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업신문 창간10주년 특집] 흙, 물 그리고 사람…대한민국 식량안보를 지키는 초석① 농지를 지켜라
[한국농업신문 창간10주년 특집] 흙, 물 그리고 사람…대한민국 식량안보를 지키는 초석① 농지를 지켜라
  • 김은진 기자 kej@newsfarm.co.kr
  • 승인 2022.09.20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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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안보 지키려면 최소 160만ha 필요…농지보전 ‘인력·예산’ 확보 서둘러야
논 30년 38,7% 감소 절대농지도 전용 지속 증가
‘부재지주’ 농지 소유 늘어…지가 상승 투기 변질
경자유전 원칙 지키고 ‘농지보호총량제’ 도입해야

(한국농업신문=김은진 기자)정부는 곡물자급률을 2017년 30%, 2022년 32%로 높이겠다는 목표를 내세웠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오히려 곡물자급률은 매년 떨어지면서 2020년 20%대가 무너져 19.3%(유엔 식량농업기구 집계 기준)를 기록했다. 이 수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떨어진 곡물자급률을 높이기는 매우 어렵다. 적정수준의 농지를 확보해야 자급률을 조금이라도 올릴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의 국민 1인당 농지면적은 100평이 안 된다. 이마저도 매년 줄어들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990년 210만8000ha에 달하던 우리나라 농지는 2011년169만8000㏊, 2020년 156만ha로 줄었다. 사라진 농지는 서울시 면적 6만500ha의 약 9배에 이른다.

- ‘절대농지’도 전용허가 못 막아 
농지 중 논의 면적이 빠르게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논의 경우 30년 동안 134만5000㏊에서 82만4000㏊로 38.7%가 감소했다. 이처럼 논의 면적의 빠른 감소는 곡물자급률을 떨어뜨리는 주요 원인으로 지적된다. 특히 식량안보를 위해 반드시 보전해야 할 농업진흥지역(진흥구역·보호구역) 농지면적이 줄어들어 충격을 주고 있다. 농업진흥지역 농지는 2006년 91만7000ha에서 77.6만ha로 15.4%나 감소했다. 밭은 76만3000㏊에서 74만1000㏊로 2.9% 감소했다. 

‘절대농지’로 불려왔던 농업진흥지역 농지는 필지 단위를 권역별로 묶어 경지 정리와 농업기반시설이 들어서 있어 식량안보 최후의 보루로 여겨져 왔다. 농업진흥지역에선 일정 규모 이하의 농가주택, 가공처리시설만을 설치할 수 있다. 하지만 농업생산과 농지개량 등과 직접 관련이 없는 토지 이용 행위는 할 수 없지만, 진흥지역의 전용허가는 꾸준히 늘고 있다. 

농지 감소를 줄이기 위해선 농지전용을 억제해야 한다. 각종 개발 수요로 전용허가 면적은 빠르게 늘어 2011년 1만3329ha에서 2020년 1만7429㏊로 30.8% 증가했다. 농업진흥지역 내 전용허가 면적도 같은 기간 2181ha가 늘어나 전체 전용허가 면적의 12.5%에 달했다.

- 농지규제 완화…농지 전용 부추겨
식량안보를 위해 최소로 유지해야 할 농지 160ha가 붕괴됐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제시한 곡물자급률 30%에 필요한 농지는 165만ha, 32%는 175ha가 필요하다. 해외로부터 곡물 수급이 원활하다면 필요 농지는 줄어들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 세계적인 경기침체와 국제 곡물 가격 상승에 따라 곡물 수입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농지의 감소는 우리나라 곡물 수급에 심각한 위기 상황을 불러올 수 있다.

더욱이 농지 감소의 추세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우선 평균 경사율이 15%이상인 한계농지는 비농업인 소유할 수 있다. 또 농지전용부담금 면제 대상이 지방산업단지에서 수도권산업단지로 확대하는 등 농지 관련 규제가 대폭 완화됐다. 지난해 4월에는 농업진흥지역에 태양에너지 발전설비를 설치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었다. 

