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명나방 피해 현장 난리에도 정부는 '느긋'
혹명나방 피해 현장 난리에도 정부는 '느긋'
  • 박현욱·김은진 기자 farmwook@newsfarm.co.kr
  • 승인 2023.09.11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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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관리 4단계 중 '주의' 단계에 머물러
나방류 피해 지역 농기센터에서 현황 집계  
기후변화로 병해충 피해 확산
·급증하는데 
"중앙부처서 직접 관리 필요하다" 목소리


(한국농업신문= 박현욱·김은진 기자)

혹명나방 피해가 서해안 벨트와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확산되면서 정부의 병해충 예찰 시스템에 대한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농촌진흥청 위기관리 매뉴얼 상 '관심, 주의, 경계, 심각' 등 4단계가 있지만 아직까지 '주의'에만 머물러 있어서다. 아수라장인 현장 상황에 비해 정부의 대응이 느긋한 것 아니냐는 비판과 나방류 병해충에 대한 중앙정부 차원의 대대적인 예찰시스템의 정비가 필요한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혹명나방은 중국 남부지방에서 발생해 국내에 상륙한 것은 8월 중순. 초기 비래발생이 빨랐던 데다 기후변화로 인한 국내 장마가 길어지면서 제 때 약제를 사용하지 못해 서해안 벨트와 남해안을 중심으로 확산 범위를 크게 키웠다. 긴 장마로 인해 지자체에서 방제 계획을 세웠어도 이를 실행하지 못했고, 장마 이후 32도를 넘나드는 폭염이 지속돼 혹명나방 확산을 부채질 한 것이다. 농진청은 표본 조사를 통해 지역별로 피해를 집계하고 있지만 현장 상황을 지켜보자는 입장이다.

농진청 관계자는 "일부 지역에서 혹명나방이 관찰되고 있고, 나방피해 발생 단지 내에서도 편차가 크다"면서 "기온이 내려가면 나방의 활동이 뜸해지는 특성이 있다. 향후 1~2주 내에 현장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 병해충 위기대응 실무매뉴얼 상 '주의'단계"라고 덧붙였다. 현재 혹명나방 피해는 충남의 경우 1만 8000ha를 넘어섰고, 전남과 경남, 전북에서도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정부의 병해충 위기 대응 매뉴얼이 '주의'단계에 머물러 있어 현장 상황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농진청은 경계 단계(경보)의 경우 "전국적으로 확산할 때 발령된다"고 답했지만 매뉴얼에 따르면 주요 병해충이 국지적으로 피해가 크고 전국적으로 확산될 때로 명시하고 있다. 전국적 확산이란 농작물병해충 방제대책회의 또는 전문가 회의에서 판단, 아직까지 심각하다 판단하고 있지 않는다는 것이다.

혹명나방 피해가 가장 컸던 충남의 쌀 농민들은 아우성이다. 방영진 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 감사는 "볏잎을 흔들어 보면 혹명나방이 솟구치는 현장이 많다"면서 "약을 2~3번 방제해도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아 올해 수확량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우려했다. 이어 "충남뿐만 아니라 경남과 전북까지 확산되고 있어 지금이 심각한 상황이 아니면 언제가 심각한 상황이냐"고 덧붙였다.

나방류에 대한 예찰 시스템을 손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충남의 한 농업기술센터에 따르면 현재 나방류는 지역 농기센터 자체에서 예찰을 통해 농촌진흥청에 전달하는 형태로 농진청은 집계는 하지만 직접적인 예찰을 하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기후변화로 나방류가 문제가 될 소지가 있어 앞으로는 중앙부처에서 직접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공동방제 시스템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정연정 한국쌀전업농 경남연합회장은 "자신의 논 상황은 농민 자신이 잘 알고 있지만 공동 방제를 하다보니 농민이 원하는 시기 방제를 하기 힘들다"면서 "공동 방제단에서 현장상황을 면밀히 살펴 긴밀한 대응을 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드론 방제에 대한 불신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충남의 쌀전업농들은 "드론은 상공에서 살포하기 때문에 잎을 말아서 안에 들어가 있는 애벌레에게까지 살포가 어렵다"면서 "광역방제기를 통해 둥글게 말린 잎까지 약제가 침투할 수 있도록 강력한 방제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충남 서산의 한 혹명나방 피해를 입은 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