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물벼 도정 RPC 참여’ 새해엔 이뤄질까
‘산물벼 도정 RPC 참여’ 새해엔 이뤄질까
  •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
  • 승인 2020.01.09 12: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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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2020 RPC, 과제와 전망
벼 매입자금 대출기간 단축으로 가슴 쓸어내린 방앗간들
올해도 ‘10개월 단축’ 나올까봐 ‘전전긍긍’ 정부 눈치만
벼 시장 쌀 시장 따로 놀아 적자누적, 대부분이 경영난
50억 아끼고 RPC 경영난도 해소하는 ‘산물벼 도정’ 언제나

30억 들여 시설현대화 투자했어도

고품질쌀이라고 제값 받고 못 팔아

시설은 낡아가고 자금 회수 길 없어

벼값보다 쌀값 낮아 매년 ‘적자인생’

 

(한국농업신문=유은영 기자) 산지 쌀 유통의 중심체인 RPC들은 수확기(10~12월) 농가로부터 벼를 적극 매입해 쌀값을 지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정부는 민간RPC와 농협RPC에 해마다 1조2300억원의 벼 매입자금을 배정해 RPC가 저리로 융자를 받아 농가벼를 사들일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을 해 주고 있다. 대신 RPC들은 매해 까다로운 경영평가를 받고 쌀 산업 발전이란 명목의 각종 정부 정책을 이행해야 한다.

최근 몇 년 동안에는 정책적 효과보다 오직 규제에 목적을 둔 듯한 정책들이 생겨나 업계를 고민스럽게 했다. 그중에는 시장의 기능을 외면한 것들도 있다. 이 모든 것들의 원인은 ‘쌀값’이다.

공급과잉과 소비량 감소라는 난제를 극복하고 쌀값을 지지해 쌀산업을 유지·발전시키기 위해선 생산자인 농민과 유통주체인 RPC의 상생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시장의 선순환을 위해 어떤 고민이 필요할지 RPC의 어제오늘을 짚어보며 가늠해본다.

충남 예산의 통합농협RPC가 지난해 10월 농가로부터 수매한 벼 포대를 들여오고 있다.
충남 예산의 통합농협RPC가 지난해 10월 농가로부터 수매한 벼 포대를 들여오고 있다.

 

 

민간RPC 대부분이 멈추면 죽는 '이륜구동'

“사륜구동차에 짐 쌓아놓으면 짐을 빼도 쓰러지지 않는데 이륜구동에 짐 실은 사람은 멈추면 바로 무너져.”

“우리는 바람만 불면 넘어져. 하루라도 빨리 문 닫는 게 버는 길이지.”

지난해 2월 한국RPC협회 임시총회에서 나온 말이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RPC업체 대표들은 사업의 어려움을 이렇게 토로했다. 은행에서 빌린 정책자금으로 농가 벼를 사다 도정해 파는데, 적자가 쌓여 겨우 사업을 영위하는 민간RPC들이 적지 않은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최근 5년만 보더라도 전년 수확기부터 계속 쌀값이 오른 2018년을 제외하고 항상 벼를 산 값보다 낮은 값에 팔아 적자를 감수해 왔다. 누적적자가 2000억원이 넘는 농협RPC도 사정이 다르지 않지만 RPC가 하나의 사업부서인 농협과 개인이 책임을 지는 민간RPC 간 사업 환경의 체감도는 간극이 크다.

이날 임시총회는 RPC 벼 매입자금 대출 기간을 기존 1년에서 10개월로 앞당기겠다는 정부 방침에 따라 긴급히 소집됐다. 올해 빌린 돈으로 작년에 빌린 돈을 갚는 RPC에게 대출기간 단축은 사형선고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을 한번에 갚아야 한다는 얘기로 규모가 커서 융통하기도 쉽지 않다.

업체들의 형편을 고려한 정부가 보완책을 세워 고비는 넘겼지만 새 규정은 철회되지 않은 상태로 물밑의 긴장감은 새해에도 지속되고 있다.

한 민간RPC업체 관계자는 “벼 매입자금 대출기간 단축이 위압감만 줄 뿐 쌀 산업에 주는 정책적 효과는 없다”며 “사업하는 입장에선 여러 리스크를 감수하는데 마음만이라도 편하도록 1년으로 환원해 운용해 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최근 2~3년 동안 RPC 업계에 불어닥친 파고는 높았다. 해마다 치르는 경영평가 지표가 5가지에서 47가지로 크게 늘어 전담직원을 두어 1년 내내 준비해야 하는 부담이 따랐다. 작년부터는 ‘쌀 산업 기여도 평가’로 이름이 바뀌어 애초의 경영평가에다 계약재배 실적, RPC가 위치한 지자체의 논타작물재배 실적 등에도 점수를 매기고 있다.

전남의 RPC 관계자는 “150개였던 민간RPC가 67개로 3등분이 난 것은 그간 시장의 수요공급이 안 맞았다는 이야기다. 벼 시장, 쌀 시장 따로 놀았다”며 “간단하게 벼 많이 산 사람 많이 대출해주고 적게 산 사람 적게 대출해주면 되지 않나. 평가항목이 점점 늘어나니 자료 준비하느라 몇 달은 일을 못한다”고 토로했다.

