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米적米적] 물가 잡다 농민도 잡겠다
[기자수첩 米적米적] 물가 잡다 농민도 잡겠다
  • 김흥중 기자 funkim92@newsfarm.co.kr
  • 승인 2023.01.11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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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중 기자

최근 설 명절을 앞두고 정부에선 ‘설 성수품 수급안정 대책’을 내놨다. 소비자의 설 장바구니 물가 부담을 줄인다는 취지다. 

설 3주 전인 지난 2일부터 정부 비축, 농협 계약재배 물량 등을 모두 포함해 10대 설 성수품의 공급을 평시 대비 1.5배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총 14만톤가량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배추, 무, 사과, 배 등 일일 평균 공급량을 확대하고, 계란 가격 안정을 명목으로 스페인산 계란 121만개를 시범 수입해 시장에 공급한다. 

정부의 이 같은 선제적인 조치에 농가들은 울분을 토하고 있다. 소비자는 반길지 몰라도, 농가들은 과연 이러한 행보가 정부의 역할인지 의심하고 있다.

배추 산지에서는 가격이 폭락한 배추를 평시 대비 1.5배 이상 시장에 방출하는 정부 조치에 반발이 거세다. 지난 5일 기준 가락시장 배추 최하 경매가격이 10㎏에 1600원이 나올 정도로 배추 가격은 헐값이 됐는데, 소비자 물가 부담을 낮춘다는 명목으로 배추를 시장에 더 푼다는 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다. 가을배추 출하 정지와 산지 폐기가 진행되고 있으면서 시장 방출이 동시에 이뤄지는 현재 정책이 혼란스럽다는 분위기다.

산란계 농가들의 상황도 배추 농가와 다르지 않다. 국내 계란이 충분한데도 불구하고 수입이 웬 말이냐는 주장이다. 국민 혈세를 들여가며 계란 가격 누르기에만 급급하다는 비판도 쏟아진다. 

앞서 지난해 12월 마늘 품목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재배면적이 소폭 늘면서 향후 수급 상황이 양호할 것으로 점쳐지는 가운데에서도 정부가 마늘 수입에 나서고 있다는 지적이다. 새해 벽두부터 저율할당관세로 양파를 들여오겠다는 방침에 양파 농가 역시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정부 물가 대책이 농민까지 잡는 판국이다. 농가 소득이나 유통구조 개선 등 근본적인 대책은 늘 미뤄지고, 일단 가격을 떨어뜨리는 노력과 조치가 먼저 이뤄지고 있다. 특정 산업이나 계층의 일방적인 희생으로 만들어진 물가 관리가 과연 뾰족한 해답인지 의문을 지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