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떡볶이 시장 대기업 진출 우려…"생계형 적합업종 지정하라"
[특집] 떡볶이 시장 대기업 진출 우려…"생계형 적합업종 지정하라"
  • 김흥중 기자 funkim92@newsfarm.co.kr
  • 승인 2021.07.07 12: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기업 진출 땐 중·소기업 경영악화 우려
제품 다양화 제한…소비자 후생 저하
간편식 직접생산 아닌 OEM 유지 요구

(한국농업신문=김흥중 기자) “권투나 씨름 등 스포츠에서는 체급에 맞춰 경기를 진행합니다. 서로 비슷한 체중의 선수들끼리 대결하도록 나눠놓은 게 체급이죠. 이런 체급을 무시하고 플라이급과 헤비급이 붙게 된다면 경기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실상 경기가 이뤄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플라이급이 대부분인 떡볶이 업계는 대기업이라는 헤비급과 맞붙게 생겼습니다.”

지난 4월 27일 ‘떡볶이 시장, 대기업 진출 괜찮은가?’라는 주제로 열린 좌담회에서 나온 말이다. 최근 떡볶이 시장은 몸살을 앓고 있다. 대기업이 직접 시장에 뛰어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떡볶이를 생산하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은 대기업 진출을 강력히 반대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떡볶이떡·떡국떡 제조업이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돼야 한다는 데 입을 모으고 있다.

한국쌀가공식품협회와 소상공인연합회는 지난 4월 27일 서울 aT센터에서 떡볶이 소상공인 보호·육성 방안 마련을 위한 긴급 좌담회를 열었다.

떡볶이 시장 눈독 들이는 대기업

떡볶이 시장의 대기업 진출 가시화는 떡볶이떡 등 소재떡을 생산하는 제조업체의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기간이 만료되면서부터 시작됐다.

떡류(떡볶이떡, 떡국떡) 제조업체는 2014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됐다. 이에 식품 대기업에서는 떡볶이에 들어가는 떡볶이떡을 중·소기업, 소상공인 등에 OEM(주문생산자위탁) 방식으로만 생산할 수 있었다. 이 제도는 영세한 업체 위주로 형성된 떡류 시장을 성장시키는 데 기여해 시장규모를 2013년 568억원에서 지난해 1274억까지 124% 증가시키는 데 한몫했다.

그러나 지난해 8월 떡류의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기간이 만료되자 대기업에서는 떡볶이떡을 직접 생산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직접 생산시설을 구축하는 기업도 속속 늘어나기 시작했다.

대기업에서는 떡볶이 제품의 수출을 늘리기 위해 직접 제품의 제조·판매를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시장에서 경쟁우위를 선점하기 위해 국내시장에서 제품에 대한 검증을 거쳐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또한, 산업경쟁력 측면에서 후방산업인 쌀 생산 농가를 위해서도 대기업 진출이 필요하며, 식품 안전성 관리 부분에서도 대기업의 이점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한국쌀가공식품협회와 소상공인연합회 등은 떡볶이떡 등 소재떡을 생산하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떡볶이떡·떡국떡 제조업이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될 수 있도록 동반성장위원회와 중소벤처기업부에 신청서를 제출했다.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은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이 만료된 업종·품목에 대기업의 진출을 제한하는 제도다. 지정된 업종에 대해서는 5년간 대기업의 인수·개시·확장 등 영업행위가 제한된다.

소상공인 생계 위협 직격타 우려

업계에서는 떡볶이떡·떡국떡 제조업이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되지 못해 대기업이 직접생산 시장에 진출하게 되면 가장 먼저 생계를 위협받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조상현 쌀가공식품협회 부장은 “떡볶이 관련 업계의 업체 중 99.9%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다. 대기업은 0.1%에 불과하다”면서 “대기업이 사업영역을 중·소기업, 소상공인 영역까지 확대한다면 이들의 경영환경은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폐업이 늘어날 것이고, 실업자 양산, 가계 부채 증가 등에 따른 사회적 문제까지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중·소기업, 소상공인의 전문이력 빼가기 형태로 생산기반을 약화시킬 수 있고, 대기업은 마케팅력과 자본력이 우위인 점을 이용해 영세기업의 고유 시장을 잠식할 우려가 있다”면서 “영세하나 시설투자, 가정간편식 제품 개발 등 여러모로 노력하는 소상공인의 생존권이 위협받을 게 분명하다”고 덧붙였다.

