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투자일까 투기일까, 사모펀드에 서부청과 매각
[기획] 투자일까 투기일까, 사모펀드에 서부청과 매각
  •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
  • 승인 2022.05.04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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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집 키워 매각 또 매각…농민은 뒷전 된 공영도매시장
생산자·소비자 이익엔 무관심 시세차익에만 몰두
주주배당·매각차익은 수십~수백억, 출하장려는 꼴찌

서부청과 새 주인, 농업발전 기여하는 모습 보여줘야

도매법인 위주 농안법령 ‘시장개설자 권한 확대’ 개정 시급 

(한국농업신문=유은영 기자) 서울 강서시장 청과물 경매회사(도매법인) 서부청과가 매각됐다. 이에 서부청과 과실·채소 중도매인조합은 지난달 28일 새 경영진과 면담을 갖고 영업 활성화를 골자로 한 몇 가지 요청 사항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락시장 경매장 전경.
가락시장 경매장 전경.

사모펀드 운용사 아이젠프라이빗에쿼티(아이젠PE)는 4월 중순께 서부청과의 기존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자가 보유한 지분 100%를 인수했다. 기존 경영진과 임직원은 유임해 이날 중도매인조합이 마주한 사람들은 변화가 없다. 그러나 최대주주가 변경된 만큼 바뀐 새 주인의 경영철학에 따라 영업방식은 바뀔 가능성이 많다.

조합 관계자는 “사주 바뀌는 거야 자본주의 국가에서 막을 수가 있겠느냐”며 “다만 가락시장 (도매법인)도 주인 바뀌고 2년이 되기도 전에 되팔고 나간 사례가 반복된 것을 봐와 우려가 되는 건 사실이다”고 말했다. 과도한 구조조정 또는 단기적인 수익 위주의 영업방식으로 소비지 유통업체와 거래를 유지해야 하는 자신들의 영업 환경이 열악해질까 우려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사모펀드에 넘어간 서부청과…중도매인들 술렁

서부청과 매각을 두고 강서시장이 술렁이는 이유는 가락시장 청과회사들의 선례에서 습득한 학습효과 때문이다. 가락시장 6개 청과법인 중 농협가락공판장을 제외한 5개법인이 건설·철강 대기업 및 자본가다.

중앙청과는 태평양개발이, 서울청과는 고려제강, 대아청과는 호반그룹, 동화청과는 신라교역 등 농업과 관련없는 대기업 자본이 소유주이며 한국청과(더코리아홀딩스)는 사실상 개인 소유구조다. 다만 수산물 유통 전문기업인 신라교역은 동화청과 인수 당시 농업관련 기업으로써 농산물 유통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란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비농업 자본의 청과회사 소유는 주주배당과 매각을 통해 농민의 돈이 비농업계로 흘러들어간다는 점에서 많은 우려를 낳고 있다. 청과회사는 전국 산지에서 농민이 보낸 농산물을 경매에 올려주는 대가로 수수료를 떼 해마다 수십억원의 안정적인 수익을 얻는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2015~2019년 5년 동안 5개 청과회사는 평균 82억원을 주주에게 배당했다. 청과회사별로는 한국청과 83억원 중앙청과 164억원 동화청과 50억원 서울청과 61억원 대아청과 50억원을 각각 배당했다. 최근 3년간(2018~2020) 5개 청과회사의 당기순이익은 총 554억원이며 2020년만 순이익 중 현금 배당만으로 144억원이 대기업과 사모펀드주주에게 흘러갔다.

비농업 자본이 농업자본 흡수

매각을 통해 얻는 이익도 상당하다. 지난해 동화청과와 대아청과가 각각 신라교역(771억)과 호반건설(564억)에 매각됐다. 이들 기업들의 매각 히스토리를 보면 동화청과는 2010년 동부한농에 280억원에 팔린 뒤 2015년 칸서스자산운용이 540억원에 인수했고 바로 이듬해 2016년 서울랜드에 587억원에 팔렸다가 2019년 신라교역이 771억원에 인수했다.

대아청과는 1995년 50억원을 투자해 설립했으며 2019년 호반건설에 560억원에 팔려 510억원의 매각차익을 봤다. 중앙청과와 한국청과는 각각 첫 매각 당시인 1996년, 2006년에 100억 이상의 차익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중앙청과 매각 당시에도 120억원의 차익이 발생했다.

대표적인 농산물 도매시장인 가락시장은 해마다 반입물량이 감소되는 등 침체를 겪고 있다.
대표적인 농산물 도매시장인 가락시장은 해마다 반입물량이 감소되는 등 침체를 겪고 있다.

