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8주년 특집④] 고품질 쌀로 두 마리 토끼를 잡자 : 품질경쟁력의 시작 ‘도정’
[창간 8주년 특집④] 고품질 쌀로 두 마리 토끼를 잡자 : 품질경쟁력의 시작 ‘도정’
  • 유은영 기자 you@newsfarm.co.kr
  • 승인 2020.10.23 08: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리방법 따라 발아율·품위·도정도 등 결정
최적의 온도 보관…‘갓’도정하면 언제든 ‘햅쌀’
1992년 도입, 28년간 시대변화 맞춰 발전

(한국농업신문= 유은영기자) 고품질쌀은 맛있는 쌀, 좋은 쌀, 안전한 쌀이어야 한다. 2002년 정부 양곡 정책이 기존 다수확 지향에서 품질향상으로 전환했을 때 한국식품연구원의 제안으로 정립된 개념이다.

쌀의 품질은 일단 생산에서 결정된다. 수확 전 품종 및 재배방법에 따라 쌀의 성분이 결정되며 이는 품위에 일부 영향을 준다. 수확시기에 따라서도 미숙립 비율이 달라진다. 하지만 고품질쌀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수확 후 관리방법이다. 식품연은 고품질쌀 생산에 영향을 주는 정도를 수확 전 약 20%, 수확 및 수확 후 약 80% 정도로 본다.

수확 이후 벼는 호흡과 효소 작용을 하면서 수분을 분출하며 점차 찰기가 떨어져 묵은쌀이 된다. 이를 최대한 지연시켜 주는 게 벼의 저온저장이다. 정부는 미곡종합처리장(RPC)에 저온창고를 비롯한 첨단 도정시설을 도입하는 시설현대화 지원을 통해 고품질쌀 생산을 위한 수확 후 관리에 집중하고 있다.

건조지연, 고온저장이 밥맛 떨어뜨려

수확 후 식미가 저하하는 원인은 가수분해 및 산화에 의해 벼가 늙기 때문이다. 쌀에 아밀로스 함량이 높으면 밥 지을 때 흡수량이 많아 식미가 저하되고 딱딱해지며 찰기가 저하된다. 고시히카리는 아밀로스 함량이 낮아 식미가 높은 대표적인 품종으로 꼽힌다. 단백질 성분 역시 쌀 등급과 식미를 떨어뜨리는 주요 원인이다.

식품연에 따르면 식미는 발아율이 약 62%의 영향을 미치고 성분, 품위 및 도정도에서 약 33%의 영향을 받는다. 벼 발아율이 저하되는 주요 원인은 건조지연, 고함수율 벼의 고온저장이다. 함수율 1% 증가할 때 식미는 월 6.7% 감소한다.

대한민국 쌀 수출 1호로 명성을 날렸던 군산 제희RPC 전경. 경영난 누적으로 지난 2017년 폐업했다.
대한민국 쌀 수출 1호로 명성을 날렸던 군산 제희RPC 전경. 경영난 누적으로 지난 2017년 폐업했다.

품종·재배방법 위주 정책 추진

RPC(Rice Processing Complx)의 탄생은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벼의 수집 건조 저장 가공포장 판매과정의 일괄처리가 가능한 시설로 농가 노동력 해소와 미곡의 품질향상 및 유통구조 개선을 목적으로 제도가 도입됐다. 1991년 충남 당진 합덕읍과 경북 의성군 안계면에 시범 도입한 뒤 1992년부터 농어촌 구조개선 사업으로 본격 추진됐다.

이때부터 2001년까지 RPC는 농촌 노동력 절감과 산지유통 활성화, 양질미 생산 등을 위해 전국에 328개가 건설됐다. 정부는 양질미 생산을 위한 건조저장시설, 가공시설 지원을 시작하고 색채선별기, 청결미기 등 도정기기 도입을 지원했다.

