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8주년 특집①] 고품질 쌀로 두 마리 토끼를 잡자: 고품질 쌀이란
[창간 8주년 특집①] 고품질 쌀로 두 마리 토끼를 잡자: 고품질 쌀이란
  • 김흥중 기자 funkim92@newsfarm.co.kr
  • 승인 2020.10.23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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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품질 쌀, 농가소득증대 마중물 되나
밥맛, 외관 품위, 도정특성 등 고품질 기준
품질 고급화뿐 아니라 가격지지 전제 필수

(한국농업신문=김흥중 기자) ‘구수한 냄새가 나고, 윤기가 넘쳐흐르며 찰진 갓 지은 밥’은 흔히 대부분 사람이 알고 있는 ‘맛있는 밥’을 말한다. 맛있는 밥을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쌀이 필요한데, 좋은 쌀은 곧 품질이 우수한 쌀을 말한다. 이처럼 쌀의 품질과 맛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매년 실시하고 있는 ‘식품소비행태조사’를 살펴보면, 쌀(현미·백미)을 구입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기준에 맛(30.5%)과 품질(28.4%)이 우선순위로 나타났다. 다만, 맛과 품질은 쌀을 먹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요소들이다. 맛과 품질이 좋은 ‘고품질 쌀’을 찾는 소비자는 늘고 있으나, 어떤 쌀이 고품질 쌀인지 모호하고, 단순히 유명한 쌀, 브랜드 쌀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을 뿐 쌀 포대를 뜯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셈이다. 

쌀에도 명품이 있다.

‘명품’의 사전적 정의는 ‘뛰어나거나 이름난 물건. 또는 그런 작품’이다. 의류, 화장품 등 다양한 공산품 중 특별하게 희귀하거나 품질이 뛰어난 상품은 명품으로 불리며, 대부분 높은 가격을 형성하고 ‘프리미엄’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한국인은 밥심’이라는 말처럼 우리 주식인 쌀(밥)에도 고품질의 명품이 존재하나, 그 기준이나 개념에 대해서는 모호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농업계에서는 경기도 이천쌀이나 강원도 철원 오대쌀 등은 흔히 알려진, 소위 ‘비싼 가격에 팔리는 쌀’이지만, 이 쌀들이 ‘고품질 쌀’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고 말한다.

정부 기관과 생산자 단체, 유통업계, 일부 학계 관계자 등 업계에서는 공통적으로 ‘고품질 쌀’의 기준이 정량적이고 객관화된 수치에 의해 정해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국가 농업 연구기관인 농촌진흥청에서는 ‘고품질 쌀’에 대해 밥맛이 좋고 외관 품질이 우수하며 안전한 쌀인 동시에 도정특성, 병해충저항성 등의 기준을 설정해 고품질 쌀을 정의하고 있으며, 2003년부터는 고품질보다 우수한 ‘최고품질’의 기준을 별도로 마련해 육성하고 있다. 

서정필 농진청 국립식량과학원 작물육종과 연구관은 “밥맛, 외관, 도정특성, 병해충저항성 등 구분 항목을 두고 그 기준에 맞는 쌀을 ‘최고품질’로 정하고 있다”면서 “소비자는 밥맛을, 생산자는 수량이나 병해충저항성 등을 중요하게 여겨 수요자에 따라 고품질의 기준이 달라질 수 있으나 현재 ‘최고품질’로 정한 기준이 가장 정량적이고 객관화된 기준이다”라고 말했다.

쌀 유통을 담당하는 미곡종합처리장(RPC)의 한 관계자는 고품질 쌀은 일단 ‘밥맛’이 좋아야 하고, 품위와 완전미비율 등 도정특성 같은 기본적인 요소가 충족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고품질은 추상적인 개념이라 명확하게 정하기 어렵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소비자들이 느끼는 밥맛이고 외관 품질, 도정특성 등이 우수해야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지켜져야 할 요소다”라고 말했다.

특등급 쌀이 고품질 쌀인가.

정부에서는 쌀 품질 고급화를 촉진하고 소비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쌀 등급표시제’를 시행하고 있다. 

쌀 등급표시제는 쌀, 콩 등 양곡에 대한 품목, 생산연도, 원산지 등 품질정보를 제공해 소비자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품질 향상을 유도하기 위해 시행하는 제도다.

