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를 기미가 없는 쌀값 수확기 앞둔 농가 근심 커져
오를 기미가 없는 쌀값 수확기 앞둔 농가 근심 커져
  • 김흥중 기자 funkim92@newsfarm.co.kr
  • 승인 2022.08.11 12:11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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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경기에도 계속되는 쌀값 하락세
햅쌀 수확 기쁨보다 걱정 앞서
신곡 가격 형성 영향 줄까 우려
정부, 추가 격리 등 대책 내놔야

(한국농업신문=김흥중 기자) 정부가 올해 2월, 5월, 그리고 7월 세 차례 2021년산 쌀의 시장격리에 나섰지만, 산지유통업체 위주로 여전히 넘치는 재고와 계속되는 쌀값 하락 등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에 이른 추석에 맞춰 이달부터 전국 각지에서 햅쌀이 출하되고 있으나, 농가들은 수확의 기쁨보다 시름이 더 큰 상황이다. 쌀값 하락의 여파가 햅쌀뿐 아니라 수확기 신곡에도 미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단기간 쌀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추가적인 격리가 답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역계절진폭 역대급…쌀값 하락 여전

올해 들어 단 한 차례도 오르지 못한 2021년산 산지 쌀값이 여전히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정부가 7월까지 총 세 번의 시장격리를 추진하면서 넘치는 물량을 시장에서 걷어내는 노력을 했으나,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은 셈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산지 쌀값은 20㎏ 정곡 기준 4만3918원으로 조사됐다. 이는 전 순기인 10일 전보다 497원(1.1%) 하락했으며, 2021년산 수확기(10~12월) 평균 가격인 5만3535원과 견줬을 땐 1만203원(18%)이나 빠지는 수준이다. 주목할 점은 산지 쌀값이 지난해 6월 이후 1년 이상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고, 올해 3월 들어 5만원대가 무너진 이후 매 순기마다 높은 하락률을 보인다는 점이다. 

GS&J의 ‘쌀가격동향 364호’에서는 지난달 25일 기준 역계절진폭이 18%를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이 정도의 역계절진폭은 연속 풍작으로 쌀값이 급락했던 2016년 같은 날의 역계절진폭 6.3%보다도 월등히 높다는 주장이다. 

윤석열 정부의 올해 첫 국정감사를 앞두고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2022년 국정감사 이슈 분석’ 보고서에서도 현재의 쌀 시장의 문제점을 국감의 주요 이슈로 손꼽았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쌀의 구조적 공급과잉으로 산지 쌀값 하락, 비축 및 관리 비용 증가, 농업소득의 정체 등 다양한 문제가 초래되고 있다”면서 “쌀 소비량이 꾸준히 감소하는 가운데 2021년 쌀 생산량은 6년 만에 전년에 비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 정부로서는 쌀 수급을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할 필요성이 더욱 커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례로 올해 쌀 가격은 1월 이후 계속 하락 중이며, 전년 동월 대비 하락폭 또한 매달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쌀 산업의 현주소를 진단했다.

한편, 앞서 정부는 올해 2월 1차 시장격리로 14만4000톤을, 5월 2차 시장격리로 12만6000톤의 2021년산 벼를 매입했다. 이어 지난달 10만톤 규모의 3차 시장격리를 추진했으며 현재 진행 중인 상황이다. 

햅쌀 가격 하락도 불 보듯

농가 소득으로 직결되는 쌀값이 끝을 모르고 하락하는 가운데 이른 추석에 맞춰 햅쌀 수확에 나선 지역에선 쌀값에 대한 근심이 더욱 커지고 있다. 제값을 받지 못하니 햅쌀 수확이 달갑지만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계속되는 쌀값 하락과 넘치는 재고, 소비 부진 등이 겹치면서 햅쌀 시장도 먹구름이 꼈다. 특히 가격에서 지역별로 차이는 있으나 지난해보다 많게는 1만원 이상 떨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면서다. 

세종 지역에서 햅쌀 출하를 앞둔 김명성 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 총무재정부회장은 “우리 지역의 햅쌀로 쓸 조생종 벼 가격은 지난해보다 1만원 이상 빠지는 5만7000원 선에서 형성될 것 같다”면서 “일반 쌀과 달리 출하 시기를 앞당겨 가격 면에서 장점이 있는 게 햅쌀인데, 제값을 받기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처럼 구곡 쌀값이 계속해서 내려간다면 이 가격마저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작황 좋으면 뭐 하나…타들어 가는 ‘농심’

현재 쌀 산업이 가격 하락, 재고 과잉, 소비 부진 등 삼중고를 겪고 있자 현장의 농민들은 신곡 수확기를 앞두고 점점 애가 타들어 가고 있다. 최근까지 이어지는 문제들이 신곡 시장에도 그대로 영향을 줄 것으로 점쳐지면서다. 

