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생수보다 싼 비룟값…업계는 괴멸 ‘초읽기’
[데스크칼럼] 생수보다 싼 비룟값…업계는 괴멸 ‘초읽기’
  • 박현욱 farmwook@newsfarm.co.kr
  • 승인 2024.03.27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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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욱 편집부국장

초상집이다. 최근 비료업계 분위기를 일컫는 말이다. 최근 일이라고 하나 어둠의 터널은 길고 폭은 넓다. 비룟값이 약 20% 이상 하향 곡선을 그린 2016년 이후로 ‘잃어버린 10년’에 근접하고 있다. 그나마 2022년 원자잿값 상승으로 가격 상승의 기회를 살리면서 반짝 회복의 시간을 벌었을 뿐 비료산업의 미래는 ‘암흑’ 그 자체라고 업계는 자평한다.

비료업계는 상실감을 넘어 무력감에 휩싸여 있다. 마치 미운 오리 새끼처럼 미운털투성이다. 조금이라도 가격 상승의 기미가 보이면 정부와 심지어 언론까지 참전해 너나 할 것 없이 공공의 적으로 전락한다. 일말의 숨통조차 틔워주지 않는 싸늘한 분위기로 업계가 질식 일보 직전이라는 게 복수 관계자의 하소연이다.

당연히 값싸고 질 좋은 비료는 농촌과 농민에 든든한 지원군이 된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극악의 마진으로 근근히 먹고 살고 있다면 산업으로의 재투자와 발전을 반복하는 선순환 구조는 꿈도 꾸지 못한다. 이는 국내 곳곳의 비료공장 외관이 증명해준다. 노후화로 부식되고 있는 공장은 기본. 비용을 아끼기 위해 페인트칠조차 버거워하는 비료공장이 있다는 사실은 두 눈을 의심케 한다. 그것도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기업조차 이 지경이라면 말 다했다.

올해도 비료업계는 약 600억원의 적자를 예측하고 있다. 지난해와 비슷한 수치다. 수십 년간 이어진 적자 행렬에서 아직까지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업체가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삼아야 할까. 불행인지 다행인지 국내 비료 기업들은 사업 다각화로 그나마 입에 풀칠 중이다.

수년 동안 궤멸 직전의 비료산업을 지탱해 온 비결은 대부분의 기업들이 다른 사업을 겸업하고 있어서다. 국내 비료 기업은 작물보호제를 겸업하거나 호텔 등 타 분야 사업까지 영위하면서 비료업으로 쌓은 적자 리스크를 헷지(Hedge) 중이다. 당장 내일이라도 간판을 내리는 업체가 나오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다.

경제에서 전후방산업은 해당 산업의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산업이 어려울 때 리스크를 분산해주고, 고통을 감내하게 만들어 주는 일종의 완충(버퍼) 역할까지 소화한다. 비료산업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후방산업으로 국내 농업이 발전하는 데 일등공신으로 불리어 왔지만, 이제는 옛날얘기가 됐다.

앞으로도 비료산업은 악재의 연속이다. 업계에서는 2030년을 매출절벽으로 보고 있다. 지금은 비료 원자재를 중국에서 수입해 국내에서 완제품으로 만들고 있는 구조지만 복합비료 관세가 2029년이면 ‘제로’에 수렴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완제품 비료를 수출해 국내에서 출혈 경쟁을 벌인다면 지금의 얄팍한 펀더멘털을 가지고 있는 국내 비료업체 중 살아날 수 있는 기업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심심찮게 ‘비료주권’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그렇다고 비료 가격을 올려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최소한 농업의 후방 기업들이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건전 생태계만큼은 만들어줘야 한다는 뜻이다. 비료업계는 실제 비룟값이 생수보다 싸다는 이야기를 한다. 현재 비료 가격은 1kg(≒L)에 약 780원이다. 편의점에 파는 생수의 가격이 700ml 기준 같은 가격대임을 감안하면 물보다 싼 셈이다.

거위의 배를 가르는 우를 범하지 말자.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