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조금특집]우리 농산물, 우리가 지킨다!
[자조금특집]우리 농산물, 우리가 지킨다!
  • 박우경 기자 wkpark@newsfarm.co.kr
  • 승인 2019.05.29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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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 “자국 농산물 홍보 제지”
수입개방 대응해 출범한 ‘자조금’

(한국농업신문=박우경 기자)1992년에 도입된 양돈 자조금을 시작으로 우리나라에 자조금이 도입된 지 어느덧 27년의 시간이 흘렀다. 농산물 시장개방의 흐름 속에서 탄생한 자조금은 어떻게 변화했으며 어떠한 성과를 이뤄냈을까. 우리나라의 자조금의 도입 역사와 함께 각 품목별 의무자조금이 이뤄낸 성과를 짚어보고, 남아있는 임의자조금의 의무자조금 전환 가능성을 알아본다.

우리나라 자조금의 역사는 1980년대 농산물 수입개방에서부터 시작된다. 1985년 우루과이라운드(UR)에서 논의된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으로 우리 농업분야는 격변의 시기를 맞이한다. 80년대 이전의 무역이 나라마다 빗장을 거는 보호무역주의였다면, 우루과이라운드를 정점으 세계 무역경제 체제의 흐름은 ‘시장개방’으로 변화하게 된다.

우리나라도 시장개방의 흐름을 따라 서비스 교역 성장, IT상품 수출성과 등을 이뤄냈다. 하지만 1990년 초반 농산물 개방이라는 큰 파도를 만나고 기존 우리나라의 농업과 국민들의 식탁 모습은 완전히 바뀌게 된다. 수입이 제한되고 있었던 대부분의 품목을 1997년 7월 1일자로 자유화해 외국 농산물은 물밀 듯 들어오게 되고, 결국 우리 농산물은 저렴한 외국 농산물과 가격경쟁을 해야하는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체제를 대신할 세계무역기구(WTO)가 1995년에 설립되면서 정부가 직접적으로 국내 농산물 가격 지지를 위한 정책을 펼치는데 제한을 갖게 된다.

이러한 열악한 상황에서 각 생산자들은 우리 농산물 소비를 확대시킬 자구책 마련에 고심하게 된다. 충남대학교 박종수 농학박사는 “90년대 국내 농산물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생산자가 품목별로 자조금을 만들어 소비·홍보하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며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故박영인 박사 국내 자조금 도입 추진
 
이처럼 국내 농업이 격변하고 있던 때, 1976년 미국곡물협회장을 지내고 있던 故박영인 박사는, 당시 외국의 농가들이 스스로 자금을 조성하고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현실에 충격을 받고 자조금 제도를 국내에 도입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박영인 박사와 함께 자조금 연구를 진행한 박종수 농학박사는 “박영인 박사는 국내 자조금이라는 시스템을 도입하고 처음으로 자조금 연구를 진행하는 연구회를 만들었으며 이후 자조금 연구원 이사장을 지내며 양돈·양계 자조금 도입에 큰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그는 1990년 농어촌발전특별조치법(이하 농발법)에 자조금 관련 문구를 삽입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면서 축산 부문에서 규모화 이룬 양돈과 양계에서 임의자조금 사업을 시작하는데 일조한다. 이어 낙농육우협회(1999)도 낙농임의자조금 사업을 실시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