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PC 산물벼 도정 왜 안 되나…70년 특혜시비 없애야
RPC 산물벼 도정 왜 안 되나…70년 특혜시비 없애야
  •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
  • 승인 2020.05.19 16: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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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앗간에 있는 벼 도정한다고 다른 방앗간으로 옮겨
이송·운반에 막대한 물류비…농식품부 구태 행정 빈축

일제강점기 쌀 수탈 통로 '영단 방앗간'

해방 이후 정부양곡 도정공장으로 이름만 바껴

내리 70년 동안 정부와 독점적 가공 수의계약 체결

공공기관 민간기업 너나 할 것 없이 공개입찰 시대인데

 

“정부양곡 도정공장 존립기반 붕괴 우려” 답변에 업계 분노

RPC 업주들 건의서 제출만 11년째, 꿈쩍 않는 정부

RPC서 산물벼 도정하면 50억, 공개입찰 전환하면 200억

정부예산 절감효과 엄청난데 일제강점기 방식 고수

농식품부.정부양곡 도정공장 유착 의혹 제기도

 

(한국농업신문=유은영 기자) 방앗간 사이에서 특혜시비가 10년 넘게 이어져 오고 있지만 해결의 열쇠를 쥔 정부가 꿈쩍 하지 않아 당국이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19일 산지 쌀 유통업계에 따르면 농협 및 민간 미곡종합처리장(RPC)은 최근 농림축산식품부에 ‘공공비축 산물벼 RPC 도정 허용’을 요청하는 건의문을 제출했다.

해마다 전국 RPC를 통해 건조하지 않은 산물벼 형태로 수매하는 일정 물량의 공공비축미는 RPC에 보관했다가 정부양곡 도정공장으로 옮겨 도정한 다음 군.관 급식용 등으로 공급한다. RPC에 있는 산물벼를 정부양곡 창고로 옮기고 이를 다시 정부양곡 도정공장으로 옮겨 수요처에 공급하기까지 상당한 물류비와 시간이 든다. 산물벼를 보관하고 있는 RPC에서 수요가 있을 때마다 직접 찧게 하면 이송에 드는 물류비와 시간을 대폭 절감할 수 있다. 이렇게 했을 때 아낄 수 있는 정부 예산이 한 해 50억원에 이른다는 한국RPC협회 연구결과도 나온 바 있다.

벌써 11년째 RPC업계가 산물벼 도정 허용을 촉구하고 있지만 정부의 대답은 한결같아 이제는 건의문 제출이 ‘연중행사’처럼 여겨질 정도다.

경기도의 한 RPC 공장에서 지게차로 톤백벼를 나르고 있다.
경기도의 한 RPC 공장에서 지게차로 톤백벼를 나르고 있다.

 

11년째 건의문 제출…귀 막은 정부

정부양곡 도정공장은 말 그대로 정부가 농가로부터 매입한 공공비축미를 도정하는 곳이다. 산물벼 매입은 RPC가 했지만 정부미(米)이기 때문에 정부양곡 도정공장에서 도정해야 한다는 게 농식품부의 답변이다.

이런 원론적인 답변에 업계가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예산 50억원을 아낄 수 있는데도 예전 방식을 고수하는 것은 현장을 무시한 ‘탁상행정’ 이라는 지적이다. 아울러 산지 쌀 유통업계의 발전을 지원하고 이끌어야 할 정부 주무부서가 현장의 변화에 맞게 제도 개선에 나서기는커녕 개인의 안위만을 생각해 몸을 사린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특히 산지 쌀 유통의 구심체로서 쌀 산업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시설투자를 아끼지 않는 RPC는 정부양곡 도정공장보다 도정능력이 월등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특혜시비가 불거지는 것이다.

농식품부는 3~5년 주기로 정부양곡 도정공장과 독점적 수의계약을 체결해 왔다. 일제강점기 일본은 우리나라 쌀을 수탈해가기 위해 항만의 정미소를 ‘영단 방앗간’으로 지정했는데, 이 방앗간이 해방 이후 정부양곡 도정공장으로 이름만 바꿔 지금까지 70여년 동안 변함없는 특혜를 누리고 있다는 게 업계 지적이다.