생산자.소비자 위해 만든 공영도매시장 '투기의 장' 전락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들이 투자수익을 추구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생산자와 소비자를 위해 만든 공영도매시장이 투기의 장으로 전락해 설립 취지를 무색케 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농민이 생산한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팔아주고 거기서 번 돈을 농업발전을 위해 써야 공영도매시장의 공익기능에 부합한데, 설립 취지와 다르게 기업들의 배만 불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사모펀드의 청과회사 인수는 공영도매시장의 유통법인이 단기 투자처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2015년 동화청과를 인수한 사모펀드 운용사 칸서스자산운용은 1년만에 서울랜드에 되팔아 수십억원의 시세차익을 얻었다.

강서시장 중도매인 관계자는 “사모펀드는 단기 시세차익을 목적으로 하는 만큼 지속적인 운영을 기대할 수 없다”며 “그간 사측과 협력해 영업활성화에 힘써 온 서부청과 중도매인들이 배신감까지 느끼며 허탈해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업계에 따르면 서부청과 경영진과 중도매인조합은 지난 면담에서 몇 가지 안건에 합의했다. 중도매인조합은 요구사항을 전달한 후 지금까지 해온 대로 영업활성화에 협력하겠다고 의사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2001년 설립돼 2004년 강서시장에 들어온 서부청과는 시장 안 도매법인 3곳 중 영업실적이 우수한 곳으로 평가된다. 지난해 약 10만톤의 거래실적을 올려 농협강서공판장과 어깨를 나란히 했으며 매출액 112억7300만원, 당기순이익은 20억원을 기록했다.

한편 사모펀드가 도매법인을 인수한 것은 수도권에서 이번이 세번째다. 2015년 칸서스자산운용이 가락시장의 동화청과를 540억원에 인수했고, 2019년엔 웨일인베스트먼트와 포시즌캐피탈파트너스가 구리시장의 구리청과를 290억원가량에 인수했다.

2020년 3분기 가락시장 내 유통인별 출하선도금 실적.
2020년 3분기 가락시장 내 유통인별 출하선도금 실적.

산지 물량 유치노력…공익기능 충실해야

사모펀드는 오로지 투자수익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투기자본이란 눈총을 받는다. 하지만 서부청과를 인수한 아이젠PE가 공영도매시장의 유통회사로써 공익기능을 충실히 이행한다면 이런 오명은 쉽사리 벗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가락 및 강서시장의 청과회사들은 공익적 역할보다 사익추구에 몰두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대표적인 예로 산지 농민들의 출하를 장려해 물량을 유치하기 위한 노력인 출하장려금 및 출하선도금 실적은 매번 도매시장 내 유통인들을 통틀어 꼴찌를 기록했다. 농민들이 도매법인에 출하를 약속하고 영농자금으로 미리 받는 게 출하선도금이다.

2020년 3분기만 보더라도 출하선도금 실적이 가락 상장예외품목 중도매인, 강서 시장도매인에 비해 현저히 낮았다. 가락 청과도매법인이 지급한 출하선도금은 325억7000만원으로 거래금액 3조641억원의 1.1%에 불과하다. 반면 가락 상장예외품목거래 중도매인과 강서 시장도매인은 각각 10.6%, 8.3%를 지급했다. 청과회사(도매법인)들은 그러면서도 가락시장에 모인 농산물을 옮기는 데 드는 표준하역비를 농민에게 전가시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도매법인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지정취소를 당하는 일도 재지정이 안 되는 일도 전무한 편이다. 시장관리자인 서울농수산식품공사(사장 문영표)도 도매법인을 제재할 권한은 없다. 농안법(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이 도매법인을 중심으로 제정됐기 때문이다.

시세에 어두운 농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1985년 가락 공영도매시장을 만들어 경매제를 운영했으니 경매회사인 도매법인은 없어서는 안될 필수 요소였다. 하지만 도매법인이 공익기능보다 자본가의 투자처로 전락했다는 지적을 받는 만큼 시장개설자의 권한을 법으로 확대해 도매법인에게 일정한 공익적 역할을 강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 도매법인이 도매법인을 인수할 경우를 제외하고 공사가 도매법인의 주주변경을 불허할 권한은 어디에도 없다. 이와 함께 가락시장에 시장도매인제를 도입해 도매법인이 경쟁할 동기를 주고 유통인들간 칸막이도 없애 도매시장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시장 관계자는 “가락시장 5개년별 거래물량을 보면 2015년 252만 2000톤을 기록한 이후 2020년 237만톤으로 거래물량이 정체 또는 감소하고 있다”며 “시장이 활기를 되찾기 위해선 시장개설자인 단체장에게 도매법인과 시장도매인의 평가와 재지정, 업무규정 승인 권한을 이양하기 위해 농안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