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친환경 인증, 0을 향해 가는 제도로 탈바꿈해야"
[인터뷰] "친환경 인증, 0을 향해 가는 제도로 탈바꿈해야"
  • 김흥중 기자 funkim92@newsfarm.co.kr
  • 승인 2023.07.07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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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용 (사)한국친환경농업협회장 인터뷰
비의도적 오염 인증 취소 농가 부담
취소 농가 구제할 제도개선 필요
친환경농업 직접 접할 기회 확대해야
강용 (사)한국친환경농업협회장

(한국농업신문=김흥중 기자) 탄소중립 등 지구와 환경을 생각하는 가치들이 크게 주목받고 있지만, 이를 실천하고 있는 친환경농업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학령인구 감소로 친환경 농산물의 주된 판로인 학교급식 시장의 축소가 예견돼 있고, 예상할 수 없는 오염원으로 인증 취소 처분을 받는 농가들은 친환경 농사를 포기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자 친환경 인증 제도개선 등 친환경농업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강용 (사)한국친환경농업협회장을 만나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들어봤다. 

-현재 국내 친환경농업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7~8만명을 훌쩍 넘었던 친환경 인증 농가가 최근 3~4년 동안 5만명대로 줄어들었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부터 2022년까지에는 인증 농가 수, 인증 면적, 인증 건수 등 친환경농업을 나타내는 지표들은 대부분 하락세였다. 

친환경 농산물 매출의 40%가량을 차지하는 학교급식이 학생 수가 줄면서 점점 그 규모가 줄고 있고, 최근 경기 침체로 친환경 농산물을 찾는 소비자 자체도 줄어든 모양새다. 또 농약 검출 여부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친환경 농산물 인증제도와 관련해서도 농가들의 어려움이 속출하면서 친환경농업을 포기하는 농가들이 많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다양한 어려움과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얽히면서 친환경농업에 좋지 못한 영향을 주고 있다. 국내 농업 중 친환경농업 비중이 약 5%인데, 이마저도 무너질 위기에 놓여있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친환경농업의 상황이 좋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코로나 시대에는 친환경 농산물의 주된 판로인 학교급식이 막히면서 큰 위기를 겪었다. 학교급식이 중단됐던 것이 친환경 농가에는 상당히 치명적이었다.

학교급식이라는 가장 큰 수요처가 한 번에 사라지니 친환경 농가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학생 수가 계속해서 줄고 있으니, 친환경 농산물의 주된 수요처의 감소는 예견된 일이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점점 단계적으로 줄어든 게 아니라 판로가 일순간에 막혔고, 공들여 키운 친환경 농산물은 제값도 받지 못하고 일반 농산물 시장으로 유통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농가들의 소득은 줄어들었다. 일반 농사보다 더 힘들게 농사지어도 제값도 받지 못하는 친환경 농사를 더는 할 수 없다는 농가들이 쏟아졌다.

물론 정부나 지자체에서 친환경 농산물 소비 촉진이나 판로확보를 위한 사업, 행사 등을 추진해준 덕에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이긴 했다. 그러나 임시방편만으로 친환경농업의 하락세를 막을 순 없었다.

-최근 친환경 농산물 인증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우리나라 친환경 농산물 인증제도는 미국이나 유럽 등 국제 기준보다 지나치게 농약의 검출 여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로 인해 친환경 농가의 인증이 취소되는 등 농가 피해가 속출하면서 인증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들이 주목받고 있다. 

친환경농업은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안전한 농산물을 생산하는 것 외에도 더 중요하고 핵심적인 가치를 많이 지니고 있다. 생물 다양성을 증진한다거나 환경보전, 생태계 복원 등 가치가 그 예시다. 하지만 국내 친환경 농산물은 농약이 검출됐는지, 안 됐는지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자 친환경농업의 잣대가 되고 있다. 소비자들 역시 이 부분만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인증제도를 개선해 농약이 검출된 농산물을 친환경 농산물로 인정하자는 게 아니다. 고의적으로 합성농약 등을 사용한 농산물은 당연히 친환경 인증을 받을 수 없는 게 맞다. 농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불가항력적으로 농약 등이 검출된 농산물을 구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친환경농업 현장에서는 농가들이 스스로 노력해도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이 많다. 관행 농법으로 농사짓는 주변 논이나 밭에서 날라 온 합성농약 성분이 그대로 친환경 농가의 논·밭에서 검출된다. 또 수십년 전 토양에 잔류 됐던 맹독성 농약이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다시 땅에서 나오기도 한다. 심지어 농산물 포장재에서 나온 농약 성분이 농산물에 묻어 검출되기도 한다. 

친환경 농가의 고의적인 행동이나 실수가 아닌 비의도적인 오염원에 의해 친환경 농산물 인증이 취소될 수 있는 셈이다. 이에 친환경 농산물 인증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주장은 이전부터 계속 언급돼왔고, 최근에는 정부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친환경 농가들과 함께 적극적으로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비의도적 오염으로 인한 친환경 농가들의 피해는 어느 정도인지.

