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매 따로 도정 따로...방앗간은 '도정료' 대첩
수매 따로 도정 따로...방앗간은 '도정료' 대첩
  •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
  • 승인 2019.10.08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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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매.건조 방앗간은 RPC, 도정은 '정부양곡 도정공장'
RPC가 수매한 공공비축 산물벼는 RPC 도정 허용을
정부양곡 도정공장으로 운반비 줄어 50억 예산 절감도

(한국농업신문=유은영 기자) 미곡종합처리장(RPC) 업계가 10년째 ‘공공비축 산물벼 도정 허용’을 주장하고 있지만 정부는 미동도 하지 않고 있다. 정부 예산 절감 등 많은 장점이 있는데도 그러는 건, 기존에 도정을 하고 있는 다른 방앗간들을 의식한 때문으로 보인다. 이들 방앗간은 정부양곡 도정공장이다, RPC는 신곡 수확기에 정부를 대신해 농가로부터 공공비축 산물벼를 사들이는 방앗간이다.

7일 업계에 따르면 2019년산 공공비축미 35만톤 중에도 10만톤의 산물벼가 포함됐다. 이를 농협RPC와 민간RPC가 일정량씩 나눠 농가로부터 물벼 상태로 수매한다. 이는 ‘정부양곡’이기 때문에 잘 말려 보관하다가 이듬해 5~6월경 정부에 돌려줘야 한다.

산물벼를 정부에 돌려줘야 할 때 RPC들은 이것저것 비용 부담이 적지 않다고 호소한다.

우선 벼가 마르면서 날아가는 수분량이 상당하고 싸이로에 넣어 휘저어 섞을 때 벼끼리 닿아 깎이는 양도 만만찮다. 특히 물벼 상태에선 걸러지지 않아 벼 중량에 포함됐던 흙먼지, 볏짚 등 이물질이 벼가 말랐을 때 정선기에서 걸러져 또 그만큼 중량이 줄어든다.

RPC들은 빠진 중량을 자체 벼로 채워넣어 정부에 돌려준다. 이 양이 산물벼 1000톤당 16톤에 이르는 걸로 한국RPC협회 조사결과 나온 바 있다.

산물벼를 수매한 RPC는 정부로부터 어느 정도 보전을 받기는 하지만 나가는 부대비용이 더 크다. 보관료를 톤당 134원씩 받지만 경비를 세우느라 톤당 110원이 들어 셈법으로는 24원 정도가 남는다. 하지만 산물벼 수매시 농가벼 품위 검사 전문가 초빙 비용과 정부에 돌려줄 때 합격 기준에 맞추느라 들이는 무형의 노력 및 인력 등을 감안하면 사실상 남는 게 없고 손해를 보는 구조다. 수십억원에 이르는 연대보증을 서는데 들어가는 보증료는 별개로 해도 그렇다. 바로 이런 구조에서 ‘특혜 시비’가 불거진다.

한 RPC공장 정선기에 산물벼에 붙어있던 볏짚대며 흙먼지 등 이물질들이 걸러져 쌓여 있다.
한 RPC공장 정선기에 산물벼에 붙어있던 볏짚대며 흙먼지 등 이물질들이 걸러져 쌓여 있다.

 

◆지키고 말리느라 땀 ‘뻘뻘’, 도정공장은 앉아서 도정만

이렇게 정부가 정한 수분규격(13~15%)에 맞춰 RPC가 말린 벼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검사해 품위 합격점을 받으면 정부양곡 창고로 이송해 보관한다. 그러다 군·관 급식용, 기초생활수급자용, 주정용, 사료용 등 필요할 때마다 쌀로 도정하는데, 이를 도정하는 방앗간은 ‘정부양곡 도정공장’이다. 해당 지자체가 정부창고에서 벼를 운반해 도정공장에 실어다 주고 도정이 끝나면 트럭에 실어 소비지 창고로 이송해 실수요자들에게 공급한다.

RPC들이 ‘특혜’라며 반발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같은 방앗간인데도 정부양곡이라는 이유로 본인들이 수매한 벼를 가공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지적이다. 수매와 건조, 보관에 갖은 수고를 들여 정부양곡 도정공장에 넘겨줘야 하는 것에 상대적 박탈감이 큰 것으로 풀이된다.

무엇보다도 경영악화라는 현실적인 이유가 크다. 거의 매해 비쌀 때 벼를 사 쌀로 싸게 팔아 손해를 봐온 RPC들은 산물벼 관련 비용도 적잖이 들어가 경영악화에 애를 먹고 있다.

이를 만회하는 방편으로 정부에 요구해 온 게 ‘RPC의 산물벼 도정 허용’이다. 정부양곡을 공개입찰에 부쳐 RPC와 임도정공장에도 참여기회를 달라는 것이 RPC의 오랜 숙원이지만 당장 그게 어려우면 RPC가 수매한 산물벼만이라도 자체 도정하게끔 해 달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쌀 산업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RPC의 경영개선은 물론, 소비자들은 시설 좋은 RPC에서 가공된 양질의 쌀을 먹어 나랏미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는 효과도 있다.

특히 정부양곡이 실수요자에게 도달하는 과정이 기존 8단계에서 3단계로 대폭 줄어 현행 168억원이 드는 정부예산을 약 50억원 아낄 수 있다는 업계의 연구용역 결과도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이같은 다양한 장점에도 애초에 정부양곡 도정공장의 지정목적이 정부양곡 도정에 있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되풀이하고 있다.

한 RPC업체 관계자는 “RPC는 수확기 농가 벼 매입으로 농가소득 증대에 기여하고 산지 쌀 산업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데 정작 정부 정책에선 소외돼 있다”며 “불합리한 구조를 개선하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