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내가 딴다” 업주가 양곡관리사 자격증 공부
“차라리 내가 딴다” 업주가 양곡관리사 자격증 공부
  •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
  • 승인 2019.12.03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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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품질 관리’ 할 일 없는데 내년 의무고용 예정
공공비축 수매 RPC들 불이익 대비·경영부담 덜려고

'쌀 수확 후 관리' 맡기려 양곡관리사 전문 자격 신설

'가공과 품질관리' 역할 초점...벼 보관.도정 RPC들 '직격탄' 예상

쌀 관리는 창고 등 시설 문제, 사람 둬서 될 일 아냐

각종 규제.경영압박 시달리는 RPC에 규제 하나 추가한 셈

인건비 지출에 경영부담 받느니 업주들 '직접 취득' 나서

 

(한국농업신문=유은영 기자) 올해 도입된 양곡관리사 자격제도 시험이 코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내년부터 자격취득자를 의무고용해야 하는 미곡종합처리장(RPC)들이 자구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양곡관리사는 쌀의 수확 후 관리를 담당하는 민간 전문 자격증이다.

한국RPC협회는 최근 협회 강의실에서 전문강사를 초빙해 제1회 양곡관리사 자격시험에 대비한 강의를 실시했다. 당장 내년부터 의무고용 부담을 지게 되는 RPC 업주들이 직접 자격증을 따 각종 불이익에 대비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교육에 참여한 업체 관계자는 “RPC도 공공비축미(산물벼)를 수매해 보관하는데 쌀의 수확 후 관리에 초점을 둔 양곡관리사를 두지 않으면 각종 도급계약 등에서 벌점을 주지 않겠느냐”며 이번 시험에 응시하려는 이유를 밝혔다.

전북의 한 민간 RPC업체의 '쌀 품질 관리실'. 각 거래처에 납품하는 쌀별로 날마다 시료를 채취해 품위를 검사하고 관리한다. 대형유통 마트 및 식품기업 등과 거래하는 RPC들은 쌀 품질이 경영과 직결되기 때문에 벼의 보관 및 가공 수준, 쌀의 품질 관리에 철저할 수밖에 없다.
지방의 한 민간 RPC업체의 '쌀 품질 관리실'. 각 거래처에 납품하는 쌀별로 날마다 시료를 채취해 품위를 검사하고 관리한다. 대형유통 마트 및 식품기업 등과 거래하는 RPC들은 쌀 품질이 경영과 직결되기 때문에 벼의 보관 및 가공 수준, 쌀의 품질 관리에 철저할 수밖에 없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올해 6월 정부양곡의 품질 고급화를 위해 양곡관리사 제도를 도입한다면서2020년부터 양곡관리사 110여명을 전국 양곡 보관 창고 등에서 일할 수 있게 한다고 밝혔다.

시험은 (사)대한곡물협회 주관으로 12월 21일 1차 이론시험과 내년 3월 21일 2차 실무능력시험을 각각 시행한다.

양곡관리사 제도는 도입 초기부터 실효성 논란이 불거지면서 아직까지 업계와 정부간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정부양곡 보관만 하는 창고업체들도 인건비 부담만 지우는 꼴이라며 반발하고 있지만 이 제도 도입 목적이 쌀의 수확 후 관리를 전문가에게 맡기자는 데 있는 만큼 1년 내내 벼를 보관하고 도정하는 RPC들에게 차후 경영부담을 가중시키는 ‘핵’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자격시험 과목도 △미곡 수확 후 관리 및 저장 방법 △미곡 가공과 품질관리 유통 △미곡 품질평가 △저장 및 가공 실무 등 주로 RPC 업무와 관련된 것들이다.

이 관계자는 “쌀 보관 창고 등 시설의 문제이지 양곡관리사를 채용한다고 해서 쌀 품질이 높아지는 게 아니”라며 “가뜩이나 이런저런 규제로 힘든 RPC에 규제 하나 더 추가해 경영압박을 하는 셈”이라고 토로했다.

 

◆시험 응시에 총 16만원…“주관사 수익사업” 비판

업계 불만과 경영압박에 대한 불안감 증폭에 따라 자격증의 공신력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일단 정부양곡 관리라는 공적인 일을 민간단체가 주관해 자격을 주는 게 불합리하다는 지적이다. 대한곡물협회가 창고업에 오래 관여했고 회원사 중 창고업주가 많다고 해도 시험 출제 및 관리 자격엔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험 주관사로서 자격 적정성 논란은 협회의 수익사업 비판까지 낳고 있다.

한 관계자는 “1, 2차 시험응시에 총 15~16만원이 소요된다”면서 “참고서 판매 수익까지 합하면 무시할 수 없다. 실익 없는 자격증 신설로 민간단체에 부가적 이득만 취하게 한 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 관계자는 “이 자격제도가 활성화되면 정부 자격증으로 전환할 계획도 갖고 있다”며 “처음부터 정부 자격증으로 하려면 절차에 많은 시간이 걸려 민간으로 시작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작 양곡관리사를 채용해야 할 현장에서 제도 시행을 두고 반발하는 만큼 정부는 자격증 ‘관리’보다 원점으로 돌아가 자격증이 필요한지 여부부터 점검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