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 줄여야 하나”…줄줄이 생산비 올라 ‘5중고’ 겪는 농촌
“농사 줄여야 하나”…줄줄이 생산비 올라 ‘5중고’ 겪는 농촌
  • 김흥중 기자 funkim92@newsfarm.co.kr
  • 승인 2022.03.16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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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재 수급 불안에 비료값 상승
치솟는 기름값, 사료값 인상까지
인건비 얼마나 더 오를까 전전긍긍
농자재값·사료 가격·유류비·인건비 인상
오르기만 하는 생산비…‘농사포기’ 고심

(한국농업신문=김흥중 기자) “비료, 농약 등 농자재값이 너무 올랐다. 일할 사람 구하기도 어려운데, 인건비도 두 배 가까이 뛰었다. 모두 생산비에 포함되는 것들이다. 생산비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는데 농산물 가격은 제자리다. 농민값이라 불리는 쌀값은 계속 떨어지고 있고, 양파 가격은 내려가다 못해 밑바닥을 찍고 있다. 올해 농사(규모)를 줄이는 거 말고는 감당할 방법이 없다.”

완연한 봄 날씨에 접어들고 있는 요즘, 본격적인 영농철 준비로 분주해지고 있는 농촌 곳곳에서 곡소리가 끊이질 않고 있다. 지난해 10월 ‘요소수 대란’에서 이어진 비료 가격 급등의 여파가 여전히 농촌을 어렵게 하고 있어서다. 또 많은 인력이 필요한 노지작물 재배 농가들은 벌써 농번기 인력난을 크게 걱정하고 있다. 지난 2년간 코로나19 탓에 외국인 근로자 유입이 어려웠는데, 올해도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는 이유에서다. 

치솟는 생산비를 감당하기 벅찬 농가들 사이에선 급기야 올해 농사를 줄이겠다는 말도 나온다. 농사를 덜 짓는 것 말고는 지금의 악재를 벗어날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이다. 

국제원자재 가격 급등…비료값 3배 이상 올라

무기질비료의 국제원자재 수급이 불안해지고 가격이 오르면서 농가 경영에 빨간불이 켜졌다. 비료 가격 상승에 대한 정부의 대책과 별개로 농가 생산비 인상은 불가피할 것으로 나타나서다.

경북 문경에서 벼·콩 등을 재배하는 한 농민은 “무기질비료 가격이 3배 가까이 오른 걸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국제원자재 가격이 높아진 탓이라고 들었는데, 올라도 너무 올랐다. 농사짓고 남는 게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실제 요소(그레뉼)비료는 20㎏ 1포대에 2만8900원으로 크게 올랐다. 여기에 정부가 올해 공급가격 인상분의 80%만큼 보조해주는 가격을 제외하면 농가 자부담은 1만4250원이다. 이는 지난해보다 3650원(약 34%) 오른 수준이다. 농자재뿐 아니라 인건비 등 생산비 지출이 큰 농가에는 이 정도 상승분도 부담이 된다. 

정부 지원이 제한적인 점도 문제다. 비료 가격보조는 최근 3년간 구매한 물량의 95%만 가능해 농가는 가격 인상에 대한 부담에서 벗어날 수 없다. 농사 규모가 큰 농가일수록 비료 가격 인상에 따른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

요소비료는 ‘질소’를 주성분으로 하는 질소질비료의 한 종류로, 농작물 생장에 필수적이다. 작물은 질소가 부족해지면 잎이 누렇게 변해 말라 죽기 쉬워 적정량의 비료를 써야 원하는 만큼의 수량을 낼 수 있다. 요소비료가 국내 단일 비료 공급량의 80%를 차지하는 만큼 농가에게 요소비료 가격 인상은 경영에 큰 부담이 되는 셈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부분 원료를 수입에 의존하는 농약 가격마저 인상될 낌새가 보이자 농가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이근혁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은 “비료, 농약 등 각종 농자재 가격이 오르니 생산비는 덩달아 불어나고 있다. 농민을 위한 현실적인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비료 업계에 따르면, 분쟁으로 인한 국제정세 불안, 유가 급등에 따른 물류비용 상승, 무역분쟁 등 이유로 국제원자재 가격이 급등세를 유지하고 있다. 

주요 국제원자재 가격 동향을 살펴보면, 이달 초 기준 요소는 톤당 614달러로, 지난해 평균 507달러보다 약 21% 올랐다. 같은 기간 암모니아는 920달러로 56%, 인산이암모늄은 895달러로 48% 상승했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이들 국가로부터 들여오는 염화칼륨의 경우 663달러로 63%나 크게 올랐다.