친환경 농가의 한 해 전체 소득이 막혀버린다. 주변 농장에서 비산된 농약이나 포장재에서 발생한 농약 성분 등으로 인해 친환경 농가에서 생산한 농산물에서 농약이 검출되면, 인증이 취소된다. 인증이 취소된 농가의 농산물은 친환경 농산물로 출하할 수 없게 된다. 

농가의 실수나 고의적인 행동으로 인증이 취소되는 것은 농가 스스로 당연히 감수해야 한다. 다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역시 국내 친환경 농산물 인증제도에서는 농가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구조다. 어디서, 어떻게, 어떤 이유로 농약이 검출됐는지 농가가 직접 밝혀야 한다. 설령 원인을 찾았다고 하더라도 취소된 인증을 다시 되돌리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는 와중에 수확한 농산물은 출하 시기를 놓치고, 상품성을 잃게 되기도 한다. 

다행인 것은 정부에서도 이 상황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있고, 개선 의지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에는 재인증의 요건을 완화하는 등 제도를 조금씩 손보고 있다. 친환경 농가와는 물론이고, 소비자 단체 등과도 함께 간담회를 자주 열면서 합리적인 제도개선을 위해 힘을 합치고 있다. 

-친환경 농산물 인증제도, 어떻게 개선돼야 할까.

친환경농업이나 친환경 농산물의 개념이 오랫동안 농약 검출 여부에서 결정되다 보니, 이를 하루아침에 바꾸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제도개선 방향에 대해 소비자들과 공감대도 형성해야 하고, 합리적인 기준을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 

친환경 농가들이 탄소중립 등을 통해 지구를 살리고, 생물 다양성을 증진하며, 환경보전과 더불어 생태계 복원 등에 힘쓰고 있다는 게 인증제도 안에서 조금 더 인정받아야 할 것이다. 친환경 농업인들의 처우가 지금보다는 더욱 개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 친환경농업이 지닌 가치를 조금 더 확대할 수 있도록 농법의 개발과 보급 등에 농가들도 참여할 필요가 있다.

특히 비의도적 오염으로 인해 농가의 노력에도 인증이 취소되는 사례를 제도적으로 막아야 한다. 이를 위해선 농가와 소비자 모두 공감할 수 있는 합리적인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친환경농업은 농약이 일절 없는, 0의 상태만을 고집한다. 그러나 여러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 농약이 검출될 수 있는 우려는 항상 존재한다. 0만을 고집하는 인증제도가 계속될 경우 친환경농업을 하려는 농가들은 점점 줄어들 것이 자명하다. 0을 목표로 나아가는 농업도 친환경농업으로 인정해줘야 한다. 

-인증제도 개선 과정에서 꼭 필요한 게 있다면.

인증제도 개선을 위해선 무엇보다 소비자들과의 소통과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 소비자들이 인정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제도개선이 잘 이뤄져도 친환경 농산물은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이에 친환경농업을 가르치는 교육도 중요하지만, 소비자들이 친환경농업 현장을 자주 접하고 직접 보고 만지고 맛보는 기회가 많이 생겨야 한다. 생생한 현장을 직접 체험하면서 친환경농업의 가치에 대한 이해의 폭을 더욱 넓혀줘야 한다. 

친환경농업협회와 친환경농산물자조금관리위원회에서도 매년 6월 2일 유기농데이를 기념해 서울 도심에서 친환경농업을 알리는 유기농 대축제를 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강의실에 모여 친환경농업의 가치를 알리는 일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친환경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현장 교육이 더욱 활발하게 이뤄질 필요가 있는 셈이다. 이런 모든 활동이 계속해서 누적된다면 친환경 농산물을 찾는 소비자들의 인식도 바뀔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또한, 친환경농업의 가치를 실현하고 있는 농가들에 대한 지원책도 마련돼야 한다. 직불제 개편을 통해 다양한 공익적 기능을 수행하는 농가에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라는 말이 있듯 기본적인 생계유지가 어렵다면, 친환경농업의 가치가 아무리 뛰어나다고 한들 농가들이 친환경농업을 지속할 수 없다. 친환경농업을 시작하려는 농가들이 더욱 늘어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제도개선이 이뤄지길 바란다. 

-전국 친환경 농가들과 소비자들에게 한 말씀.

힘든 상황에서도 친환경농업의 가치를 이어가며 친환경 농사를 짓고 있는 농가들에게 격려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전국 곳곳에서 노력하고 계시는 친환경 농가들이 그 지역의 친환경농업을 선도하는 리더가 돼 친환경농업을 시작하려는 농가들을 이끌어주시길 바란다. 

소비자분들께서는 친환경농업의 다양한 가치를 조금 더 깊게 생각해주시길 바란다. 협회에서는 친환경농업의 가치를 소비자분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최선을 다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