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 70년간 특정 방앗간만 혜택"...정부양곡 도정, ‘공개입찰’로 특혜 시비 끝내야
"해방 이후 70년간 특정 방앗간만 혜택"...정부양곡 도정, ‘공개입찰’로 특혜 시비 끝내야
  •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
  • 승인 2019.10.02 0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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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어떤 세상인데...농식품부 '독점 가공 수의계약' 체결
"RPC 등에 문호 개방시 연 200억 정부예산 절감" 주장도

일제강점기 쌀 수탈 위해 지정 '영단 방앗간'

해방 이후 '정부양곡 도정공장'으로 이름 바껴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대를 이어 '나랏미' 도정

시설 낙후, 쌀 산업발전 기여 않는데 '독점적 수혜'

매해 경영평가 받는 RPC(미곡종합처리장)들 불공정 문제 제기

'공개 입찰' 시뮬레이션 했더니 가공료 줄어 200억 예산 절감

 

(한국농업신문=유은영 기자) 공정 거래의 중요성이 갈수록 강조되는 가운데 ‘방앗간’ 업계에선 10년 동안 특혜성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전국 농촌지역 곳곳에 방앗간이 있지만 오로지 특정 방앗간에만 정부양곡 도정을 맡겨 가공료를 벌게 해 특혜 논란이 이는 것이다. 더구나 이들 방앗간은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 할아버지와 아버지, 또 그 아들인 손자가 대를 이어 운영하면서 줄곧 정부와 ‘수의계약’ 형태로 안정적인 수익기반을 다져와 방앗간 업계의 ‘적폐’로까지 거론되고 있다.

한 민간RPC 공장에서 지게차로 톤백벼를 나르고 있다.
한 민간RPC 공장에서 지게차로 톤백벼를 나르고 있다.

1일 업계에 따르면 특혜 논란의 당사자인 방앗간의 이름은 정부양곡 도정공장으로 일제가 우리나라 쌀을 수탈해가기 위한 수단으로 설립, 지정한 ‘영단 방앗간’이 그 전신(前身)이다.

일제 강점기 정부양곡을 도정하고 보관하던 영단(營團) 방앗간은 해방 이후 70여년 동안 이름만 바뀐 채 여전히 정부양곡 도정을 맡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들과 주기적으로 독점적 가공도급계약을 체결해 정부양곡 도정을 맡긴다. 정부가 수매한 공공비축미를 군.관 급식용 등 필요할 때마다 가공료를 받고 도정해 주는 것이 이 업체들의 일이다.

이들 업체들을 대상으로 특혜성 지적을 하는 쪽은 미곡종합처리장(RPC)이라고 불리는 방앗간들이다. 벼 도정시설을 똑같이 갖추었는데도 특정 업체에만 독점적 혜택을 주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반발하고 있다.

특히 시설면에서 RPC가 오히려 훨씬 현대화됐다는 것이 이런 불공정 논란을 한층 부추긴다. 매해 경영평가를 받아 결과에 따라 등급이 조정되고 퇴출되기도 하는 RPC들은 시설투자를 게을리 할 수 없다. 반면 도정공장은 3년에 한 번씩 별다른 이상이 없는 한 재계약을 체결한다. 이때 시설 등을 보기도 하는데 항목이 48가지나 되는 RPC 경영평가에 비해 훨씬 느슨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낡고 노후된 정부양곡 도정공장에서 가공된 쌀의 품질 문제가 공공연히 이슈가 됐었다. 가공된 쌀에서 벌레나 이물질이 종종 나오고 밥맛도 좋지 않아 ‘나랏미’(정부미)에 대한 소비자들 인식이 나빠지는 원인을 제공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들 업체들은 사료용, 가공식품용, 관수급용 등 매해 평균 50만톤을 가공해 연간 수입이 업체당 적게는 2억에서 20억원에 이르는 걸로 추정된다. 작년엔 사료용(70만톤)까지 합해 100만톤 이상을 가공했다.

RPC 관계자는 “정부가 (도정공장에) 벼를 갖다주고 도정하면 갖고간다”며 “고난도 기술이나 노하우가 필요한 일도 아닌데 100년 가까이 특정 집단에만 맡기고 있다. 정부양곡 도정도 RPC와 임도정공장이 참여할 수 있도록 공개입찰에 부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엇이 불공정한가.

방앗간들 사이의 특혜 시비는 과연 ‘특별 대우’를 받을만한 일을 하고 있느냐는 원초적 질문에서 출발한다.

일단 RPC들은 그럴만한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정부양곡 도정공장의 비위생적이고 질 낮은 도정으로 ▲나랏미는 ‘나쁜 쌀’이라는 소비자 인식을 심어줬으며, RPC처럼 수확기 농가 벼를 매입해 ▲농가소득 안정과 국가 쌀산업 발전에 기여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수확기 벼 매입 기능’에 대해선 RPC들은 할 말이 많다고 한다. 정부 정책에 따라 수확기 농가 벼를 많이 사 놨다가 계속 쌀값이 떨어지면 적자를 고스란히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엔 작년 한 해를 제외하고 5~6년 동안 계속된 쌀값 하락으로 산 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쌀을 팔아 손실이 극에 달했다.

이 때문에 정부양곡 도정에 대한 요구가 여느 때보다 빗발치는 것으로 보인다.

RPC 업계는 이렇게 했을 때 정부양곡 가공에 드는 정부예산도 대폭 절감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개경쟁 입찰 방식으로 시뮬레이션한 결과 가공료가 현 가공료의 50~60%선으로 낮아져 약 200억원 이상 정부예산을 아낄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시설 좋은 RPC에서 가공해 나랏미 품질이 향상되는 효과도 있다고 했다.

업체 관계자는 “실어다주고 실어가는 벼 도정은 누구나 한다. 벼를 나르는 과정에서 입을 수 있는 위험부담도 없다. 이런 단순한 일을 특정 방앗간에만 맡기는 것은 불공정하다”며 “쌀값이 오르든 떨어지든 풍년 들든 작황이 안 좋든 관계없이 정부 수혜를 받는 업체들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당초 정부양곡 도정공장의 설립 목표와 다른 쌀도 취급하는 RPC 특성상 쌀이 혼입될 것을 우려해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정부의 시각도 현장과는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RPC 관계자는 “RPC는 쌀 종류에 따라 각 탱크별, 사일로별로 구분해 관리하기 때문에 정부양곡과 일반 쌀이 섞일 일이 없다”며 “시설이 훨씬 좋은 RPC와 일반 임도정공장에 정부양곡 가공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