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열대지역 적응 일장에 둔감한 ‘자포니카 벼’ 개발
[전문가 칼럼] 열대지역 적응 일장에 둔감한 ‘자포니카 벼’ 개발
  • 정오영 농촌진흥청 작물육종과 농업연구관 webmaster@n896.ndsoftnews.com
  • 승인 2023.03.14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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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영 농촌진흥청 작물육종과 농업연구관
정오영 농촌진흥청 작물육종과 농업연구관

(한국농업신문=김은진 기자)최근 우리나라는 기후변화로 8월 이후부터 등숙기까지 지속적인 고온과 빈번한 강우로 수발아와 등숙 불량에 따른 쌀 품질 저하 및 수량 감소가 발생하고 있어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벼 일생은 크게 연속되는 2단계인 영양생장기와 생식생장기로 나눌 수 있다. 영양생장기는 벼 식물체가 양적으로 생장하는 기간으로 주로 벼 키와 분얼수 증가가 두드러진 것이 특징이다. 생식생장기는 질적인 성장으로 두드러진 특성은 유수 발육과 종실 생성이다. 벼가 이처럼 순차적으로 발육이 완성되는 것을 상적 발육이라고 하며, 영양 생장에서 생식 생장으로 이행하는 것을 화성(花成)이라고 한다. 화성에 미치는 환경요인은 작물에 따라 매우 다양하며, 이행 속도에 따라 종실이 익는 시기도 달라진다.

벼의 상적 발육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두 가지 환경요인은 일장(낮 길이)와 온도이다. 벼 생육기간 중 고온에 의하여 벼의 출수ㆍ개화가 촉진되는 성질을 감온성(感溫性)이라고 하며, 낮의 길이가 줄어드는 단일(短日) 환경에서 화아분화가 촉진되는 정도를 감광성(感光性)이라고 한다. 이러한 환경요인에 벼가 반응하여 나타나는 감응 정도에 따라 감온성과 감광성이 ‘높다’ 또는 ‘작다’라고 표현한다. 

우리나라에서 주로 재배하고 소비하는 쌀은 온대지역에 적합한 감온성과 감광성이 높은 자포니카 벼이다. 자포니카 벼는 필리핀 등과 같이 일장이 짧고 온도가 높은 저위도 열대지역에서는 정상적인 생육을 할 수가 없다. 

농촌진흥청이 본격적인 쌀 수입 개방에 따른 수입쌀 시판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자 2005년 동계에 필리핀 현지에서 ‘고품벼’를 대량 종자 증식하여, 그 이듬해 국내에 보급한 적이 있다. ‘고품벼’는 농촌진흥청이 2004년 우리나라에서 개발한 최고품질 벼로, 낮 길이가 14시간 전후로 긴 일장 조건을 갖춘 우리나라에서 5월 25일에 모내기하면 80여 일이 지난 8월 14일이 이삭이 나오며, 이때 벼 키가 78cm 정도이다. 하지만 연중 낮 길이가 12시간 정도인 필리핀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육성한 ‘고품벼’를 모내기하면 15일 만에 이삭이 나오는 비정상적인 생육을 보였으며, 이때 다 자란 벼 키는 34cm 정도였다. 이는 ‘고품벼’와 같은 온대성 자포니카 품종은 일장에 감응해 이삭이 패는 것과 관련된 주동 유전자인 Hd1(Heading Date 1) 기능적 대립유전자를 보유하고 있어 필리핀과 같은 단일조건에서 화성 유도로 빠른 개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농촌진흥청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필리핀에 있는 국제미작연구소(IRRI, International Rice Research Institute)와 함께 동남아시아와 같은 단일조건에서도 정상적으로 자랄 수 있는 자포니카 벼 품종 개발을 시작했다. 먼저 단일조건에서도 정상 생육이 가능한 우수한 국내 자포니카 유용자원을 선발해 이를 활용해 열대지역에서 적응할 수 있는 ‘아세미’, ‘아세미1호’ 등 6개 벼 품종을 개발했다. 이 품종들은 출수 관련 유전자인 Hd1 기능이 상실돼 단일조건에서도 충분한 영양생장을 거친 후 생식생장으로 이행해 정상적인 수량과 품질이 좋은 쌀을 생산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벼를 1년에 1회 재배하지만, 개발된 열대자포니카 품종은 필리핀 등과 같은 열대지역에서 1년에 2회 재배가 가능해 유사시 동남아시아에서 쌀을 생산할 수 있어 불안정한 국제 쌀 가격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한국보다 고온 다습한 필리핀 등과 같은 기상 조건에서 개발된 열대지역 적응 자포니카를 활용해 사전에 자포니카 벼 반응을 조사하여 수량과 품질변화를 예측할 수 있게 돼, 기후변화로 인한 우리나라 이상기상 반응에 능동적인 대응이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