- 비농업인 농지 수요 크게 늘어
무엇보다 비농업인의 투기 목적 농지 수요는 농지전용을 부치기고 있다. 우리나라 헌법에는 농지를 소유한 자가 경작해야 하는 경자유전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스위스, 덴마크, 독일 등 주요 유럽국가와 가깝게는 일본도 경자유전을 법률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헌법이 비농업인은 특별한 사유 없이 농지를 소유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현실은 부재지주(비농업인)들이 매년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1월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가 발표한 ‘농지 소유 및 이용 제도개선 방향’에 따르면 경기도 화성, 여주, 안성과 경남 거창 등 일부 지역을 조사한 결과이긴 하지만 부재지주의 농지가 30.5%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경기도 여주의 한 마을은 부재지주 비율이 91.1%에 달했다. 이에 전국적으로 농지 소유에 대해 일제 조사를 벌인다 해도 부재지주의 농지는 상당한 수치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비농업인의 농지 소유가 늘어나면서 농지가격도 상승해 농민이 농지를 구입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상속농지의 급증도 부재지주 증가의 한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18년 기준 70세 이상이 45.1%, 60세 이상이 전체 농지의 81.3%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따라 승계 및 후계농 등이 없는 고령농가의 경우 비농업인 자녀에게 상속·증여가 이뤄지면 비농업인의 농지 소유는 많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 정부, 법 개정 농지투기방지 나서 
이처럼 농지규제의 완화와 비농업인의 농지 소유가 늘어나면서 보전해야 할 농지의 감소는 지속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투기 목적의 비농업인 농지 소유는 농지가격 상승을 가져와 농업인 경작 의욕을 떨어뜨려 식량안보에 큰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이에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 8월 농지법을 개정해 이행강제금 부과액을 공시지가의 20%에서 25%로 늘리고 농지 불법 취득 심사를 강화했다. 또한 농업에 이용하지 않는 상속·이농농지는 사유발생일로부터 1년 안에 처분토록 농지법을 개정하기도 했다.

특히 지난 3월 LH직원 땅 투기 사태를 계기로 농기투기억제를 위한 농지법을 차례로 개정했다. 지난 2월 18일 한국농어촌공사 농지은행을 확대·개편한 ‘농지은행관리원’을 출범시켰다. 5월 18일부터는 농업경영계획서 의무 기재사항 확대, 증명서류 제출 의무화, 농지 쪼개기 제한 등 농지취득 자격을 대폭 강화했다. 

지난 8월 18일부터는 농지원부를 ‘농지대장’으로 전환하고 임대차 등의 농지 이용현황 신고를 의무화하고 시·구·읍·면에 농지위원회를 설치토록 했다. 농지위원회는 지역 농업인, 관련단체 추천인, 농업정책전문가가 참여해 토지거래 허가지역의 농지, 농업법인의 농지 취득, 한 필지를 3인 이상이 공동지분으로 구입하는 농지, 타 지역인이 처음으로 농지를 취득하는 경우, 외국인의 농지취득을 대상으로 심사를 하게 된다.

- 정 장관, “우량농지 인센티브” 강화
농식품부는 농업진흥지역 농지 보전에 대해서도 정책을 마련 중에 있다. 가장 근접한 정책은 우량농지를 소유한 농업인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정황근 농식품부 장관도 이 부분에 대해서 장관 지명 기자회견과 취임식에 잇달아 밝힌 바 있다.

정 장관은 지난 4월 14일 장관 지명 기자회견에서 “우량한 농지일수록 농업인의 재산가치가 떨어지는 문제가 있다”며 “식량안보 차원에서 농지보전을 위해 인센티브 방안이 결합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취임식에서도 “식량안보에 필수적인 농지를 확보하고, 우량농지를 보전을 위해 인센티브를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농지 전용 막기 위한 법 강화해야 
정부가 농지보전을 위해 법을 개정하고 농업인 소유의 우량농지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의 농지 투기 억제 나서고 있지만 줄어드는 농지를 막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지난 3월 LH투기 사태 이후 농지법 개정으로 농지 취득 등의 요건은 강화됐지만 농지 감소의 주요 원인인 농지 전용 부분은 빠졌다.

최근엔 쌀값이 하락하자 가장 먼저 제기되고 있는 것은 쌀 재배면적을 줄여한다는 의견이 팽배하다. 지금까지는 농지 감소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쌀 재배면적을 줄이고 밀, 콩, 사료작물 등 타작물 재배를 늘려왔다. 하지만 논에서 쌀 이외에 작물을 지속적으로 재배하려면 그에 적합한 농기자재의 확대 보급, 소비 및 판매처 확보 등 필요하다. 쌀 재배면적을 줄이기 이전에 농지를 보전하면서 농업인의 안정적인 수익방안을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

무엇보다 현재와 같은 농지 감소 추세를 막기 위해서는 경자유전의 원칙을 지키고 강화해 나가야 한다. 매년 여의도 면적 52배에 달하는 농지가 전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법 강화도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는 상속농지 관리 강화와 우량농지에 대한 구체적인 보전 방안 마련, 농지보전 및 식량안보를 위한 인력의 확충과 예산의 확보 등이 필요하다. 여기에 식량자급률 목표에 필요한 농지의 총량을 정해 농지의 무분별한 전용을 막는 ‘농지보호총량제’의 도입 논의도 서둘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