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업신문 창간9주년 특집] '탄소, 기후' 21세기 농업 화두: 식량산업 대처방안은①
[한국농업신문 창간9주년 특집] '탄소, 기후' 21세기 농업 화두: 식량산업 대처방안은①
  • 김흥중 기자 funkim92@newsfarm.co.kr
  • 승인 2021.10.22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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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폭염·장마·태풍"…기후 위기에 놓인 쌀 산업
기후에 민감한 농업, 이상기후 피해 불 보듯
기후변화 대비 벼 품종·재배기술 개발 관건
지난해 지속된 장마로 침수된 전남 나주의 논

(한국농업신문=김흥중 기자) 폭염·폭설·산불 등 전 세계 곳곳은 이상기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우리나라도 최근 30년 사이 평균온도가 1.4℃ 상승하며 온난화 경향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이에 정부는 기후위기를 대비해 지난해 ‘2050 탄소중립 추진전략’을 발표했고, 최근에는 2050 탄소중립위원회를 통해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와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구체화하고 있다.

한국농업신문은 9주년을 기념하는 창간특집으로 이상기후 속 국내 농업의 상황을 파악해보는 가운데 특히 국민 주식인 쌀을 생산하는 벼농사에 기후변화가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또한, 경종분야 탄소절감 방안을 분석해 현장에 필요한 실증기술을 소개하고, 실제 농업·농촌에서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한 농업을 실천하고 있는 농가의 이야기도 전해본다.

“2018년, 2019년, 2020년, 2021년” 

연달아 나열한 최근 4년은 농업과 기후의 관계에서 보면 공통적인 일이 일어난 해다. 4년간 모두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자연재해가 발생했다. 2018년 한반도를 뜨겁게 달궜던 폭염, 2019년 수차례 지나간 태풍, 2020년 햇빛이 그리울 정도로 길었던 장마, 2021년 갑작스러운 비소식에서 이어진 가을장마. 해마다 발생한 이 자연재해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이례적인 일이라는 것이다. 특히 2018년부터 2020년까지 발생한 이상기후 현상들은 모두 ‘역대 최대’ 등의 수식어를 달고 이전의 기록을 갈아치웠다.

기후변화에 취약한 농업

IPCC(기후변화 정부 간 협의체)의 제5차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지구온난화로 지구 평균기온은 133년간 0.85℃씩 상승했다. 현재 추세로 온실가스 배출이 지속될 경우 21세기 말 지구 평균기온은 3.7℃ 상승할 전망이다.

한반도 역시 연평균기온이 꾸준히 올랐다. 기상청에서 내놓은 ‘한반도 100년의 기후변화’를 살펴보면, 최근 30년 기온은 20세기 초(1912~1941년)보다 1.4℃나 올랐다. 지난 100년간 이상기후의 발생빈도와 강도도 꾸준히 늘었고, 가령 최근 10년은 지난 30년보다 폭염일수가 0.9일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이상기후는 기후변화가 지속되면서 향후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기상청에서는 기후변화 시나리오와 관계없이 21세기 후반에는 현재와 비교해 열대야·폭염일수·여름일수 등 고온 관련 극한지수와 강수강도·호우일수 등 호우 관련 극한지수, 가뭄과 직결되는 지표들이 모두 크게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문제는 기후에 의존적인 농업 분야다. 농업은 기후변화에 민감한 산업으로 파종기·개화기·성장기·수확기 등 정해진 시기에 미치는 기온과 강수량, 일조시간 변화가 농작물의 생산성으로 직결된다. 

가령 대표적인 식량작물인 벼의 경우 개화기에 기온이 37℃ 이상으로 올라가는 고온 상황이 되면 불임이 된다. 또 평균 생장기인 7월경 비가 자주오면 벼 알수가 적어지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외에도 이상기후는 작물의 생산과 품질을 떨어뜨릴 수 있고, 월동해충·외래병해충의 확산으로 농작물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

한파, 폭설, 이상저온, 일조량 부족, 집중호우, 태풍, 가뭄 등 이상기후로 인한 다양한 농업재해가 산재해 있지만, 발생빈도와 피해규모가 불규칙적이기에 과학적 예측과 사전예방적 대응이 쉽지 않다. 또한, 재해요인도 늘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2010~2014년까지 기상이변으로 인한 농업재해의 발생 원인은 연 4종류였으나, 최근에는 연 5~7종류로 증가했다.

벼농사도 피할 수 없는 이상기후

최근까지 발생한 이상기후만 보더라도 기후변화가 농업 분야에 미치는 영향을 짐작할 수 있다.

2018년에는 한반도 전체가 열탕처럼 뜨거웠다. 2018년 6~8월 폭염일수는 31.4일로 1994년 29.7일보다 1.7일 증가했고, 평년(9.8일)보다는 무려 21.6일이나 지속돼 최근 들어 가장 더웠던 여름으로 기록됐다. 당시 8월 1일 기준 최고기온은 서울이 39.6℃, 홍천이 41℃였다. 

