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질 쌀가루 20만톤 생산…생산단지 200개소 조성
분질 쌀가루 20만톤 생산…생산단지 200개소 조성
  • 김흥중 기자 funkim92@newsfarm.co.kr
  • 승인 2022.06.15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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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 재배면적 4만2천㏊, ‘분질미’로 전환
공공비축제 방식으로 농가 생산량 매입
전략작물 직불 신설, 소득 보전책 마련
쌀가공산업 육성해 쌀 수급균형 맞춘다

(한국농업신문=김흥중 기자) 정부는 쌀 산업의 수급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열쇠로 가공 전용 쌀인 ‘분질미’를 꺼내 들었다. 동시에 분질 쌀가루로 밀가루 수요를 대체해 밀 수입 의존도를 낮춰 식량안보를 강화한다는 목표도 세웠다.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정황근)는 지난 8일 2027년까지 추진하는 ‘분질미를 활용한 쌀가공산업 활성화 대책’을 발표하며 이같이 밝혔다. 이 대책의 굵직한 목표는 앞으로 5년간 분질 쌀가루 20만톤을 시장에 공급해 연간 밀가루 수요 약 200만톤 중 10%를 대체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밀 자급률도 7.9%까지 끌어 올리고, 쌀가공산업 육성으로 쌀의 구조적 과잉 문제도 해결한다는 취지다.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지난 8일 농식품부 기자실에서 ‘분질미를 활용한 쌀가공산업 활성화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제공

늘고 있는 가공용 쌀에 주목

농식품부가 쌀 가공산업을 활성화하고 수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같은 대책을 내놓은 이유는 쌀 산업의 구조적 문제와 국산 밀의 낮은 자급률에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쌀 시장은 재배면적 감소보다 소비 감소 속도가 빨라 구조적 공급과잉 상태에 놓여 있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2012~2021년 연평균 재배면적은 1.5%씩 감소한 반면, 1인당 쌀 소비량은 2.2%씩 줄었다. 특히 쌀 소비량은 식생활 변화로 지난해 56.9㎏을 기록하며 해마다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반면에 가공 원료로 쓰이는 쌀 소비는 늘고 있다. 즉석밥 등 가정 간편식 시장이 커지면서다. 주요 쌀 가공식품의 매출액은 2010년 4.1조원에서 2020년 7.3조원까지 성장했다. 

제2 식량으로 불리는 밀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한다는 점도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다. 1인당 연간 밀 소비량은 2020년 기준 31.2㎏으로 양곡 소비량에서 쌀 다음으로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지만, 자급률이 0.8%일 정도로 자급 기반은 취약한 상황이다. 식품산업의 곡물·곡분 원료 중 밀과 밀가루가 차지하는 비중은 55%이지만, 이 물량은 99% 수입에 의존한다. 

건식 제분 가능한 ‘분질미’

정부가 발표한 이번 대책 중심에는 ‘분질미’가 있다. 분질미에 어떤 특성이 있어서 정부가 이토록 주목했을까.

분질미는 가공용으로 개발된 쌀 종류로, 일반 쌀과 달리 전분 구조가 밀처럼 둥글고 성글게 배열돼 있다. 구조 자체가 다르다 보니 제분 및 가곡적성 상 기존 쌀가루보다 밀가루를 대체하는 데 유리하다.

특히 건식 제분이 가능해 가공비용을 습식 대비 50%나 절감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일반 쌀은 다각형의 전분 구조가 밀착된 형태로 단단하기 때문에 가루 입자 크기가 크고, 건식 제분 시 전분에 손상이 발생해 가루 품질이 떨어진다. 이에 기존 쌀가루는 대부분 물에 쌀을 불리는 습식 방식으로 만들어졌으나, 분질미는 밀과 구조가 유사해 건식으로도 가루 생산이 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분질 쌀가루는 상대적으로 다양한 밀가루 제품에 적용할 수 있다. 또한, 분질미는 도정 즉시 가루가 돼 버려 밥으로는 이용할 수 없다. 밥쌀 시장 혼입에 대한 우려가 없는 셈이다. 

작부체계에도 일반 쌀과 다른 이점이 있다. 관행보다 늦은 6월 말이 돼서야 모내기에 들어가기 때문에 남부지역에서는 동계작물과 이모작이 가능하다. 

분질미는 농촌진흥청에서 개발한 쌀 종류로, 2002년부터 ‘남일벼’ 품종에서 분질 돌연변이 유전자를 탐색해 ‘수원542’, ‘바로미2’, ‘아로마티’ 등이 분질미 품종으로 개발돼 있다.

생산단지 확대하고 직불제로 인센티브 제공

농식품부는 이 같은 특성이 있는 분질미를 활용해 쌀 가공산업 활성화와 수급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겠다는 방침이다. 밀가루 수요를 대체해 식량안보도 강화하겠다는 것.

