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기후변화, 식량위기 그리고 농업 ②] 기후변화로 재배 적지·생산량 변화…식량위기 우려 높아
[기획-기후변화, 식량위기 그리고 농업 ②] 기후변화로 재배 적지·생산량 변화…식량위기 우려 높아
  • 이은혜 기자 grace-227@newsfarm.co.kr
  • 승인 2020.09.18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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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 패턴 바뀌며 농업용수 공급 차질

(한국농업신문= 이은혜 기자)누적 강수량은 716㎜에 달한 유례없는 54일간의 긴 장마, 집중호우, 폭염, 연속 태풍까지… 이 모든 게 다 올해 일어난 일이다. 추수를 앞둔 가을 들녘엔 농민들의 한숨 소리만 들린다. 충남의 한 농민은 “살다살다 올해 같은 경우는 처음”이라며 “앞으로는 이상기후가 심해져 농사짓기 더욱 어려워질 것 같아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 19일 ‘현실로 다가오는 기후변화, 앞으로 농업분야는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가?’를 주제로 열린 기후변화 대응 국회 토론회에서 정학균 한국농촌경제연구원 환경자원연구부 연구위원은 기후변화는 기후의존적인 농업부문에 상당한 파급 영향을 미친다면서 직접적인 영향으로 ▲식량생산변화 ▲농업환경 변화(병충해 및 이상기상 증가) ▲작물재배 적지 변화 ▲가용 농업용수량 변화 ▲축산물 생산량 변화 등을 꼽았다. 간접적인 영향으로는 ▲식량안보 문제 ▲식품 안전 문제 ▲보건 문제(농촌고령화) 등이 있는데, 특히 식량안보를 위해서는 체계적인 중장기 기후변화 대응전략을 도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벼 생산량·품질 저하…과수 재배 적지 감소 전망
기후변화는 장기간에 걸친 기후의 변동으로 지구 대기에 존재하는 온실 가스의 인위적 배출 및 농도 상승이 주원인이 되어 발생하고 있다. 특히 이산화탄소는 가장 높은 누적 배출량을 보이며 지구 온난화를 초래하고 있는데, 지난 세기에 비교할 때 지표 온도는 1도 가까이 상승했고 평균 해수면이 상승했다. 또한, 폭염이나 호우빈도도 증가하고 있다. 유엔 산하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가 작성한 ‘지구온난화 1.5℃ 특별 보고서’에 따르면, 기온이 최근보다 0.5∼1.5℃ 오르면 농업 생산성이 50% 가까이 감소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중앙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중남미 지역의 옥수수와 쌀, 밀 생산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크다. 다양한 이유로 전문가들은 현 상황을 ‘기후변화’가 아닌 ‘기후위기’로 보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달 19일 발표한 ‘농업분야 기후변화 영향 및 온실가스 배출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불안정해진 기후여건은 자연재해나 작물 생육상황 교란 등으로 농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토양 성분 변화, 병해충 등 주변 생물의 변화 등을 유발함으로써 농업생태계에 간접적인 영향도 미치게 된다고 밝혔다. 또한, 이러한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재배적지와 재배품목이 변화하며, 경우에 따라 식량위기 상황도 초래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우선, 벼의 경우 쌀이 충분히 성숙되지 못하고 금이 가면서 생산량과 품질이 지속적으로 저하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또, 기후변화로 쌀 수확기 최저기온 상승과 일교차 감소는 전분축적을 저하시킬 것으로 보인다. 잡조 번식과 병해충 발생이 증가하고, 새로운 병충해에 노출될 가능성도 다분하다.

수확과 이앙이 동시에 이뤄지고 있는 모습.
수확과 이앙이 동시에 이뤄지고 있는 모습.

