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농안법은 왜 안 고치고..들끓는 강서시장
[기획] 농안법은 왜 안 고치고..들끓는 강서시장
  •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
  • 승인 2022.06.03 11: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장 개장이후 처음 대대적 단속, 기획감사 의혹 제기
“시장도매인제 도입 막으려는 경매제측 꼼수” 주장도
물밑거래 없이는 영업 불가능…“시장 발전 계기 삼아야”

'경매회사 산지발굴 노력 부족'이 유통인간 거래 조장

경매 품목.수량 모자라 중도매인이 다른 유통인에게 살 수밖에 없어

법 어긴 중도매인 제재 조항 있지만 경매회사 제재 전무..농안법 헛점

전문가 “거래제도 논쟁 소모적, 차라리 도매시장 창고로 사용하라” 

(한국농업신문=유은영 기자) 요즘 강서시장이 소란하다. 농안법(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으로 금지한 유통인간 거래가 적발되고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 11월말게 강서시장 시장도매인 20개 업체를 추려 회계감사를 실시했다. 이후 불법 정황이 드러났다며 시장개설자인 서울시에 후속 감사를 요구했고 시의 대대적인 조사를 통해 시장도매인 58개 업체와 중도매인 143개 업체가 거래한 사실이 적발됐다.

도매시장 내 유통인간 거래는 법으로 금지했으니 이들 유통인들이 불법을 저지른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에 따른 응당한 처분도 법에 규정해 놓았으니 따르면 그만이다. 그런데 해를 넘어 올해 상반기가 지나갈 때까지 시장이 온통 들끓고 있다. 이번 감사가 시장도매인을 폄훼하려는 경매제 측의 술수라는 게 유통인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이같은 주장은 이번 감사가 강서시장 개장 이후 사상 최초로 실시됐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강서시장 경매동 전경
강서시장 경매동 전경

1998년 제정된 법 규정이 발목

농식품부와 서울시의 연이은 감사에서 약 638억원어치의 불법거래 사실이 적발됐다. 시장도매인업체가 중도매인업체에게 2019~2020년 2년 동안 판매한 액수다. 강서시장 안에 입주한 60개 시장도매인 중 58개면 거의 대부분의 시장도매인이 중도매인에게 물건을 판 셈이다. 이런 사실이 알려진 건 올해 2월, 강서시장 개장 이후 최초로 실시된 대대적인 감사가 끝나고 나서다.

도매시장 내 유통인간 거래를 금지하는 농안법 조항은 지난 1998년에 제정됐다. 유통단계가 하나 더 추가되면 소비자가격이 늘어나고, 서로 다른 거래제도에 속한 유통인의 경우 유통질서를 무너뜨린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경매제에서는 중도매인이 경매회사에서 경매에 부친 농산물만 살 수 있도록 정해 놓았다. 다른 곳에서 물건을 사면 경매에 참여하지 않아 중도매인간 경쟁이 시들해져 낙찰가격이 낮아지고, 결과적으로 농가소득이 낮아지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번 사건은 중도매인이 경매회사에서 사지 않고 시장도매인에게서 농산물을 사 와 법을 어긴 게 요지다. 반대로 시장도매인은 중도매인에게 팔아 법을 어겼다.

시장도매인 도입 반대측 민원제기가 '불시감사' 발단

그런데 왜 시장이 온통 들끓는 것일까. 거의 모든 유통인들이 연루됐을 정도로 적발 규모가 어마어마한 게 첫 번째 이유다. 시장 운영자인 서울농수산식품공사(사장 문영표)는 규정대로 영업정지 처분 소견을 적어 시에 보고했다. 시는 시장 폐쇄를 걱정해 과징금 대체 방안을 고심하는 눈치다.

이상하게도 해당 유통인들이 처분을 걱정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번 감사가 실시된 목적이 고의적이라며 분개하고 있다. 특히 시장도매인동에선 간판 떼고 사업자등록증 걷어 농식품부에 갖다놓자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항의하는 의미로 영업을 쉬겠다는 것이다.

강서시장 개장 당시부터 입주해 17년째 종사 중인 시장도매인 A씨는 “법은 있지만 지킬 수 없다는 걸 이 업계 사람이라면 모두가 안다”며 “그래서 지금껏 십 수년 동안 단속 한 번 안 한 것인데, 갑자기 감사라니 누가 봐도 짜맞춘 티가 난다”고 분개했다.

업계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한 농민단체가 모 국회의원에게 민원을 제기했고 해당 의원이 농식품부에 자료제출을 요구한 게 발단이 됐다.