떡볶이떡·떡국떡 제조업과 유사한 산업 구조를 가진 면류 제조업의 사례만 보더라도 정부 차원의 보호 장치가 없으면 산업의 영위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정권 숭실대학교 교수는 “면류 제조업은 2006년 중소기업 고유업종 폐지 이후 2011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됐으나, 그 사이 기간에 중소기업 영역이었던 면류 제조업에 대기업들이 뛰어들기 시작했다”면서 “이때 면류를 자체 생산하던 업체들은 도산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인덕 인덕식품 대표 또한 “면류 제조업의 경우는 2011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재지정 돼서야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며, “떡볶이떡·떡국떡 제조업 또한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면류의 사례를 되풀이할 것은 자명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소상공인 생존권 침해와 더불어 소비자 후생 측면에서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황선옥 소비자시민모임 상임고문은 “법적 보호 없이 대기업이 직접생산 시장에 진출하게 되면 시장 독점이 일어날 수 있다”면서 “소상공인이 출시하는 다양한 제품들이 줄어들게 돼 소비자들은 몇 군데 대기업에서 생산하는 제품만 접하게 될 것이다. 결국 소비자 선택권에 제약을 줄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쌀가공식품협회 회원사 조사에 따르면, 떡볶이떡·떡국떡 등 소재떡을 주로 생산해오던 소상공인들은 지난해 코로나19 사태로 학교급식 등 식자재 납품이 어려워지자 소재떡 매출 감소 등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자구책으로 가정간편식 제품 생산에 뛰어들었고, 온라인 시장을 중심으로 가정간편식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해 소재떡 매출 감소를 상쇄하기도 했다. 

소상공인의 이러한 노력에 네이버 스토어 등 온라인 스토어에는 약 2만개에 달하는 새로운 떡볶이 제품이 있으며, 지방의 특색 있고 입소문이 난 제품들까지 가정간편식 형태로 소비자에 전달되고 있다. 대기업이 시장에 직접 진출하지 않아도 소비자 후생에 문제가 없는 이유다.

심상욱 중소기업중앙회 상생협력부장은 “떡볶이떡 시장을 보면, 지역 소상공인들이 마켓컬리, 쿠팡 등 온라인플랫폼의 확대에 맞춰 이를 이용해 간편식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면서 “다양한 선택권을 소비자에게 제공하게 돼 소비자 후생을 높이고, 관련 산업인 쌀 산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이라는 법적 울타리 없이 대기업이 간편식 시장에 진출하게 될 경우 대기업의 자본력으로 각종 할인 등 물량 공세가 이어지게 돼 소상공인의 다양한 제품들이 시장에서 배제될 수 있다”면서 “결과적으로 소비자 후생이 감소하고, 장기적으로 일자리 등이 사라져 경제의 건강한 하부구조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된다”고 덧붙였다.

위생관리·수출확대 문제없어

생존권 위협, 소비자 후생 감소 등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떡볶이 제조 업계에서는 떡볶이떡·떡국떡 제조업이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당시 권고안대로 OEM 방식 유지를 요구하고 있다.

대기업의 직접생산이 아닌 OEM 방식으로 이뤄지던 중소기업 적합업종 기간(2014~2020)에도 떡볶이 시장은 계속 성장해 왔다는 게 관련 업계의 중론이다. 실제로 떡볶이 수출 현황을 살펴보면 2013년 1190만달러에서 2020년 5376만달러로 350% 급성장했다. 

대기업에 제기하는 중·소기업, 소상공인의 위생관리 미흡에 따른 제품 안전성 우려에 대해서도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은 큰 문제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떡류는 이미 2014년 HACCP(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 의무적용 대상 품목으로 지정돼 영세한 업체더라도 위생관리에 대한 설비 투자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 직접생산 아닌 OEM 유지

쌀가공식품협회와 소상공인연합회 등에서 떡볶이떡·떡국떡 제조업의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을 위해 제출한 신청서는 현재 동반성장위원회의 실태조사와 추천을 거쳐 중소벤처기업부의 심의 단계에 있다. 

중기부 상생협력지원과 관계자는 “동반위의 실태조사 이후 관련 업계의 추가적인 자료와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집하고 있다”면서 “적어도 오는 10월 안으로는 결과가 나올 예정”이라고 밝혔다.

관련 업계에서는 떡볶이떡·떡국떡 제조업이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큰 무리 없이 지정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조상현 부장은 “적합업종 지정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고시의 세부내용이 중요하다”면서 “떡볶이 시장의 건강한 생태계 유지를 위해 현행 방식인 OEM을 유지하고, 가정간편식 또한 예외사항으로 두지 않고 대기업 직접생산이 아닌 OEM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