기록적인 폭염 속에서도 고온에 비교적 잘 견디는 벼는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었으나, 농작물 중 과수, 시설원예, 채소, 특용작물 등에는 피해가 컸다. 당시 농림축산식품부는 8월 29일 기준 과수 1445㏊, 특작 956㏊, 전작 475㏊, 채소 454㏊로 피해 규모를 잠정 집계했다. 특히 폐사 가축수는 닭이 729만1000마리로 전체 폐사 가축수(783만5000마리)의 93.1%를 차지할 만큼 피해가 컸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는 이때의 폭염으로 농촌 현장에 큰 피해가 발생했고, 지구온난화로 인한 폭염 발생빈도는 점차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2019년에는 자그마치 7개의 태풍이 한반도를 강타했다. 그때의 피해 규모 상황을 분석한 ‘2019 이상기후 보고서’에서는 2019년 발생한 태풍이 근대 기상업무가 시작된 1904년 이래 가장 많은 영향 태풍 수를 기록했다고 전했다. 무려 여름철 4개, 가을철 3개에 달하는 태풍이 한반도를 스쳐 지나갔다. 

당시 가을철에는 9월 상순 강한 바람을 일으킨 중대형급 태풍 제13호 ‘링링’을 시작으로 9월 하순 제17호 ‘타파’, 10월 초 제18호 ‘미탁’까지 태풍 피해가 연속적으로 발생했다. 링링으로 인한 벼 도복(쓰러짐) 면적만 약 1만8000㏊ 이상이었다. 이때 정부에서는 태풍으로 인해 흑·백수, 수발아 등 피해를 본 벼 1만8519톤을 수매하기도 했다.

2020년은 지독한 장마로 특히 많은 벼 재배농가가 쓴맛을 볼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6월 10일 제주도에서 시작한 장마는 중부지방과 남부지방도 뒤이어 6월 24일에 시작하며 전국적으로 확대됐다. 보통 7월 중순이면 끝나는 장마철은 계속 이어졌고, 중부지방의 경우 가장 긴 54일을 기록하며 1973년 이후 최장기간의 장마로 기록됐다. 기상청은 지난해는 이례적으로 정체전선이 8월 중순까지 중부지방에 머물면서 중부지방에만 54일 동안 비를 내렸다고 분석했다.

지속된 장마로 흐린 날이 계속되자 일조가 부족해진 벼는 제대로 크지 못했다. 이에 지난해 쌀 생산량은 350만7000톤으로 1968년 이후 52년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통계청에서는 전년 374만4000톤보다 23만7000톤(6.4%)이 줄었고, 평년보다는 12.6%가 감소한 것으로 판단했다. 

현장에서는 통계청의 발표보다 더 피해가 크다고 입을 모았다. 벼 재배농가들은 최대 30%까지도 수확량이 감소했다고 토로했다. 2020년산 쌀 생산량이 감소하자 쌀값은 올해 8월 전까지 연일 상승세를 유지하며 평년보다 30% 이상 오른 가격을 유지했다.

올해 역시 벼 재배농가는 이상기후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올해는 벼 생장기에 작황이 좋아 풍년이 예상됐으나, 전북 등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도열병 등 병충해 피해가 극심했기 때문이다. 

병충해 피해는 8월 중순 이후 시작된 가을장마에서 비롯됐다. 약 2주간 잦은 비와 야간 저온이 발생해 도열병 등 병충해가 퍼지기 유리한 조건이 형성됐다. 전북도에서는 이로 인해 이삭도열병 3만376㏊, 세균성벼알마름병 1만684㏊, 깨씨무늬병 8243㏊ 등 벼 재배면적의 43%에 병해충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했다. 생산량은 평년 대비 5~8%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품종·재배기술 개발로 극복

농촌진흥청에 내놓은 ‘연대별 쌀 생산 수량 변화와 미래 전망’ 보고서에서는 온난화 등 기후변화가 계속되면 쌀 생산성이 2040년 13.6%, 2060년대 22.2%, 2090년대 40.1%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는 일반적으로 쌀이 공급 과잉 상태이지만, 장기적으로 생산성이 감소할 수 있다는 것.

환경부의 ‘한국 기후변화 평가 보고서 2020’에서는 월동작물을 제외한 식량작물(벼, 콩, 옥수수, 감사)은 21세기 중반까지는 생산량이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되거나 오히려 증가하다, 21세기 말에 이르러 작물별 특정 생육 시기의 고온스트레스 탓에 급격한 수량 감소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에 이상기후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 주식인 벼의 경우 품종과 재배기술에 대한 개발이 요구되고 있다.

농진청 관계자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품종과 재배기술 개발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노력해야 한다”면서 “벼에서는 등숙기 고온으로 품질이 떨어지는 등 문제를 막기 위해 ‘고온저항성’ 품종을 개발하고, 고온을 회피할 수 있는 재배 시기 조절도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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