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팜리포트] 2017년 이후 최악의 AI되나② 매몰된 가금류 2800만마리…현실적인 방역대책 필요
[뉴스팜리포트] 2017년 이후 최악의 AI되나② 매몰된 가금류 2800만마리…현실적인 방역대책 필요
  • 김흥중 기자 funkim92@newsfarm.co.kr
  • 승인 2021.02.18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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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새 관리 방역조치 개선, AI 백신 도입 필요성 주장
휴지기제 실효성 ‘글쎄’…농가 방역 수준부터 높여야 

(한국농업신문=김흥중 기자) 지난해 11월 26일 정읍의 육용오리 농장에서 발생한 고병원성 AI(조류인플루엔자)는 매일 전국 단위로 산발적인 발생 양상을 보이고 있다. AI 발생으로 인해 땅에 매몰된 가금류는 지난 15일 기준 약 2800만마리를 넘어섰고, 이날 살처분 기준이 조정되기 전까진 발생 지점 3㎞ 범위에 있는 모든 가금류는 AI 감염 여부와 관계없이 전부 살처분됐다.

정부는 철새도래지 집중소독, 예방적 살처분, 감염가금 조기 발견, 농장 내 차량 진입 제한, 지자체 전담관제 운영 등 고병원성 AI 발생 초기부터 감염 확산세 잡기에 나섰지만, 올겨울 야생조류에서 검출된 AI 항원이 과거 가장 피해가 컸던 2016~2017년의 3.2배 수준인 184건에 달하는 등 여전히 감염 위험에 노출돼 있다.

AI 방역 요원이 오리의 시료를 채취하고 있다.(사진=경남도청 제공)

정부 방역 강화조치…현장 반응 냉랭

정부에서는 최근 야생조류에서 고병원성 AI 항원이 예년과 달리 여전히 검출되고 있고, 가금농장에서도 AI 발생이 계속되고 있는 만큼 집중소독, 검사체계 개편 등을 통한 강화된 방역조치를 유지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방역이 이뤄지고 있는 현장에서는 살처분 위주의 방역 조치 등 정부의 방역 진행 과정에 아쉬움을 내비치고 있다. 방역정책의 현실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중 과도하게 넓게 설정된 방역대에 대한 지적이 제기돼 왔다. 특정 구역에 모여 농장을 운영하는 국내 가금농장 대부분은 정부의 3㎞ 이내 방역대 안에서 고병원성 AI 감염 여부와 관계없이 살처분 등 조치에 놓이기 때문이다.

한 오리농장 관계자는 “AI 발생 이후 방역대가 정해질 때 방역대 내 모든 구역이 똑같은 위험성을 갖는 게 아니다”라며 “AI 발생농장을 중심으로 과학적인 평가를 거쳐 범위가 정해지는 게 적절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지적은 특히 현재 방역 조치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살처분과도 연결되고 있다. 고병원성 AI에 대한 소독이나 치료 등 바이러스를 없애기 위한 확실한 해결방법으로 살처분이 유일한 상황에서 방역대 내 일괄적인 살처분 방식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

지난 15일 기준 고병원성 AI는 가금농장에서 93건 발생했고, 살처분된 가금류는 약 2800만마리에 달한다. 산란계가 1511만마리로 가장 많이 살처분됐으며, 육계 698만마리, 육용오리 177만마리 등으로 그 뒤를 이었다. 

정부는 2018년 고병원성 AI 전파를 조기에 차단하기 위해 AI 긴급행동지침(SOP)를 강화하고 예방적 살처분 범위를 발생농장 반경 500m에서 3㎞로 넓혔다. 이후 일각에서는 줄곧 무차별적인 3㎞ 살처분 정책이 현실과 맞지 않아 과도하다는 지적이 제기됐으며, 살처분 범위를 다시 500m로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현장의 반발이 통한 걸까.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15일 살처분 범위를 기존 3㎞에서 1㎞로 조정했다. 예방적 살처분 대상을 발생농장 반경 3㎞ 내 전체 가금에서 1㎞ 내의 발생축종과 동일한 축종으로 축소 조정하는 방안을 앞으로 2주간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이러한 조정안은 2주가 경과되기 전이라도 확산 우려가 재발하면 다시 검토될 수 있다. 박병홍 농식품부 식품산업정책실장은 “이번 조정안은 바이러스 오염원 제거, 농장 차단방역, 수평전파 차단이라는 기본적인 방역대책은 유지한 채 강화된 조치 속에서 살처분 대상을 일부 축소한 조치”라고 말했다. 

철새 놔두고 닭·오리만 죽어난다

AI 바이러스 유입과 전파 원인에 단연 철새가 지목되고 있으나, 철새 등 야생조류에 대한 방역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가금류 농가들의 방역만으로는 바이러스 차단이 어려운 상황에서 현재 일부 철새도래지에 대한 방역 과정이 오히려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경기도 평택의 한 양계농장 관계자는 “AI를 퍼뜨리는 철새는 그냥 놔두고, 애꿎은 멀쩡한 닭과 오리만 죽어 나가고 있다”면서 “농민들은 눈앞에서 자식 같은 닭·오리들이 묻히는 걸 보면서도 어디에 하소연할 수도 없다”고 호소했다. 