지난 2004년 쌀에 대한 특·상·보통 등급을 도입하고, 권장표시사항으로 운영하기 시작해서 2008년 단백질 등급(수·우·미)을 추가했으며, 2011년에는 기존 등급 기준을 1·2·3·4·5등급·미검사로 세분화하면서 의무표시로 강화했다. 

지난 2013년에는 등급 표시를 다시 특·상·보통·등외·미검사로 개선했으며 2018년부터는 ‘미검사’ 표시를 제외한 특·상·보통·등외 표시로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이 양곡표시제도의 이행률은 97.8%로 나타났다. 

김종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곡물관측팀장은 “정부에서 마련한 품질 등급 체계가 ‘고품질’ 기준을 완벽하게 대변하기는 어렵다”면서 “다만, 특등급의 경우 싸라기가 적고, 완전미비율이 높은 등 일부 품질을 나타낼 수 있는 지표가 있기 때문에, 현재 제도하에서는 고품질 쌀의 기준을 제시할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예를 들어 완전미비율이 높아도 소비자가 느끼는 식미감에는 개인차가 있을 수밖에 없어 품질 기준은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정부에서는 식미감을 나타내는 지표로 단백질 함량을 선택적으로 표시하도록 권장하고 있지만, 단백질 함량과 식미감 간의 명확한 상관관계를 제시하는 것이 쉽지 않아 기존의 쌀 등급 체계만으로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소비자시민모임에서 지난해 조사한 ‘쌀 구입 전 양곡표시제도 확인 여부’에 따르면, 소비자들은 쌀 구입 전 쌀의 품질정보를 알 수 있는 양곡표시제도를 대부분 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66.7%가 양곡표시제도를 통해 품질을 확인하고 있으며, 20대는 44.1%가 확인하는 편이었으나, 60대는 76.9%로 나타나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양곡표시제도를 더 확인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쌀의 품질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현재 등급 체계를 꽤 신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관련 업계에서는 현행 제도에 대해 유통 단계에서 오는 부담 등이 있다고 토로했다. 

농가마다 쌀 품질이 달라 일률적인 등급 표시가 어렵고, 유통 과정에서 쌀 싸라기가 발생하거나 수분 함량이 바뀌면 등급 허위 표시로 처벌될 수 있어 등급 표시 이행에 부담이 크다는 게 양곡업계의 입장이다.

벼를 바로 도정했을 때는 높은 등급이 나왔으나 유통되는 과정에서 수분이 마르는 등 품질 손상이 발생해 소비자 구매 단계에서 등급이 낮아진다는 것이다. 쌀을 유통하는 RPC 입장에서는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등급 허위 표시가 되는 것으로 실제로 현장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피하기 위해 특등급이더라도 등외나 보통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다수 있다. 허위 표시에서 오는 낙인 효과에 대한 부담감이 상당한 셈이다.

고품질 쌀, 인식 높이고 가격지지 돼야.

정부나 지자체에서는 벼 수량이 다소 줄더라도 품질을 높여 가격을 올리는 고품질 전략을 추진하고 있으며, 품질 차별화를 통한 농가 소득증대를 도모하고자 지역별 브랜드 쌀 육성 등 각종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고품질 전략이 시장에서 통하기 위해선 품질 차별화 외에도 가격 차별화가 필요하며, 소비자가 느낄 수 있는 고품질 쌀에 대한 인식 제고와 가격지지가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북 문경의 한 농민은 “고품질 쌀이 시장에서 경쟁력은 충분히 가질 수 있으나 소비자가 충분히 고품질로 느끼는지, 더불어 이 쌀을 팔 수 있는 시장이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며, “고품질이라고 가격은 높게 올려놨는데, 알아보고 사주는 사람이 없으면 결국 손해 아니냐”고 말했다.

김종인 곡물관측팀장은 고품질 쌀이 농가소득증대의 새로운 길이 되려면 가격 차별화가 전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쌀 소비가 줄어들고 있고, 대체 음식이 많아진 시점에서 고품질 쌀 전략은 장기적으로 필요한 방향이다. 다만, 이 전략이 소득증대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품질 차별화와 함께 가격 차별화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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