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업 현장 속으로] 55일 차디찬 바람과 정성으로 탄생...입안 가득 찐득한 단맛, 영암 대봉곶감
[임업 현장 속으로] 55일 차디찬 바람과 정성으로 탄생...입안 가득 찐득한 단맛, 영암 대봉곶감
  • 김흥중 기자 funkim92@newsfarm.co.kr
  • 승인 2023.01.19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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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아천농장 박연현 대표
대봉감 주산지 영암군 금정면
품질 좋은 곶감 생산 일념
힘들어도 수작업 고수 이유
낮엔 일하고 밤엔 '감' 공부
"전국 제일 대봉곶감 만들 터"
박연현 금정아천농장 대표의 대봉감 덕장. 이곳의 감은 55일의 시간이 지나면 달콤하고 찐득한 곶감이 된다.

(한국농업신문=김흥중 기자) 겨울철 입안 가득 찐득해질 단맛이 생각나면 떠오르는 대표 간식거리가 있다. 예로부터 우는 아이 울음도 뚝 그치게 만든다는 ‘곶감’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쫀득하면서도 달콤한 맛에 겨울철 별미인 곶감은 장장 두 달간 차가운 바람 속에서 태어나는 귀한 먹거리다. 

감 수확이 얼추 끝나는 10월~11월이 되면 ‘곶감 농사’가 시작된다. 덜 익은 감의 껍질을 벗기고 꼬챙이에 꿰어 덕장에 매달고, 자식 돌보듯 애지중지 키워야 주름이 자글자글한 곶감이 나온다.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에는 온종일 곶감만 생각하는 이가 있다. 온·습도에 예민한 자연 건조 방식으로 감을 말리는 탓에 집보다 덕장을 더 자주 드나들며 감 상태를 살핀다. 금정아천농장의 박연현 대표의 이야기다.

박연현 금정아천농장 대표

곶감에 ‘미친’ 농부

‘곶감에 미친 농부’. 영암군 금정면 일대에서 1만평가량 대봉감(갑주백목) 농사를 짓는 박연현 금정아천농장 대표를 수식하는 말이다. 박연현 대표의 하루는 대봉감으로 시작해 곶감으로 끝난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 

서울과 대전 등을 오가며 30년 가까이 장사를 했던 박 대표는 2005년 고향인 영암군 금정면으로 귀향을 준비했다. 대봉감 주산지인 금정면에서 감 농사를 지어 곶감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서다. 고향 집을 지켜달라는 선친의 유언도 귀향을 결심하는 데 한몫했다. 

곶감 하면 경북 상주와 충북 영동 등이 떠오르기 쉽지만, 곶감을 만들 때 쓰는 떫은감은 전남 영암도 유명하다. 실제 영암 금정면 일대는 떫은감인 대봉감 주산지다. 연평균 기온이 14℃로 유지되는 덕에 대봉감을 재배하기 적합한 기후 조건을 갖췄다. 특히 일교차가 커 과실이 크고 당도가 높으며 감칠맛이 일품인 감이 생산된다. 이에 이곳 영암의 대봉감은 지리적표시등록 임산물 제17호에 등록돼 있기도 하다. 

“고향인 영암 금정에서 나온 대봉감은 그 맛과 품질이 어디 내놔도 손색이 없을 정도예요. 이렇게 맛있는 금정대봉감으로 곶감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죠.”

본격적으로 고향에 내려온 2009년부터 현재까지 박 대표의 머릿속에는 오직 ‘곶감’만 있다. 어떻게 하면 더 맛있고 품질 좋은 곶감을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약 15년째 ‘곶감농사’를 짓고 있는 셈이다.

자연이 만들어준 대봉곶감

박 대표가 생산하는 대봉곶감의 브랜드 이름은 ‘55시’이다. 생과 껍질을 직접 손으로 깎아, 55일 동안 자연 바람으로 말려서 만들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생산한 대봉감은 생과로 판매하지 않고, 오로지 곶감으로만 가공하고 있다. 

박 대표는 품이 더 들고, 수고스럽더라도 수작업을 고수한다. 든든한 동반자인 아내와 함께 수확부터 가공까지 전부 맡아서 작업한다. 이에 겨울만 되면 손이 열 개라도 모자란다고 한다. 감 수확 철부터 곶감 작업이 들어갈 때면 온 가족이 곶감 농사에 매달린다. 

곶감 작업 중인 박연현 대표가 지난가을 수확한 대봉감을 들고 있다.

“껍질을 깎는 일부터 곶감을 말리는 일까지 모두 기계로 할 수 있어도 꼭 손수 작업하고 있어요. 이렇게 하면 품질이 좋아지는 게 눈에 보이거든요. 소비자분들이 단 한 개를 먹더라도 기억에 남을 정도로 맛있는 곶감을 생산한다는 일념이에요. 힘들기는 해도 고생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웃음).”