원예작물의 경우에도 기온상승과 일조시간 감소, 이상기상의 빈도 증가 등이 채소와 과수의 생산량과 품질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 중에서도 과수는 향후 동절기와 봄철의 이상기온에 따른 동상해와 과실 착색초기 고온에 의한 착색 불량 등으로 생산효율이 악화될 것으로 예상됐다. 또한, 앞서 말한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점차 사과, 배, 포도,  감귤 등의 재배적지가 줄어드는 한편 복숭아, 단감, 온주밀감 등도 재배적지가 북상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즉 21세기 말 우리나라 전체 농경지 대비 과수의 재배적지는 사과(적지없음), 배(1.7%), 포도(0.2%), 복숭아(2.4%)로 현재보다 크게 감소할 전망이며, 온주밀감은 제주도 재배가 불가능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어, 채소는 고추나 배추 같은 작물은 고온피해가 예상되는 반면, 마늘의 경우 한지형 마늘 대신 난지형 마늘의 재배적지가 북상하고, 양파도 고온조건에서 수량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병해충의 발생 양상도 기후변화에 따라 발생위험이 크게 증가할 경우도 있을 것으로 예측되는데, 대표적으로 감자뿔나방, 고추 역병과 탄저병, 양파 흑색썩음균핵병 등의 발생률이 증가하고, 월동·외래해충들의 발생이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1년 동안 발생가능한 병해충 세대수도 크게 증가할 가능성이 있어. 병해충 피해가 더욱 커질 수 있을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한편, 지난해 열린 기후변화 대응 국회 토론회에서 권오성 서울대학교 교수는 “기후변화는 점점 더 현실화되고 있고 농업무문은 다른 어떤 부분보다도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통합모형 분석 결과 쌀 생산은 주로 전북, 전남, 경남 등 주요 생산지역에서 감소하고 대신 시설 채소와 과수 생산이 증가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다. 또한, 심는 시기 조정 때문에 일부 지역, 일부 기간에는 수자원제약이 발생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덧붙였다. 상대적으로 재배 면적이 넓고 고령농이 많은 전남, 경남 지역에서는 이에 대한 대응책을 하루 속히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가용 농업용수량 변화…안정적 용수 확보 중요성 커져
한편, 기후변화에 따라 강우기간의 계절적 변화, 강우 강도 증가, 강우의 공간적 이동이 발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농업용수량에도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 예로, 2017년에 충남, 경기, 전남, 전북 등에서 서해안을 중심으로 극심한 가뭄이 발생했는데 그 원인을 바로 강우의 계절적 변화와 공간적 이동으로 볼 수 있다. 전국의 논을 대상으로 강우 특성의 변화에 따른 영향을 살펴보면 논 90만8000ha 중 수리답 73만4000ha(81%)에서 수리안전답율의 비중은 54만9000ha(61%)로 하락했고, 자연강우에 의존하는 천수답 지역 17만4000ha(19%) 또한 영농기 용수 공급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추세다.

우리나라는 7~80년까지 벼농사 위주였기 때문에 농업용수 공급도 그에 한정돼 있었다. 하지만 재배 작물이 다양화되면서 시설하우스 증가, 기온 상승으로 노지 배추 등이 증가하며 사계절 용수 공급도 덩달아 늘어나고 있다. 농어촌공사 관계자는 “예전엔 9월 초쯤이면 벼농사 용수공급이 끝났는데 이제는 가을작물도 있으니까 10월까지도 용수 공급이 들어가는 상황”이라며 “필요한 경우엔 연초에도 양수장 가동해서 공급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기후 특성이 바뀌면서 강우의 패턴이 바뀌고 있기 때문에 농업용수 수요량이 가장 많은 6~8월 사이에 장마로 인해 자연 강우를 활용할 수 있었다면 지금은 필요한 시기에 비가 적절하게 오지 않는데서 생기는 어려움도 있다. 공사 관계자는 또 “기후 변화에 따라 기온이 상승하면 증발량도 증가하기 때문에 컨트롤하기 쉽지 않다”며 “시설을 통해 물을 공급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관리에도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노후저수지에 관한 지적은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10년 빈도 가뭄에 용수공급이 가능한 수리안전답율은 약 60%에 머물고 있으며 수리시설 7만1000개소 중에 30년 이상 경과된 노후시설이 4만2000개소로 전체 대비 약 60%에 이르고 있다. 특히, 저수지는 전체 1만7000개소의 약 96%인 1만6000개소가 준공 후 30년이 경과돼 홍수, 태풍, 지진 등에 매우 큰 취약점을 보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기후변화에 의한 수온상승, 강우일수 감소 등으로 저수지 자정능력이 크게 저하돼 수질 4등급 초과시설은 해년마다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이에 농어촌공사는 향후 급변하는 기후변화로 인한 농업피해를 최소화하고 적응능력 향상을 위해 용수공급기반 다각화, 기후변화 대응 수리시설 안전대책 강화, ICT기반의 과학적 물관리 시스템 운영, 기후변화 종합대책 수립 등 다양한 대응방안을 추진 중에 있다.

또한, 공사는 2030년까지 수리안전답율 80% 수준 확보를 중장기 목표로 설정하고 가뭄 발생이 높은 위험지역에 대해 4대강 11개 다기능 보에 추가 확보된 여유 수자원을 물부족지역에 공급하는 하천수 활용 농촌용수공급사업 등 기후변화 대비 선제적 대응으로 안전 영농기반구축 및 시설물 안전관리 강화를 위한 사업들을 펼치고 있다.

농어촌공사 사업계획처 관계자는 “최근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농업용수의 수요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기 때문에 관행적 저수율 예측방법과 농업용수 관리체계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현재 농촌진흥청, 산림청과 각 기관별 기후변화 실태조사 끝내고 통합시스템 구축하려고 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