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밥상을 위한 볍씨의 변신 : 토종볍씨, 5천년 한민족의 밥맛②] 이융조 (재)한국선사문화연구원 이사장 인터뷰
[건강밥상을 위한 볍씨의 변신 : 토종볍씨, 5천년 한민족의 밥맛②] 이융조 (재)한국선사문화연구원 이사장 인터뷰
  • 이은혜 기자 grace-227@newsfarm.co.kr
  • 승인 2021.08.20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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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벼 ‘청주소로리볍씨’
선사시대 벼 기원 밝히는 중요 단서
역사 정통성 위해 ‘박물관’ 건립해야

(한국농업신문= 이은혜 기자)

이융조 이사장.
이융조 이사장

-청주소로리볍씨를 소개한다면.
충북대학교 박물관 팀이 1997~1998년, 2001년 두 차례에 걸쳐 지금의 오창과학산업단지 지역을 발굴해 논이 있는 지표로부터 2.5m 밑으로 내려가서 찾아낸 벼로, 연대측정을 했더니 1만5000~1만7000년전에 걸쳐 있는 벼임이 밝혀져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벼로 공인됐다. 지금껏 국제적으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인정받아왔던 중국 후난성 출토 볍씨(약 1만500년전)보다도 약 3000년이나 더 오래된 세계 최고(最古)의 볍씨가 한국에서 발견됐다.
지금까지도 청주소로리볍씨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벼로 밝혀졌고 인정돼 오고 있다. 잘린 볍씨의 소지경은 야생벼와 확연히 구별되는 특징이어서 순화벼로 판명된다. 야생벼에서 사람과의 관계를 가지게 된 게 순화벼고, 그래서 청주소로리볍씨는 야생벼와 재배벼의 중간 단계로 볼 수 있다. 순화벼라고 이름이 붙여진 것도 청주소로리볍씨가 처음으로, 영국 BBC 뉴스에도 순화벼로 소개됐다. 청주소로리볍씨는 세계 벼 연구에 획기적인 의미를 차지함과 동시에 벼의 기원에 관한 중요한 단서가 된다.

청주소로리볍씨.

-소로리볍씨에 대한 세계 학계의 평가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는 고고학 개론서인 ‘Archaeology’, 한국에서도 ‘현대 고고학의 이해’라는 이름으로 출간되는 책에 쌀의 기원이 ‘한국’(청주소로리볍씨)으로 명시돼있다.
각종 국제회의에서도 청주소로리볍씨에 대한 발표가 이어졌다. 2000년 10월 필리핀 국제미작연구소에서 열린 ‘제4회 벼유전학 국제회의’와 2002년 중국 하남성 문물고고연구소 개소 50주년 기념 국제회의에서 발표가 진행됐다. 또한, 2002년 12월에는 ‘제 1회 국제회의 : 아시아의 선사농경과 소로리볍씨’라는 행사를 충북대학교 박물관과 청원군이 주최하기도 했다.
2003년 10월 21일에는 영국 BBC 뉴스와 인터넷판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벼가 발견되다’라는 주제로 보도됐다.
이후 지속적으로 세계 곳곳에서 열린 학술대회에 참가해 청주소로리볍씨에 대한 발표를 진행했다. 미국 워싱턴 D.C와 폴란드, 중국에서의 국제회의에 청주소로리볍씨가 알려졌고 2015년에는 제2회 소로리볍씨 국제회의를 청주에서 개최하기도 했다.

-청주소로리볍씨가 가지는 역사적 의미는.
이전에는 중국 벼의 역사가 우리보다 훨씬 더 오래됐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그런 학설을 분명히 뒤집은 근거가 되는 게 청주소로리볍씨다. 고양 가와지볍씨가 5020년전으로 밝혀졌는데, 청주소로리볍씨는 거기에 1만년이 더 오래됐다. 이건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청주소로리볍씨는 연대가 과학적으로 분명하고 미국에서도 2군데 의뢰해서 증명받은 확실한 연대다. 세계 어떤 사람도 이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가장 유명한 고고학 교재 ‘Archaeology’에도 쌀의 기원이 2004년 판부터 중국에서 한국으로 변경 등재되고 있다. 이는 인류사에서 가장 오래된 벼가 한국임을 인증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청주소로리볍씨 기념탑.
청주소로리볍씨 기념탑.

-청주소로리볍씨 박물관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맞다. 당연히 있어야 하는데 너무 늦었다. 벌써 발굴된 지 25년이 돼 간다. 폐교되는 소로초등학교 분교에 박물관을 지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발굴 당시 많은 사람들이 나섰지만 결국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현재 청주시 옥산면 소로리 입구에 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그러나 기념탑만으로는 연구하고 보존하는 과정이 부족할 수 있다. 볍씨가 지역의 이름을 딴 만큼 박물관은 유적 근처에 반드시 세워져야 한다. 국가에서 좋은 농토를 수용해 박물관을 짓고 소로리볍씨에 대한 연구가 지속되길 바란다. 역사의 정통성을 찾아가는 일이다. 청주는 청원생명쌀로 이미 유명하고, 청주와 청원이 통합되면서 상징 마크도 볍씨로 만들었다. 그 지역에서 발굴된 유물인 볍씨를 가지고 상징 로고를 만들어 놓았다는 것은 전 세계를 나가서도 자랑이 될 수 있다.

-‘쌀’에 대한 생각은.
나는 선사고고학자기 때문에 쌀의 의미를 정확하게는 설명하지 못하지만 쌀 학자들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쌀은 우리 체질에 가장 잘 맞는 식량이라고 한다. 노인병 치료와 체력 향상에도 도움이 되고 밀보다는 인간에게 더 잘 맞는 음식이라고 들었다.
우리가 매일 먹는 ‘주식’에 더 많은 연구를 투자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쌀 연구에 보다 더 국가적인 관심이 있었으면 좋겠다. 볍씨와 관련해서도 많은 연구들이 지지부진되기도 했다. 위정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어떻게 하냐가 중요한 것 같다. 인력을 늘리고 자기 분야에서 외로운 연구를 하고 있는 학자나 기관들에게 관심과 지원을 해주길 바란다.


-나에게 ‘볍씨’란.
아버님에 대한 회한이 남아있다. 서산이 고향인데, 아버님이 서산에서 농사를 지으셨다. 내가 외아들이라 나에게 농사를 가르치려고 하셨는데 나는 농사 짓는 게 싫었다. 공부해서 서울로 올라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아버님은 내가 고향에서 평생 살기를 원하셨는데, 내가 뿌리치고 상경했다. 볍씨를 발굴했을 때, 아버님 생각으로 눈물을 많이 흘렸다. 이제서야 아버님께 보답하고자 벼를 연구하게 됐다. 벼를 연구하면서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난다. 그래서 더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있고 30년 넘게 붙들고 있는 셈이 됐다. 나에게 있어 쌀 연구는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 고마움, 후회가 녹아져 있는 정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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