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값 하락 멈추지 않는 원인‥정부 ‘찔끔격리’ 때문
쌀값 하락 멈추지 않는 원인‥정부 ‘찔끔격리’ 때문
  •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
  • 승인 2022.08.23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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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친 데 덮친 격 농협 ‘손실보전 정책’
쌀값 더 낮춰 농가 수매가 악영향
정부, 15만톤 중 5만톤 왜 농협에 떠넘겼나

15만톤 제대로 격리했어야…‘구곡격리’로 책임 만회를

(한국농업신문=유은영 기자) 정부가 올해 2021년산 쌀 37만톤을 격리했지만 쌀값 하락세가 멈추지 않는 원인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23일 농가와 RPC(미곡종합처리장) 등 산지에 따르면 ▲정부의 시장격리 지연과 ▲깔끔하지 못한 격리방식이 올해와 같은 쌀값 대란을 초래했다는 지적이다.

지난 19일 전남 해남의 황산농협 하나로마트 매장에 쌓인 쌀포대를 방문객들이 바라보고 있다.
지난 19일 전남 해남의 황산농협 하나로마트 매장에 쌓인 쌀포대를 방문객들이 바라보고 있다.

산지쌀값은 지난해 수확기 이후 1년새 약 20% 하락했다. RPC의 역계절진폭도 사상 최고인 18%를 기록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올해 2월과 5월 쌀값 하락세를 멈추기 위해 2021년산 쌀 각각 14만5000톤, 12만6000톤을 매입했다. 그래도 쌀값 하락이 멈추질 않자 7월 13만9000톤(정곡 10만톤)을 세 번째로 격리한다고 발표했다. 이렇게 정곡 기준 총 37만톤을 격리했지만 쌀값 하락은 여전하다.

산지 벼값은 이달 중순 들어 5만원대보다 4만원 후반대 거래가 더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특이한 것은 전통적으로 값이 높은 지역인 경기미 가격이 지방과 똑같다는 점이다.

경기지역 한 민간RPC 관계자는 “너무 잉여(과잉물량)가 많아서 곧 20kg 정곡 3만원(산지가격)도 무너진다”고 내다봤다.

올해 쌀값 하락폭이 45년만에 최대폭을 기록할 만큼 사태가 심각해진 건 우선 정부의 시장격리 타이밍이 너무 늦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부터 산지에선 과잉을 예상하고 선제적인 시장격리를 촉구했었다. 정부는 미동도 않다가 12월 끝무렵에서야 시장격리를 결정했다. 격리물량도 한꺼번에 걷어내지 않고 20만톤, 7만톤, 10만톤 식으로 찔끔찔끔 매입해 사태를 키웠다.

또 중요한 것은 최저가입찰제의 역공매로 격리를 실시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의 총 격리물량 37만톤을 기존처럼 공공비축미 특등 또는 1등급 가격으로 매입했다면 쌀값하락을 멈추는 것은 물론 반등의 동력을 주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물량 초과매입한 산지, 심리적 부담감에 이른 투매로 쌀값 폭락 분석도 

이제 추석(9월 10일)이 불과 보름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쌀값하락의 여파는 쌀 도매유통업체인 RPC에서 농가에게로 넘어가고 있다. 본격적인 쌀 출하가 시작되는 수확기(10~12월) 쌀값을 전국 산지에 남아있는 2021년산 구곡이 떨어뜨려 놓을 것이 확실시되기 때문이다. 업계는 지금 상황이 지속된다면 40kg 조곡 수매가가 4만원대로 형성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전문가는 쌀 공급과잉과 쌀값하락 현상이 올해는 좀 특별하다고 평가했다. (사)한국RPC협회 서용류 전무는 “쌀은 거의 매해 남았는데 올해처럼 가격이 폭락한 적은 없었다”며 “심리적인 원인이 상당부분 작용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평소보다 벼를 많이 매입했다는 부담감에 일찍부터 투매(덤핑, 저가판매)를 시작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실제 고가미 지역인 경기에서도 산지벼값이 지방과 다를 게 없는 5만1000~3000원에 거래되고 있는 것은 업계에 이미 퍼진 사실이다. 서 전무는 “떨어진 고가미 가격이 기준이 되어 다른 고가미를 떨어뜨리고 전체적으로 쌀값이 저가 평준화되는 현상이 생긴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일단 물량이 너무 많은 게 원인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과잉물량으로 추정한 27만톤 외에 10만톤을 더 격리했어도 쌀값이 반등하지 않아 통계오류에 대한 지적이 쇄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지난해 8월까지 연달아 실시한 정부양곡 방출의 영향이 크다는 분석도 있다. 2020년산 구곡이 2021년산과 함께 시장에 나와 공급과잉을 부추겼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3차 시장격리도 미진하게 대처해 사태를 악화시켰다. 재고가 많은 농협들이 요구한 격리물량 15만톤을 깔끔하게 격리하지 않고 5만톤을 농협에게 넘겼다. 과잉물량은 시장에서 들어내야 효과가 나온다. 농협의 5만톤은 창고를 옮겼을 뿐 여전히 시장에 남아있기 때문에 쌀값을 더 떨어뜨릴 것이라는 관측이다. 농협경제지주는 최근 8만톤에 대한 창고 이전을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또 쌀값 하락으로 인한 손실액을 포대당 얼마씩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손실보전을 받은 지역농협들은 쌀값을 더 낮출 여력이 생겨 시장가격이 더 낮아질 거라고 업계는 한 목소리로 주장하고 있다.

RPC 관계자는 “격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농가에게 피해가 가게 됐다”며 “정부는 수확기 구곡 격리로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