이렇게 정성들여 생산한 곶감은 생과로 판매했을 때보다 평균 2~3배의 가격을 받을 수 있다는 게 박 대표의 설명이다. 이 과정에서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지만, 그만큼 직접 생산한 임산물의 부가가치를 더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손이 더 많이 가더라도 품질을 높이기 위해 수작업과 자연 건조를 고집하는 박 대표의 소신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감을 말려 놓고는 덕장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왔다 갔다 해요. (감이) 온도와 습도에 민감해서 조금이라도 눈을 뗄 수 없죠. 이 모든 게 곶감에 부가가치를 더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마냥 힘들지도 않아요.”

연간 4~5만 개, 무게로는 10톤가량의 곶감을 생산하고 있는 박 대표는 대과를 생산하기 위해 몰두하고 있다. 감이 클수록 곶감으로 만들었을 때 더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어서다. 또 예기치 못한 자연재해로 곶감 가공이 어려울 때를 대비해 1년 치 재고도 별도로 저장해 둔다. 

“대봉곶감은 90%는 자연이 만들어주는 선물이에요. 그 해의 온도와 습도에 따라 곶감의 맛이 결정되고, 나머지 10%만 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고 생각해요.”

박연현 대표의 대봉감

가격표 뒤에 숨은 품질에 대한 자부심

곶감은 민족 대명절인 설날에 빼놓을 수 없는 단골 간식이다. 그러다 보니 설날을 앞두고 특별 판매전이나 할인전에서 평소보다 저렴한 곶감 상품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박 대표의 대봉곶감에서는 이 같은 모습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설날을 맞아 저렴하게 내놓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제가 직접 농사짓고 생산한 곶감의 가격은 유지하려고 해요. 가격을 낮춘다는 것은 한 해 동안 피땀 흘려 농사지은 곶감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과 같기 때문이죠. 또 저렴하게 내놓기 시작하면 결국 주산지 다른 생산자들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정성스럽게 키운 농산물이나 임산물의 가격은 생산자가 직접 결정해야 하죠.”

박연현 대표의 아천대봉곶감

이 같은 그의 생각 뒤에는 품질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제값을 받는 만큼 최상의 품질을 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는 것이다. 좋은 가격을 받기 위해선 품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필수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박 대표는 고품질 곶감 생산에 매진하는 것과 더불어 금정 지역의 대봉곶감을 알리는 일에도 힘쓰고 있다. 대봉곶감을 궁금해하는 이가 나타나면, 일단 먹어볼 수 있게 곶감 나눠주기를 꺼리지 않는다. 기자를 처음 만났을 때 역시 박 대표는 먼저 손에 곶감을 쥐여줬다. 

“이미 곶감으로 유명한 상주나 영동만큼 영암 금정의 곶감도 맛이 좋다는 걸 알리기 위해 곶감 샘플을 아낌없이 보내주고 있어요. 일단 맛부터 보여드리려고요. 금정의 대봉곶감을 알려야 저도 살지만, 우리 마을 주민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주경야독 ‘감’ 공부…“배움에는 끝이 없다!”

박 대표는 10여 년 이상 감 농사를 짓고, 곶감을 만들고 있는 ‘감 농사 베테랑’이지만, 지금도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금정면 일대 대봉감 생산자들이 모인 ‘영암감사랑방’에서 끊임없이 감을 공부하면서 말이다.

“2011년경부터 지금까지 감을 배우고 있어요. 지금은 퇴직하셨지만,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의 박사님들이 많이 도와주셨죠. 감사랑방 회원들과 박사님들, 그리고 영암군산림조합과 농업기술센터 직원분들까지 똘똘 뭉쳐 고품질 대봉감 생산을 위해 힘쓰고 있어요.”

영암감사랑방 회원들

박 대표와 감사랑방 회원들은 감나무 전정부터 수확 등 재배 기술과 가공 기술, 판로 확보 등을 위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교육까지 오로지 ‘감 농사’를 위해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회원들이 십시일반 모은 회비로 현장 교육을 다니고, 대봉감 말랭이·곶감 품평회도 열면서 감과 곶감을 배우고 있는 것. 이에 마을에서는 영암감사랑방 회원들이 ‘교육중독자’라는 우스갯소리도 들린다.

이 같은 임업인들의 열정에 산림조합도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영암군산림조합은 지난해 산림조합중앙회 임업인종합연수원에서 금정면 일대 감 생산자들을 대상으로 떫은감 생산·유통·가공 등에 대한 교육을 지원하기도 했다.

“계속해서 교육에 교육을 거듭하는 이유는 지금도 새로운 정보와 기술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조금 더 품질 좋은 감을 생산하고, 곶감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지요.” 

곶감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찬 박 대표는 이 같은 교육을 바탕으로 전국 제일가는 금정 대봉곶감을 생산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온도와 습도를 자동으로 조절해주는 ‘스마트 덕장’도 만들고, 곶감 생산량도 최대 30만 개까지 늘린다는 포부다. 

자연 건조 중인 감을 바라보는 박연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