90년대 RPC는 산업화 기반을 닦았다고 요약할 수 있다. 2000년대 들어선 웰빙 열풍에 따른 쌀 소비 급감과 2005년 예정된 쌀 시장개방에 대응한 국제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2002년부터 고품질쌀 생산으로 정책을 전격 전환했다. 2002년부터 2006년까지는 고품질쌀 생산 정책 1기라 할 수 있다. 정부는 쌀 품종 및 재배방법 위주의 정책을 추진했다.

이즈음 RPC 업계는 9년 동안의 총 누적적자가 759억원(개소당 3억8000만원)에 달하는 등 RPC간 과당경쟁과 가격 경쟁력 저하, 시설 노후화 문제가 심화됐었다. 따라서 규모화를 노린 RPC 통합(농협쌀공동사업법인)이 2004년부터 추진됐고 2013년까지 45개의 통합법인이 생겨났다.

GAP 적용…쌀산업 경쟁력 강화 의미

2006년엔 고품질쌀에 안전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했다. 복지와 행복을 강조하는 웰빙시대에서 건강과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LOHAS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소비지의 대형유통업체와 학부모가 RPC 견학 후 쌀을 구매하는 일이 관행화되자 RPC 시설현대화는 필수가 됐다. RPC에 GAP시설기준을 적용하고 고품질쌀 브랜드 육성 사업을 본격 시작했다. 2020년까지 고품질쌀 브랜드 75개소를 육성키로 하는 사업을 추진, 2018년 현재 59개소를 준공했다.

고품질쌀 브랜드 육성사업의 방향은 ▲균일 품질의 브랜드쌀 생산이 가능한 시설 ▲모든 등급 쌀 생산이 가능한 시설 ▲도정수율 저하를 최소화할 수 있는 시설 ▲품종별, 원료별 작업이 가능한 시설 ▲GAP 농산물우수관리시설기준에 적합한 시설 ▲작업동선 및 운영관리가 편리한 시설 ▲투자비용이 최소화되는 시설 등 7가지다.

RPC 역사에서 GAP 적용은 단순히 농촌노동력 절감과 산지유통활성화, 양질미 생산에 초점을 뒀던 90년대 RPC의 목적이 우리 쌀 산업의 경쟁력 강화로 한 단계 전진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최근 시설현대화 사업을 마친 한 민간 RPC 가공시설의 포장부.
최근 시설현대화 사업을 마친 한 민간 RPC 가공시설의 포장부.

소형 포장규격 도입해야

쌀의 유통과정에서도 품위가 저하하는 요인이 존재한다. 식품연은 백미의 품질은 포장지와 포장규격에 따라 저하된다고 설명했다. 배아가 부착된 백미는 살아있으며 외부 조건에 따라 가수분해 및 산화로 식미가 저하된다. 종이 포장지 안을 비닐로 덧댄 백미 포장지는 통기성과 통습성이 나빠 품질 저하가 심하게 일어난다. 또 보통 10~20kg 단위의 대형 포장규격은 가정에서 다 먹을 때까지 산소 및 수분의 영향으로 식미 및 품질 저하가 일어난다.

업계 과당경쟁 대안 찾아야

현재 RPC 규모화 사업은 소규모 친환경 도정공장 지원 등과 혼선돼 엇박자를 빗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반입, 건조와 저장시설의 공동사용이 가능한 맥류, 두류 등도 별도의 시설지원사업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건조저장시설 신축지원 위주의 한정된 시설개선자금 집행의 비효율성도 지적되고 있다. RPC 설계 및 시설업체의 과당경쟁으로 시설의 전반적인 수준 및 질적 저하도 우려된다.

업계 관계자는 “지속적인 쌀 소비량 감소와 적자누적으로 RPC 경영난이 심화되고 있다”며 “적절한 RPC 수 조절과 경영난 타개 방안으로, 정부가 특히 어려운 민간RPC를 인수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관련기사