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 수매하는데..쌀 버리겠다" 사면초가 농협들
"양파 수매하는데..쌀 버리겠다" 사면초가 농협들
  •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
  • 승인 2022.06.14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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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육묘장에 쌓아놓은 쌀들 그대로
양파.보리 수매공간 없어 중앙본부에 "SOS!"

쌀 15만톤 추가 격리 안 하면 

올해 수확기 쌀값 폭락 피할 수 없어

벼 보관 마지노선 6월 안에 '격리할 것' 발표해야

(한국농업신문=유은영 기자) “지게차 사용료까지 다 합쳐서 1000만원 정도? 저희가 무료로…. 창고 두 개 쓰면 얼마에요?”

지난 10일 서울시 중구 농협중앙회 본관의 농협경제지주 양곡부. 방철환 팀장은 하루종일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다. 도움을 요청하는 지역농협들의 전화가 쉴틈없이 폭주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수확기 벼 매입 사상 최대 물량을 사들인 농협들이 중앙본부에 대책을 요구하며 SOS를 치고 있다.

농협은 지난해 전국 쌀 생산량의 절반가량인 194만톤을 매입했지만 수확기 이후 산지쌀값이 20% 폭락해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농협 재고는 5월말 기준으로 전년보다 32만톤이나 많은 상황이다. 더구나 쌀 판매도 부진한 가운데 더위도 일러 마당과 육묘장 등에 쟁여놓은 벼 품질도 장담할 수 없게 되는 시기가 코앞에 다가오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계 없음]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계 없음]

가장 시급한 곳은 보리와 양파를 수매해야 하는 전북과 전남 해남.무안 등 남부지역 농협들이다. 창고는 벼로 가득차 보리, 양파를 넣을 곳이 없어서다. 이에 따라 지역농협들은 중앙본부에 “벼를 다 사가라”거나 “창고를 구해 벼를 옮겨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심지어 “벼를 버리겠다”고 엄포를 놓는 곳까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방 팀장은 “중앙본부에서도 최대한 지원할 방법을 찾고 있다”며 “지역농협들이 각자 처한 상황이 달라 최적의 방안을 찾는 데도 시간이 걸리고 있다”고 심각한 상황을 전했다.

농협들은 정부가 2차 쌀 시장격리를 발표한 지난 4월부터 15만톤의 3차 추가격리를 촉구했었다. 정부가 2차례 시장격리로 과잉물량을 걷어갔지만 농가보유 물량 우선이라 농협은 효과를 보지 못했다.

전남의 한 지역농협 조합장은 “이달에 쌀 시장격리를 할 예정이라고 발표라도 해야 상황이 진정될 것”이라며 “쌀은 안 팔리고 곧 수확기는 올텐데 큰일”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농협의 쌀은 농협의 경제사업을 통해 하나로마트에서 판매되거나 지역의 정미소(임도정공장) 등 양곡도매상들이 산다. 전반적으로 밥을 안 먹는 소비 패턴의 변화도 있지만 도매상들이 선뜻 거래에 나서지 않는 점도 최근의 쌀값 하락과 소비 부진의 원인으로 꼽힌다. 농협들이 창고를 비우기 위해 물량을 덤핑처리하는 시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 시기는 수확기까지 약 3개월을 남겨둔 시점인 6월이다.

이에 따라 특단의 대책이 나오지 않으면 전국 농협들이 덤핑에 나서고, 이로 인해 산지쌀값은 하락세에 더해 폭락을 거듭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이렇듯 쌀 격리가 시급한 상황이지만 국내외적 여건이 좋지 않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유가를 비롯한 모든 물가가 큰 폭으로 올라 소비자 눈치를 고려한 농림축산식품부나 기획재정부가 결단을 내리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업계에선 시장격리를 안 하고 수확기를 맞았을 때 농가에 타격이 커 장기적으로 국가 식량자급에도 비상이 걸린다고 입을 모은다.

충남의 한 농가는 “농협들이 쌀을 헐값에 팔거나 창고를 못 비운 채 수확기 벼 매입을 한다면 농가가 피해를 입게 된다”며 “이런 일이 계속 악순환되면 누가 농사를 짓겠는가. 필요한 일은 과감하게 결단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