사료값 오르니 축산 농가 발 동동

국제곡물 가격 역시 연일 상승세를 보이고 있어 농가 경영에 비상이 걸렸다. 특히 축산 농가들은 사료 가격 인상에 따른 피해가 고스란히 누적되는 상황이다. 

지난달 세계식량가격지수는 140.7포인트를 기록하며 2011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설탕을 제외한 곡물·유지류·유제품·육류 등 모든 품목의 가격지수가 상승하면서다. 

특히 곡물 가격지수는 전월 140.6포인트보다 3% 상승한 144.8포인트로 나타났다. 전년 동월 대비 14.8%나 높은 수준이다.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여파도 곡물 가격 상승에 한몫했다. 흑해 지역에서 나오는 밀 등 주요 곡물의 수출이 불확실해지면서다. 러시아-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 경우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본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밀·옥수수 수입량 중 흑해 지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18.4%로, 흑해에서 수입되는 밀은 대부분 사료용으로 쓰인다. 밀 수입량 중 흑해 지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28.3%다. 주요 밀 수출국인 러시아에서 수출에 차질이 생기자 세계 밀 가격이 덩달아 오르는 상황이다. 

수입단가 역시 올랐다. 지난달 사료용 밀 수입단가는 톤당 324달러로 전월 294달러 대비 10.3% 상승했다. 사료용 옥수수·대두박 등 단가는 소폭 하락했으나, 전년과 견줬을 때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자 사료 가격 인상으로 경영 압박에 시달리는 축산 농가들의 곡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축산업 생산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사료값이 계속 인상되니 경영 여건 악화는 불 보듯 뻔하다는 이유에서다. 

치솟은 유류비에 애타는 시설 농가들

유류비 급등도 농가에 큰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한국석유공사에서 운영하는 오피넷에 따르면, 3월 둘째 주 1L당 면세유 실내등유 가격은 1062.8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판매가격인 708.3원과 견줬을 때 50%가량 인상됐다. 지난 1월 넷째 주 937.13원을 기록한 등유 가격은 이달까지 매주 상승세를 타며 치솟고 있다.

충남 부여에서 시설 채소를 재배하고 있는 한 농민은 “기름값이 오르니 난방비가 만만치 않게 나온다. 다른 생산비도 많이 드는데 난방비마저 내려갈 줄 모르니, 농산물을 수확해 팔아도 남는 게 없다”고 토로했다.

인력난 우려에 설상가상 인건비도 ‘껑충’

영농철을 앞둔 농가에서는 올해 역시 인력 문제로 고심하고 있다. 정부의 인력수급 대책이 속속 나오고 있지만, 현장에는 여전히 일손이 부족할 거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서다.

충남 서산에서 노지채소를 재배하는 한 농민은 “낮 기온이 10도 이상 웃돌고 있다. 날씨가 풀려서 이제 농촌은 바빠질 거다. 농사는 이제 시작이라고 보면 된다”면서 “영농철에 앞서 일할 사람 구할 생각에 벌써 걱정이 태산 같다”고 말했다.

3월 이후부터 시작되는 양파, 마늘 등 노지 밭작물 농작업으로 5~6월까지는 농촌에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밭작물 기계화가 상당 부분 이뤄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일할 사람이 필요하다.

전남 무안의 한 사설 인력중개사무소 대표는 “비닐 피복, 양파 뿌리 자르기 등 기계로 할 수 없는 일이 여전히 많다. 사람 손이 꼭 필요한 일들인데, 내국인 인력은 구할 수도 없고 공급할 수도 없는 게 현실”이라며 “외국인 계절근로자들이 본격적인 농번기에 접어들면 들어오겠지만, 지역별로 인원이 제한돼 있어 현장에 일손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이 대표는 “5월부터 6월까지 한꺼번에 농작업이 몰리니 그 수요를 현행 제도 안에서 해결하기가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며 “사설 업체의 인력 대부분이 미등록 외국인 근로자(불법체류자)인 이유다. 이마저도 구하기 어려워 외국인 근로자가 ‘갑’이고, 농가나 인력사무소는 ‘을’이 되는 게 지금 현실이다”고 설명했다.

크게 오른 인건비도 문제다. 마늘 주산지인 경남 창녕의 한 농민은 “7만원 선이었던 하루 일당이 11~12만원까지 쭉 올라갔다. 인력 수요가 급증하는 마늘 수확철이 되면 15만원에서 많게는 20만원까지도 올라간다. 2만원에 가까운 시급을 주고도 남는 게 많지 않으니 농사포기라는 말이 나온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