지금까지 방역당국과 지자체는 주요 철새도래지에서 방역차량을 동원해 소독약을 뿌리거나 일부 레이저 총을 활용해 야생조류를 쫓아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오히려 이러한 조치는 야생조류를 다른 곳으로 이동시켜 바이러스를 널리 퍼뜨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꼬집었다. 단순히 철새를 내쫓는 조치로 인해 이동하는 철새들이 결국 전국을 AI 바이러스로 오염시키고 있는 셈이다.

김만섭 (사)한국오리협회장은 “AI 종식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철새도래지에 대한 AI 방역 조치사항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면서 “철새도래지의 철새는 그 자리에 그대로 놓아두는 게 최선이고 이제는 철새도래지가 아닌 농장 주변에 대한 집중소독과 농장 단위 방역 조치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정부가 취하고 있는 각종 방역 조치사항의 실효성에 대해 깊이 되짚어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AI 방역 요원이 농장 주변을 소독하고 있다.(사진=한국오리협회 제공)
AI 방역 요원이 농장 주변을 소독하고 있다.(사진=한국오리협회 제공)

여전히 검토 중인 AI 백신

고병원성 AI가 좀처럼 잡히지 않고 있는 가운데 산란계 등 업계 관계자들 중심으로 AI 백신에 대한 사용 요구가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인체 감염 우려 등을 이유로 살처분 이외의 다른 방역대책 중 하나인 AI 백신은 검토만 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달 26일 전남도의회에서는 AI 방역을 ‘싹쓸이 살처분’에서 백신 접종 위주로 개선해야 한다는 건의안을 채택하기도 했다. 인도네시아 등 백신을 사용하는 곳과 마찬가지로 백신 접종 위주로 대응하고, 검사 결과 양성이 나온 농장에 한해서만 살처분을 해야 한다는 것.

하지만 아직 AI 백신은 접종 이후의 결과를 알 수 없어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정부는 AI 백신 접종이 변종 바이러스 발생을 초래해 사람에게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다며 백신 접종을 미루고 있다.

박병홍 식품산업정책실장은 “백신 문제는 여러 가지 고려할 사항이 있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구제역과 달리 AI 바이러스의 경우에는 종류가 매우 다양하고 바이러스 변이가 상당히 빈번하게 이뤄지기 때문에 유효한 백신을 적기에 개발하기 상당히 어렵다”고 말했다.

또한, “기술적인 한계로 백신 효능이 제한적인 측면이 있고 전문가들은 백신 접종으로 인해 변이가 이뤄지면 인체 감염 우려가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면서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일부 국가에서는 백신 접종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AI가 근절되지 않고 있고, 미국, 일본, 유럽 등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백신을 사용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러한 이유로 AI 백신은 이전부터 도입 여부를 두고 찬반 공방이 이어져 왔다. 일각에서는 현재 살처분 등 방역정책의 대안으로 AI 백신 도입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하며, 단계적으로 점차 백신 도입을 추진해 효과를 분석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안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휴지기제 무용지물 논란

지난해부터 이어진 고병원성 AI가 오리농장에서도 꾸준히 발생하자 오리사육을 제한해 AI 바이러스의 전파를 줄이고자 마련된 오리사육 휴지기제의 실효성에 논란이 일고 있다. 

AI 방역대책의 하나로 추진됐던 휴지기제는 AI 발생 가능성이 큰 지역의 오리사육을 동절기 4개월가량 제한하는 대신 보상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지난해 약 250여 농가가 이 제도에 참여해 사육제한에 들어갔으며, 대신 보상금을 수령해 소득을 보전하고 있다.

그러나 휴지기제 실시에도 불구하고 오리농장에서는 꾸준히 AI가 발생하고 있으며 지난 11일과 12일만 해도 전남 나주와 제주 등에서 고병원성 AI가 검출됐다. 이에 휴지기제가 겨울 철새로 유입되는 고병원성 AI를 막는 데 역부족이라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임시방편에 불과한 오리사육 휴지기제보다는 오리농가의 방역 수준을 높일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만섭 오리협회장은 “오리의 입식을 금지해 AI를 예방하려는 정부의 사육제한 정책은 오리산업 전체에 큰 피해를 야기한다”며, “당장은 AI 방역을 위해 방역당국에 협조하지만, 이는 오리농가의 생존권이 달린 중차대한 사항이다”고 말했다. 

다만, 휴지기제가 도입된 배경에는 오리농가의 열악한 시설 등을 이유로 자체방역이 쉽지 않은 점이 일부 있어, 농가의 시설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다. 실제로 전국 오리 농가의 절반 이상이 비닐하우스형 가설 건축물로 조사되기도 했다.

오리협회 관계자는 “지금부터라도 사육시설을 개편해 나가야 하지만, 농가의 수익이 상대적으로 적다 보니 정책적인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