이에 농식품부는 먼저 안정적인 원료 공급체계 마련에 집중한다. 지난해 25㏊에 불과했던 분질미 재배면적을 올해는 기존 쌀가루용 품종 생산협의체 농가를 중심으로 100㏊까지 늘리고, 2027년까지는 4만2000㏊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전문 생산단지도 200개소까지 조성한다.

특히 내년부터는 공익직불제 내에 전략작물 직불제 신설을 검토해 재배 농가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농가 참여를 유도한다. 직불금 단가 등은 관계부처와 협의 중인 상황이다.

또 밀-분질미 이모작 작부체계를 활성화하기 위해 내년부터 기존 밀 전문 생산단지를 중심으로 분질미 생산단지를 육성한다. 올해 밀 생산단지는 51개소로, 면적은 7663㏊에 달한다. 전문단지에는 분질미 생산·유통·가공에 필요한 시설과 장비를 지원할 예정이다. 

분질미 종자는 2024년 보급종을 생산해, 2025년부터 공급할 계획이다. 

이외 재배면적 증가에 맞춰 체계적인 재배 관리를 뒷받침할 기술지원에도 총력을 다한다. 농촌진흥청을 중심으로 도농업기술원, 시·군농업기술센터 등과 함께 현장기술지원단을 꾸린다. 이 지원단은 생산단지와 1대1로 지도에 나선다. 

농식품부는 유통·소비 지원도 병행해 산업화 기반을 마련한다. 

분질미는 농가별로 매년 3~5월에 정부와 매입 계약을 체결하고, 수확기에 공공비축미로 매입한다. 특히 매입 절차, 매입가격 등은 기존 공공비축미 제도와 동일하게 운영한다. 농식품부 식량산업과 관계자는 “매입 과정은 큰 틀에서 현행 공공비축미 제도를 따라 실시하되, 구체적인 가격과 물량 등은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공급도 정부가 직접 책임진다. 밀가루를 분질미로 대체하는 실수요업체에 분질미를 특별 공급한다. 공급 초기에는 밀가루를 대체할 수 있도록 분질미 신곡을 특별가격으로 공급하고, 대중화 이후에는 공급가격을 재검토할 방침이다. 

농식품부는 분질미 소비기반 확대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는 계획이다. 분질미 생산자, 소비자단체, 제분·가공업체,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쌀가루 산업 발전협의체(가칭)’를 운영해 작황·수급 동향, 신제품 개발 동향, 홍보 등 주요 사항을 정기적으로 논의한다. 분질미 관련 생산자, 수요자 공동으로 자조금도 적립해 홍보와 소비 촉진 등에 활용한다.

정부는 이를 통해 2027년까지 쌀가공산업 시장 규모를 7.3조원에서 10조원까지 확대하고, 가공용 쌀 공급도 52만7000톤에서 78만3000톤까지 늘릴 계획이다. 또 식량자급률을 45.8%에서 52.5%로 올리는 동시에 밀 자급률 또한 7.9%까지 확대한다.

정황근 농식품부 장관은 “분질미는 식량자급률을 높이기 위한 실질적인 수단이라고 본다. 또 쌀 수급균형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면서 “이로써 쌀 수급 과잉으로 소요되는 비용을 식량 자급 기반을 확충하기 위한 투자 재원으로 대신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쌀가루

가공적성 연구·개발 필요해

분질미를 통한 쌀가공산업 활성화 대책이 마련된 만큼,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먼저 분질미는 일반 쌀보다 수량성이 낮다. 일반 쌀의 최근 5개년 평균 단수는 521㎏인데, 분질미는 이보다 46㎏ 빠지는 475㎏ 수준이다. 수량이 곧 소득으로 직결되는 만큼 농가에서 분질미 재배를 고심할 우려도 있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는 직불제 확대를 통한 인센티브 제공 등이 거론되고 있다. 

공공비축미에서 분질미가 차지하는 물량이 늘어날 경우 일반 쌀이 오히려 다시 시장에 나와 수급불균형 문제가 재발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 관계자는 “올해부터 공공비축미곡 매입 물량을 45만톤으로 늘렸으며, 그 안에서 분질미 물량도 매입할 예정이다. 이후 분질미 물량이 늘어나면 업체 공급 시스템 체계 등을 검토해 대책을 세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균일한 품질의 쌀가루를 생산하기 위한 대량 제분 기술도 필요한 상황이다. 특히 쌀 특성상 빵, 면 등 일부 식품은 아직 밀가루를 완전히 대체하기 어려워, 식품 품목별 가공적성 연구가 더 진행돼야 하는 문제도 남아 있다. 

또한, 분질미의 재배 시기상 수발아와 병충해에 취약할 수 있어 재배 안정성과 생산성을 높이는 연구개발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