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씨’와 ‘님’ 사이
[전문가 칼럼] ‘씨’와 ‘님’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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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3.0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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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도 한국농업기술진흥원 윤리감사실장

김춘수 시인의 시 ‘꽃’ 중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처럼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이름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부모님이나 친구들이 부르는 “00아”, 직장에서 상사나 동료들이 부르는 “00씨, 00님, 00과장”등. 각각 처한 상황에 따라 수없이 많은 이름으로 불린다. 이름은 가정이나 학교, 직장에서 상대방에 대한 예의와 존중을 나타내는 동시에, 상대방과의 관계를 명확히 정의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가정이나 학교와 달리 시대의 흐름에 따라 직장에서 이름을 부르는 방법이 많이 달라졌다. 필자가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했던 1993년 즈음만 해도 직함이 없는 동료끼리는 주로 “00씨”, “00선배”라고 불렀다. 그러나 최근에는 직위나 근무경력에 상관없이 “00님”이라고 부르거나 별명을 부르는 곳이 많다.

직장 내에서 이름을 부르는 방법이 바뀐 것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우리의 사회상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단지 상대방을 부르는 방법만 바뀐 것이 아니라 직장의 문화도 바뀌고 있다. “가족이라 하지 마이소. 가족 같은 회사? 내 가족은 집에 있어요.”라는 가요 가사는 직장을 대하는 현 세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집단보다는 개인, 관계보다는 개인의 자율성을 중시하는 사회상의 변화를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직장 내 세대 간의 평가에서도 차이가 있지만 직장의 분위기를 바라보는 인식에도 차이가 있다. 국민권익위원회에서 발표한 ‘2022년도 행정기관 및 공직유관단체 종합청렴도 평가결과’를 보면 ‘직장 내부의 부패 인식’에 차이가 있다. 근무기간이 길수록, 직급이 높을수록 조직 내부운영의 청렴도 점수가 높았다. 반면에 근무연수가 짧고 직급이 낮을수록 조직 내부운영의 청렴도 점수가 낮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직장 내 세대 간 갈등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을 세대 간의 갈등으로 볼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더 공정하고 투명한 조직으로 성장하기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다. 경력이 오래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부패에 대한 감수성이 낮은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경력이 짧은 사람이 부패하다고 인식한 부분은 원인을 찾아 처방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게 서로의 인식 차이를 좁혀 나가면 보다 공정하고 투명한 조직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권익위원회에서 발표한 ‘2023년도 부패인식도 조사결과’에 따르면 일반국민과 기업인 38.3%가 “공직사회가 부패하다.”고 응답한 반면, 공무원은 2.4%가 그렇다고 응답하였다. “00씨”로 불리는 ‘가족 같은 회사’에서 불의와 부정에 눈감아 왔다면 돌아보자. ‘우물 안 개구리’로 살 것인가 아니면 국민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노력할 것인가? “00님”으로 불리며 공정하고 투명한 세상을 만드는데 일조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