김명성 총무재정부회장은 “원래라면 통상적으로 쌀이 부족해지는 시기인 단경기(7~9월)에는 쌀값이 어느 정도 올라야 하지만, 올해는 어림도 없다”며 “지난 5년간 벼값이 점점 오르면서 현장에서 요구하는 적정 가격 궤도에 안착한 듯했는데, 지금은 끝도 없이 다시 떨어지고 있다. 이대로라면 수확기 신곡 가격도 분명 지난해보다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또한, 김명성 부회장은 “올해 수확기 신곡 가격이 벼(조곡) 40㎏ 기준 6만원대에는 진입해야 할 텐데, 6만원대를 넘지 못할 것 같아 걱정이 크다”고 덧붙였다. 김명성 부회장이 있는 세종 지역은 지난해 6만4~5000원 선에서 산지 거래가 이뤄졌다. 

쌀값이 농가 소득으로 이어지는 만큼 영농에 위기가 올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사천에서 벼농사를 짓고 있는 정연정 한국쌀전업농경남도연합회장은 “지금도 계속되는 이례적인 쌀값 하락이 곧 농가 경제를 무너뜨리는 게 아닐까 심히 걱정스럽다”며 “쌀값 빼곤 모든 게 다 올랐다. 특히 인건비부터 유류비, 농자재비, 비료 가격 등 생산비가 크게 올랐다. 농사지어서 남는 게 없을 지경이니 농사를 그만둬야 하나 걱정도 든다”고 토로했다.

현장 농민들은 일제히 산지에 쌓인 재고를 처리하는 게 급선무라고 입을 모았다. 올해 신곡이 나와도 쌓아둘 창고를 먼저 비워 놓아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김명성 부회장은 “역공매 방식, 격리 시기의 문제 등 정부의 시장격리 조치에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부 탓만 하고 있을 순 없다”면서 “지금으로선 지역 내 미곡종합처리장(RPC)에 쌓인 재고부터 처리해야 한다. 창고를 비우지 못하면 수확기에 농민들이 애써 거둔 쌀을 넣을 곳이 없다”고 말했다.

정연정 회장 또한 “구곡을 해외 원조로 쓰든, 사료로 사용하든 지금 재고로 쌓인 물량을 농협RPC와 민간RPC 구분 없이 먼저 비워내야 한다. 9월이 오기 전 추가 시장격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임병희 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 사무총장은 “지속적인 쌀값 하락 등 여파로 올해 수확기 신곡 가격은 전년보다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장에선 벼 40㎏ 가격이 6만원대를 넘어서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하고 있다”면서 “현재까진 별다른 기상이변이 없어 이대로 올해 작황까지 좋다면 지난해에 이어 올해 역시 공급과잉 상황이 발생할 우려도 있다. 여기에 만성적인 소비 부진, 재고 문제까지 겹친다면, 올해 쌀 시장은 현재처럼 가격으로 인해 불안한 상황이 연출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단기간 획기적인 대책 필요

정부가 신곡 수확기를 앞두고 특단의 대책을 내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단기적으로 쌀값 안정 등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추가 격리가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임병희 사무총장은 “2022년산 신곡 수확기 전 쌀 시장의 안정을 위해서는 2021년산 구곡에 대한 격리가 절실하다”면서 “현재 RPC 등 산지유통업체에서는 창고에 잔여 물량이 많아 수확기 신곡을 사들일 여력이 부족하다. 이 재고를 처리할 수 있도록 구곡을 시장에서 격리하는 조치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2016년 쌀값이 한 가마니에 12만원대를 기록하며 바닥을 찍은 뒤 2017년 문재인 정부에서는 그해 수확기에 72만톤의 막대한 물량을 매입한 적이 있다”면서 “수확기 단기간에 엄청난 물량을 격리한 결과 이때 이후부터 쌀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첫 번째 쌀 수확기에는 대대적인 수급안정대책이 펼쳐졌다. 공공비축미곡 35만톤과 시장격리곡 37만톤 총 72만톤의 쌀을 농가로부터 매입한 것이다. 당시 시장격리곡 매입 물량은 수확기로는 역대 최대, 연간 물량으로는 2010년 이후 가장 많은 수준이었다.

벼 매입자금지원의 확대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임 사무총장은 “정부가 RPC 등에 연간 1조2000억원의 벼 매입자금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다”면서 “재고에 대한 구입처 확대를 위해 지원 영역을 일정 규모 이상의 비RPC, 임도정공장 등 양곡가공업체로 확대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중장기적인 대책에는 쌀값 안정을 골자로 한 양곡관리법 개정이 거론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시장격리가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고, 적어도 쌀 최저가격 기준을 만들 수 있도록 양곡관리법을 손봐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