질적인 수입규모가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특히 신선 농산물에 적용되고 있는 SPS 조치와 관련된 통상마찰이 늘고, 불리할 경우 해당 조치의 해체로 귀결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현재 사과, 배 등 신선과일은 대부분 품목에 대해 국내에 존재하지 않는 병해충을 근거로 전세계 또는 대부분 주요 수출국을 수입금지 지역으로 지정하고 있다. 이에 사과, 복숭아, 배, 단감 등은 그동안 FTA 발효에도 불구하고 신선 상태로 수입되지 않고 있다.

다만, 연구 보고서에서는 우리나라가 CPTPP에 가입할 경우, 국내 농업은 기존 수입품목의 관세감축보다 SPS 완화에 따른 신규 품목 수입확대의 파급영향이 더 클 수 있다고 판단했다. CPTPP 회원국들로부터 과거 수입허용을 요청받은 품목들에 대해 우선적인 위험분석 절차를 추진해야 하고, 납득할만한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CPTPP 규정에 따라 수입허용을 강요받을 수 있어서다.

앞서 농업계 한 전문가는 “CPTPP에서 규범으로 내놓고 있는 SPS 규정에 우리나라가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까에 대한 우려가 있다. 그동안 수입되지 않은 사과, 배 등에 대해 수입을 여전히 금지할 수 있는 검역 결과의 과학적 근거를 대지 못하면, 곧 개방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국내의 동식물 검역과 관련된 프로세스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을 시 개방이 더 확대될 확률이 높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SPS 조치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확보되지 않으면, 외래 동식물의 유입을 차단하기 어렵고, 별개로 SPS 관련 규정이 세분화되면서 업무 소요가 증가해 검역당국의 업무 부담을 높여 검역역량의 약화를 초래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에 강화된 SPS 규정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검역시스템이 구축돼 있는지를 점검하고, 미흡한 부분에 대한 인력, 조직, 제도 등 보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