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PC 산물벼도정③] 文 ‘공정한 기회 보장’…양곡산업은 멀었다
[RPC 산물벼도정③] 文 ‘공정한 기회 보장’…양곡산업은 멀었다
  •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
  • 승인 2020.09.23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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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억 아끼는 RPC 산물벼 도정, 십수년째 답보
행정 편의주의적 구태 지속 농식품부도 ‘적폐’

(한국농업신문=유은영 기자) ‘RPC 산물벼 도정’은 미곡종합처리장(RPC) 업계의 오래된 과제다. RPC는 수확기 홍수출하되는 농가 벼 매입을 통해 쌀값을 지지하라고 정부가 1992년부터 육성한 방앗간이다. 매해 수확기 건조하지 않은 산물벼를 정부대신 공공비축용으로 농가로부터 수매하고 있다.

RPC는 이를 말려 창고에 보관하다가 이듬해 정부에 돌려주는데, 이 산물벼는 정부양곡 창고에 보관됐다가 도정공장으로 또 옮겨져 군.관.사회복지시설 등의 공공급식 등 수요가 생길 때마다 도정해 공급된다. 이 과정에서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다.

2016년 연구용역 결과 추산된 물류비는 약 50억원. 이를 현재 시세에 맞게 재계산했더니 10만톤당 92억원이 드는 걸로 나타났다. 산물벼를 옮길 것 없이 RPC가 직접 도정해 수요처에 갖다주면 한해 100억원에 가까운 예산을 절감할 수 있는 것이다.

누가 들어도 타당한 제안이 왜 10년이 넘도록 정책에 반영되지 않는지 세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글 싣는 순서>

① 50억 예산 아끼는데…카르텔에 막힌 ‘RPC 산물벼 도정’

② 뛰는 RPC 위에 나는 도정공장…정부 차별정책 왜?

③ 적폐청산 부르짖는 정권, 쌀 산업만은 적폐 비호 세력

미곡종합처리장(RPC) 공장 전경.

 

“꼭 RPC(미곡종합처리장)가 해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예산절감 효과가 있으니까…”

강원도의 한 RPC 관계자는 지난 21일 업계가 ‘RPC 산물벼 도정 허용’ 건의문을 십 수년째 정부에 제출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또 이 관계자는 “RPC가 수확기에 수매해서 갖고 있으니까 창고로 옮기고 도정공장으로 옮길 필요가 없다는 얘기죠”라고 덧붙였다. 수매를 안 한다면 주장을 않겠지만 수매해서 갖고 있으니 불필요한 물류비를 줄이자는 설명이다.

2016년 RPC 업계가 연구용역한 결과 RPC에서 직접 산물벼를 도정할 때 아낄 수 있는 포장임, 이송, 운반 물류비는 약 5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를 4년이 지난 현재 시세에 맞게 다시 계산하면 정곡 10만톤당 92억원이 나온다. 한 해 수확기에 농협 및 민간RPC들이 수매하는 공공비축 산물벼 물량은 약 8만톤 정도다. 이를 감안하면 약 72억원의 물류비를 아끼는 셈이다.

우리나라 방앗간의 종류는 크게 세 가지다. 동네 정미소와 RPC, 정부양곡 도정공장이다. 정미소는 농가 벼를 삯을 받고 도정해 줘 ‘임도정공장’으로 불렸지만 지금은 RPC처럼 농가 벼를 매입해 쌀로 시장에 납품할 만큼 덩치가 커졌다. 동네 방앗간이 시설과 자본금을 갖춰 농림축산식품부의 평가를 통과하면 RPC로 진입해 ‘벼 매입자금’ 지원을 받게 된다. 정부양곡 도정공장은 말 그대로 나랏미를 도정하는 방앗간이다.

정미소는 전국에 1만5000개 정도가 흩어져 있고, RPC는 2019년 경영평가를 거쳐 현재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곳이 민간 64개, 농협 132개 합쳐서 196개다. 비교적 폐쇄적인 운영으로 정보가 가려져 있는 정부양곡 도정공장은 2018년 농식품부 양정자료에 따르면 124곳이다.

1992년 벼 건조와 저장, 도정의 일괄적인 처리와 고품질쌀 기반을 다질 도정기술 습득을 위해 도입된 RPC는 민간만 도입 초기 130개에서 올해 64개로 절반가량 줄었다. 매해 신규 진입 업체까지 포함하면 기존 업체 중 현재까지 남아있는 업체는 30~40개 정도다.

정부는 유사시에 대비해 해마다 공공비축미 34만톤가량을 수매하고 있다. 이는 정부미로 정부양곡 도정공장에서 도정된다. 쌀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30~50억원의 자부담을 들여 시설현대화 사업을 진행한 RPC들은 시설과 기술면에서 최고우위를 차지한지 오래다. 하지만 방앗간이 여러 종류인데 RPC만 특정 수혜를 주장하는 건 설득력이 없다. 따라서 나랏미를 도정할 때마다 공개입찰을 부쳐 정미소를 포함한 모든 방앗간에 문호를 개방하자는 주장도 간간히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나랏미 수요가 생길 때마다 공개입찰을 실시해 도정업체를 지정하는 것은 정부양곡 도정공장의 설립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부의 주장도 원론적이긴 하지만 틀린 건 아니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에 맞게 제도도 맞춰 변화해야 하는 걸 감안하면 구태의연한 행정편의주의식 발상이라는 지적이다.

RPC 관계자는 “문 정부의 모토가 정의로운 사회 구현인데 양곡 분야에서는 적폐청산이 이뤄지지 않는다”며 “우리나라는 자유시장경쟁 체제 아닌가?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