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규제 완화 시대에 ‘섬’이 있다
[데스크칼럼] 규제 완화 시대에 ‘섬’이 있다
  •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
  • 승인 2019.12.12 09: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업신문=유은영 부국장) 규제 대신 자율이 강조되는 시대에 거꾸로 가는 산업이 있다. 국민 주식을 책임지는 쌀 산업 얘기다. 그 중에서도 산지 쌀 유통의 핵심 역할을 하는 미곡종합처리장(RPC)이 각종 규제에 얻어맞는 ‘동네북’이 되고 있다.

가장 최근의 규제는 오는 21일 첫 시험을 치르는 ‘양곡관리사’다. 정부의 쌀 품질 고급화 명분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미명 하에 RPC들은 내년부터 양곡관리사를 의무적으로 채용해야 한다.

RPC들에게 당장 다가오는 것은 현실적인 문제다. 인건비가 들어가는 경영문제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RPC는 정부 대신 수확기에 농가로부터 벼를 사들이는 대신에 벼 매입자금을 저리로 융자받고 있다. 공공기관의 성격을 띠는 농협은 그렇다 치지만 엄연히 개인 사업자인 민간RPC에겐 규제가 달가울리 없다. 정책자금을 받는다는 이유로 정부로부터 각종 규제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파다하다.

앞서 2018년 경영평가에선 해당 RPC가 속해 있는 지자체의 타작물 재배 실적까지 RPC에 점수를 매겼다. 농가에 웃돈을 줘야 하는 계약재배 점수 비중을 확대한 것은 차치하고 RPC의 원료권이 줄어드는 타작물 재배까지 RPC에게 책임을 지운 것이다.

더욱이 경영평가 항목은 47가지가 넘고 오.탈자 하나에 감점을 주는데다 마감시간 1분이라도 넘기면 접수를 거부하는 등 작금의 행태는 규제를 넘어 ‘갑질’이라는 지적도 가능하다.

더 황당한 것은 이런 규제들이 예고 없이 시행돼 왔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간 ‘무방비 상태’로 당해오던 RPC들은 이번만큼은 준비에 만전을 기하는 모습이다. 저온창고가 알아서 하는 쌀 품질관리를 사람을 써 맡기느니 차라리 내가 자격증을 따 인건비 부담은 물론 각종 패널티에 대비하겠다는 것이다.

벼를 매입해 쌀로 도정해 파는 걸 주요 업으로 삼는 RPC들은 쌀을 사주는 거래처로부터 실사를 받을 뿐 아니라 거래관계를 유지해 나가기 위한 자체적인 품질 관리체계가 확립돼 있다. 이 때문에 양곡관리사를 따로 둘 필요가 없다는 ‘무용론’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정부 방침대로 양곡관리사 시험은 오는 21일 시행된다. 전문자격인을 두지 않으면 각종 계약에서 자격미달로 밀릴 수 있다.

평균 연령 65세. RPC 업주들의 향학열이 양곡관리사 시험이 코 앞으로 다가오면서 점점 뜨거워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