 

50억 예산절감에도 '산물벼 도정' 못해

올해도 RPC는 숙원사업인 ‘산물벼의 정부양곡 도정 참여’ 허용을 정부에 지속적으로 건의할 방침이다. 매해 수확기에 RPC는 공공비축미 가운데 산물벼를 농가로부터 사들이고 있다. 이를 말려 창고에 보관하는데, 이듬해 5월 즈음 정부양곡 창고로 옮겼다가 정부양곡 도정공장으로 옮겨 빻아 군 급식이나 사회복지용으로 공급한다. 창고며 도정공장으로 옮기지 않고 가공시설이 다 갖춰진 RPC에서 가공해 수요처로 바로 보내면 물류비를 50억원이나 절감할 수 있다는 RPC 자체 연구결과도 있다. 하지만 정부양곡 도정공장과 이해관계가 얽히는 일이라 예산절감 효과에도 수용되지는 못하고 있다.

RPC는 도정료 수익으로 경영개선 효과가 클 뿐 아니라 정부미 전부가 아닌 산물벼만 도정하는 것이라 정부양곡 도정공장의 경영침해 정도가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무엇보다 예산절감 차원에서 반드시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 관계자는 “전체 정부양곡 도정을 RPC와 임도정업체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공개입찰로 부치면 200억원의 도정료 예산이 절감된다”며 “그러나 모두 쌀 산업 울타리 안에서 생존하도록 산물벼 도정만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정시설 '농업용 전기료' 적용해야

해묵은 과제 중에는 ‘도정시설의 농사용 전기료 적용’도 있다. 벼 건조·저장시설에는 농업용 전기료를 적용하지만 도정은 가공으로 보아 산업용 전기료를 적용한다. 한전과 정부는 2018년부터 도정용 전기료를 한시적으로 50% 감면해주고 있지만 농업법인에만 혜택이 한정돼 이를 개인RPC와 일반법인RPC까지도 포함시켜 농업용 전기료로 전환해 달라는 것이다.

농림수산업자 신용보증기금도 개선 사항이다. 농신보 한도는 현재 법인은 50억, 개인은 30억이다. 한도를 기존보다 20억 올린 것이지만 신용평가 방법은 예전 그대로여서 50억원까지 활용하는 사람은 없다. 주로 23억원까지 인정받는다고 한다.

 

농가 출하방식 변화...원물 확보 기간도  수확기서 1년간으로 확대

지난 연말 RPC 업체들은 숙원사업이 이뤄질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 담보력이 약한 민간RPC는 비RPC농협과 거래계약을 체결하고 대신 농가벼를 사게 하는 ‘원물확보대행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농협은 나중에 민간이 사가니 판로 부담이 없고 당장 대출이 힘든 민간은 농협이 대신 벼를 확보해 주니 서로 윈윈하는 정책이다. 그러나 민간이 되사갈 때 쌀값이 떨어지면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따라서 원물 확보 기간을 현행 수확기에서 연간 구매로 늘려 달라고 지속적으로 요청해 왔다.

최근에는 농가들도 수확기 집중 출하에서 연중으로 분산해 출하하는 경향을 보인다. 정부도 이런 현실을 반영해 검토할 계획이었지만 3개 RPC 단체의 의견통합이 늦어 타이밍을 놓친 것이다.

 

‘돈 많이 번다’ 오해 때문에 규제만 생겨

무엇보다 농가와 RPC의 상생은 해결해야 할 급선무다. 가장 가까워야 할 사이인데도 인식의 차이 때문에 서로가 평행선에 놓여 있다.

농가로부터 벼를 사 쌀로 찧어 파는 RPC의 특성상 벼를 헐값에 사 이윤을 많이 남기고 시설현대화 등 정부 지원은 다 챙긴다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다. 눈에 보이는 매출액이 커 이윤도 크게 보이는 착시효과도 한 몫 한다. 하지만 쌀을 팔아 남기는 이윤은 마진율이 30~40%인 다른 산업에 비해 매우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RPC에 따르면 10%가 채 되지 않는다.

정부의 시설 현대화 지원금도 수억에서 수십억원에 달하는 자체 자금이 있어야 받을 수 있다. RPC 가공시설 현대화 사업은 60%는 국고지원을 받고 40%를 업주가 부담하는데, 보통 70억원 정도로 설계된다. 이때 업주는 30억원을 갖고 있어야 한다.

벼를 저장하는 사이로나 저온창고 신.증축 자금도 절반은 업주가 대야 한다. 최소한 7억원 이상으로 설계해야 지원받을 수 있다.

정부가 고품질쌀 유통체계 확립을 위해 마련한 시설 지원책은 RPC의 수익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쌀을 사 가는 거래처들이 고품질쌀이라고 가격을 높게 쳐 주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기계 설비 등 시설은 부동산과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하락하므로 업주는 시설 현대화에 들인 ‘내 돈’ 수십억원을 회수할 길이 없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수확기 쌀값뿐 아니라 다음 연도 가격에도 정부가 대책을 세워 쌀값 안정에 나서야 한다”며 “임도정 업체보다 규제는 많고 수확기 벼 집중 매입으로 적자가 누적되니 사업 정리를 준비하는 RPC가 생기고 있다. 무조건적인 규제보다 RPC도 이윤을 남길 수 있도록 쌀값 안정 등 시장기반 형성도 동시에 고려해야 쌀 산업 생태계가 선순환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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