한 RPC 관계자는 “정부양곡 도정공장은 방앗간 중에 시설이 가장 낙후되고 노후화돼 있다”며 “이보다 시설이 훨씬 크고 좋은 현대화된 미곡종합처리장이 전국에 많은데도 농식품부에선 아직도 구시대적 악습을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농식품부가 이들 정부양곡 도정공장과 맺는 연간 도급계약규모는 약 700억원 상당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공공비축미를 도정하면서 나오는 왕겨 등 부산물로 챙기는 수익도 상당하다는 점도 특혜시비에 불을 붙이고 있다. RPC 업계가 더욱 반발하는 이유는 정부가 2014~2016년 쌓아둔 구곡을 사료용, 가공용으로 내리 방출하면서 정부양곡 도정공장이 호황을 누리기 때문이다. 이 구곡이 산지 도매업체 등에서 저가미로 둔갑해 유통되는 바람에 작년과 올해 RPC 신곡 판매가 더딘 것이라는 소문이 업계에 공공연히 회자되고 있다. 수확기 쌀값 지지를 위해 최대한 높은 가격에 벼를 매입했지만 시장경쟁으로 쌀값에서 본전을 찾지 못하는 RPC로선 정부양곡 도정공장이 특혜를 누린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앉아서 각종 특혜를 누리는 정부양곡 도정공장이 시설개선 필요성을 느낄 이유가 없다”며 “때문에 정부미는 품질이 안 좋다는 인식이 바뀌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200억, 50억 예산절감에는 무관심

시설이 낡고 노후되어 정부양곡 품위저하 가공은 물론 위생 환경 불량으로 정부양곡에서 쥐사체, 쥐똥 등 이물질이 자주 발견돼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주장이다.

농식품부는 정부양곡 도정을 정부양곡 도정공장에만 맡기는 이유에 대해 ▲정부양곡의 적기 공급과 ▲조작비 절감 등을 위해서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양곡이 필요한 해당 지자체에 있는 RPC에 도정을 맡기면 이송 시간이 대폭 단축돼 적기공급에서 나아가 빠른 공급이 이뤄진다. RPC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현재 쌀 가공능력은 쌀 생산량 대비 7~8배에 달한다. 이는 어느 업체에서 가공하든 적기공급에는 하등의 문제가 없다는 의미다. 조작비 또한 정부양곡 도정을 공개경쟁입찰로 개방했을 때 현 가공임의 50~60%선에서 얼마든지 양질의 정부미로 가공할 수 있다.

정부는 정부양곡 도정공장의 존립기반이 붕괴된다는 이유를 들어 정부미 공개경쟁입찰 전환을 거부했다. 공개입찰 전환시 정부예산 절감액은 200억원가량. 막대한 예산절감액에 견줘 농식품부의 답변은 궁색하게 들린다.

공정거래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가운데 공공기관뿐 아니라 사기업에서도 수의계약이 사라진지 오래다. 농식품부가 정부양곡 도정공장과 체결하는 독점적 가공도급 수의계약은 해방 이후 70년 동안 지속돼 왔다. 농산물 시장개방에 맞서 국내 쌀산업 경쟁력을 향상시킨다며 RPC를 도입한 지는 27년이 됐다. 현장의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는 제도는 갖가지 추측을 불러일으킨다. 농식품부와 정부양곡 도정공장의 유착 의혹까지 빚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 관계자는 “정부예산 50억을 아낄 수 있는 산물벼 RPC 도정을 허용한다면 이런 의혹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지지 않겠느냐”며 “방앗간에 보관된 벼를 도정한다고 다른 방앗간으로 돈을 들여 옮기는 행태는 누구라도 납득하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현 정부의 모토인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 구현을 위해서라도 적폐청산이 우선돼야 한다"며 "공정한 과정을 위해서라도 민.관의 밀착, 밀월관계는 하루빨리 청산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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