시장도매인 운영 17년째인데…도입반대 이유가 “실험결과 불충분해” 

시장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이번 감사는 경매제쪽에서 의도한 기획감사라는 것에 초점이 모아진다. 시장도매인제도에 흠집을 내 가락시장에 시장도매인제 도입을 저지하기 위해서란 것이다. 시장개설자는 국내 대표적인 농산물 도매시장인 가락시장에 경매제 외의 거래제도인 시장도매인제를 도입함으로써 두 거래제도간 경쟁을 촉진해 도매시장을 활성화하겠다는 취지로 시장도매인제 도입을 추진해 오고 있다. 농안법상 2000년 허용된 제도이지만 20년이 넘도록 도입되지 못하고 있다. 아직 안심할 만한 시험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게 반대이유이지만 궁색하기 짝이 없다는 지적이다. 시장도매인제는 강서시장에서 운영된지 17년째이고 160% 성장률에 2021년 가락시장 중도매인들이 상장예외품목을 팔아 벌어들인 돈과 맞먹는 8300억여원의 매출을 올렸다.

20년에 근접하는 운영기간, 경매동의 3배에 달하는 매출 실적을 보고서도 실험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면 사실상 앞으로 20년이 더 지나도 반대 이유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말이 안 되는 억지는 반대를 위한 명분이고 실상은 시장도매인제가 좋든 나쁘든 도입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요약하자면 경매회사(도매시장법인)는 시장도매인제 도입을 바라지 않기 때문에 이번 감사를 부추겨 시장도매인제도를 의도적으로 폄훼했다는 게 시장도매인측 주장이다.

강서시장 안 경매동과 시장도매인동을 가리키는 이정표.
강서시장 안 경매동과 시장도매인동을 가리키는 이정표.
강서시장은 농산물 도매시장 중 유일하게 두 거래제도가 운용되는 곳으로, 이곳에 농산물을 출하하는 농민은 경매제와 시장도매인제 중 어디에 출하할지 더 유리한 곳을 골라 출하할 수 있는 선택권을 가진다. 

뛰지 않아도 수수료 수입 가능한 법 규정 고쳐야

유통인들은 불법을 조장하는 농안법 개정노력부터 하라고 농식품부에 촉구하고 있다. 시장 안에 들어오는 품목이 다양하지 않아 구매자의 요구를 맞춰주려면 같은 중도매인에게서도 사고 시장도매인에게서도 살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강서시장 경매동 입주 경매회사는 농협공판장을 포함해 강서청과, 서부청과 등 세 곳이다. B청과회사 경매에 참여하는 중도매인 C씨는 “채소 품목이 168개인데 여기 들어오는 건 40개밖에 안 된다. 나머지 채소는 다른 상인에게서 살 수밖에 없다”며 불법거래를 조장하는 것은 다름 아닌 경매회사라고 지목했다.

경매회사는 농산물을 경매에 부쳐 낙찰가의 7%를 수수료로 가져간다. 굳이 뛰어다니지 않아도 많은 수수료 수입을 얻기 때문에 산지 발굴 노력을 게을리한다는 지적을 꾸준히 받아왔다. 이같은 태도는 시장도매인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다. 시장도매인은 대표가 직접 산지를 뛰어다니며 양질의 출하자를 발굴해 최상급 품질의 농산물을 가져오는데 경매회사는 이에 대한 투자를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하지만 경매회사가 가져오는 물건이 적더라도 중도매인은 경매를 통해서만 물건을 살 수 있고, 그 법을 어겨 이번에 적발됐다. 중도매인의 불법을 초래한 건 경매회사인데 경매회사의 산지발굴 노력을 강제할 규정은 그 어디에도 없다.

"외부 판로 확대나 거래기능 축소를"

시장도매인측은 기획 감사도 불쾌하지만 법을 지킬 수 있게 하려면 신분증 확인 권한을 주든가 중도매인 교육을 철저히 해 시장도매인동쪽으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밤 10시부터 장이 열리는 이곳엔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어 누가 중도매인지 아닌지 구별할 수 없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중도매인 입장에선 없는 물건을 없다고 안 팔아 버리면 거래가 끊겨 생계에 지장을 받는다. 2014년 중도매인간 거래를 전년도 총 거래금액의 20%까지는 허용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때문에 이번 일을 계기로 시장도매인과 중도매인간 거래도 10% 정도는 열어줘야 한다는 주장이 시장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시장 관계자 D씨는 “시장도매인들도 중도매인들과 거래를 끊고 외부로 판로를 확장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며 “법 개정은 정책당국이 하는 것이니 맡겨두고 판로를 더 굳건히 하는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사실 그렇게 되면 당장 힘들어지는 건 중도매인들이다. 경매회사가 안 가져오니 중도매인이 가져와서 경매회사가 경매에 부친 것처럼 기록상장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7% 상장수수료를 안 받고 3%, 4%를 받는 것들은 중도매인이 가져온 농산물로 봐야 한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이래저래 법에 메여 생계에 위협을 받는 중도매인들에 대한 구제책이 절실해 보인다.

또 다른 관계자 E씨는 “세계적인 선진국들은 도매시장을 거래장소보다는 소포장시설, 창고 등으로 이용한다”며 “기다리고 경매하고 중도매인에게 가기까지 엄청난 손실이 발생하는 제도에 집착하지 말고 공영도매시장을 효율적으로 잘 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